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선문답에 빠지다
《원더랜드》
대니얼 도엔 실버버그 지음ㆍ진우기 옮김/아름다운 인연/156면/10,000원

삼월토끼, 겨울잠쥐, 애벌레, 모자장수, 카드병사, 여왕 등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환상 동화의 효시로 꼽히는 이 소설은 정치, 언어, 심리, 법학, 시간, 유머, 교육, 정신분석, 뇌과학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문학 코드가 무수히 얽혀 있어 많은 비평가들이 어른을 위한 동화로 분류해왔다. 《원더랜드》의 글쓴이 대니얼 도엔 실버버그는 이런 인문학적 접근과 맥을 달리해 불교적 시각, 특히 선(禪)적 시각으로 풀어냈다.

25년간 선 수행을 하며 직접 수행 단체 ‘로스트 코인(http://lostcoinzen.com)’을 이끌고 있는 글쓴이는 앨리스가 흰 토끼를 뒤쫓다 빠지게 된 원더랜드 속 무수한 선적인 코드들을 텍스트로 풀어놓는다.

“수수께끼를 풀었니?”/모자장수가 다시 앨리스를 보며 말했다./“아니요, 포기할래요.”/앨리스가 말했다./“답이 뭔가요?”/“나도 모르지.”

글쓴이는 이런 대화들이 선 수행에서의 공안(公案)과 같다고 말한다. 말을 초월하기 위해 말을 사용하는 공안은 지성이 아니라 지혜를 사용해 경험적으로 답해야 한다. 앨리스가 학교에서, 혹은 책에서 얻은 지식이나 규칙은 도무지 적용되지를 않는다. 모든 이론적 허구를 잊고 자신만의 관점을 버리는 순간 원더랜드를 받아들일 수 있으며, 우리 역시 그동안 거부했던 사람들이나 상황들을 받아들여 현실과 참모습을 깊이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글쓴이는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 우리가 얻지 못한 것들이라 말한다. 그것을 얻는 순간은 좋지만 그 다음 것을 얻기까지는 안달과 두려움의 연속이다. 글쓴이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삶은 고통’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적고 있다. 또 이를 없애는 방법으로 선 수행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수행은 마음이 편하게 될 꺼라는 기대감이나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게 아니라 참다운 즐거움, 그 자체로서의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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