천태종 총무원장 정산 스님

금세기 들어 가장 부각되는 현상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시장주의의 세계화일 것입니다.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는 국경 허물기 현상은, 기실 시장의 세계적 확대화 통합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 인류는 이른바 시장주의라는 삶의 방식으로 통합되고 있는 중입니다.

시장주의는 자본주의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시장이 보장하는 경쟁을 통한 높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사회 운영의 기본 원리로 채택하는 것이 자본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기의 냉전에서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에 패배하여 몰락한 것은 시장주의를 외면한 과보였습니다. 공산주의 사회는 평등을 최고 가치로 설정하여 경쟁에 의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다가, 결국에는 생존에 필요한 빵마저 확보하지 못하는 '빈곤의 확대와 평등'에 발목 잡히고 말았습니다.

공산주의가 몰락한 이후 시장주의는 전 인류의 삶을 이끌어 가는 거의 유일한 경제 원리가 되고 있습니다. 사회의 모든 영역이 시장주의의 원리로 운영되기를 요구받는 시대가 현대입니다. 시장주의는 현대인의 인생관이자 가치관이요, 세계관이 되어 그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모든 분야가 시장주의의 원리에 편입되고 있습니다. 세계화라는 것은 결국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기도 합니다. 세계적 규모로 통합된 시장에서 강자가 되느냐 약자가 되느냐 하는 것에 국가 명운을 걸고 있습니다.

사실 그동안 대한민국의 비약적 경제 발전은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세계 10위권 아팎의 경제 규모는 곧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 수준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심혈을 기울여 이룩한 세계적 시장 경쟁력의 순위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더욱 높여 가는 것이 한국 사회 초미의 과제 입니다. 그러다 보니 작금의 한국 사회는 모든 영역에서 시장주의가 거의 유일한 선택처럼 간주되고 있습니다.

시장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장구합니다. 그러나 시장의 특성인 '자유 경쟁을 통한 생산성과 효율성의 극대화'를 사회 운영의 보편 원리로 채택하는 시장주의는 자본주의의 발달과 호흡을 같이합니다. 따라서 시장주의가 거스를 수 없는 사회 원리로서 모든 인류의 삶을 지배하는 현금의 상황은 특별한 것이기도 합니다.

기실 시장주의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적 요청이고 거스를 수 없는 문명의 대세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운명 속에 살고 있습니다. 또한 시장주의는 놀라운 물질 생산력과 효율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시장주의가 비인간적인 면모 또한 선명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점도 결코 간과할 수 없습니다. 자유라는 명분 아래 전개되는 냉혹한 경쟁은 소수의 강자와 다수의 약자를 산출해 냅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소수의 승자가 되기 위해 전개되는 비인간적인 경쟁은 인간 관계를 근원적으로 해칩니다. 시장에서는 조금만 방심하면 상대방이 자신을 밀쳐낸다는 경계심과 적대감이 넘쳐나게 마련이고, 따라서 인간 상호 간의 신뢰라는 것이 뿌리내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시장은 금전 만능주의의 온상이기도 합니다. 시장에서는 모든 것이 경제 가치로 평가됩니다. 따라서 모든 것은 금전으로 확산되고, 모든 것을 구매할 수 있게 하는 경제력을 확보하는 일이 최고 목표가 됩니다. 시장에서 금전은 더 이상 인생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돼 버려 인간은 금전의 노예로 전락해 버립니다.

시장 안에서 인간은 생산성과 수익성을 기준으로 평가받습니다. 품성, 인격, 양심, 덕성과 같은 인간의 내면적 가치는 쉽사리 외면 받습니다. 경쟁력이나 수익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인간적 가치들을 저버릴 수 있는 냉혹한 현장이 시장입니다. 시장주의는 무자비한 비인간성을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장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알면서도 시장주의에 이끌려가야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입니다. 아무리 시장의 비윤리성을 비판한들 시장주의라는 도도한 시대 물결에서 몸을 뺄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분명해집니다. 시장주의에 몸담으면서도 시장에 오염되지 않을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우는 것입니다. 시장의 냉혹한 경쟁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우호감을 잃지 않고, 선의와 베품과 양심같은 인간적 가치들을 소중히 간직하며, 금전을 최고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자비를 삶의 목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마음의 능력을 기르는 일입니다.

시장주의는 인간에게 물질적 풍요를 약속합니다. 그러나 그 약속 이면에는 인류가 반드시 품어야 할 고귀한 가치들을 오염시키는 혼탁함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시장에 살면서도 시장의 오염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힘을 기르는 일이야말로 절박하고도 중요한 과제인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일이 바로 그 해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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