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국 쟝쑤성(江蘇城) 우시시(無錫市)에서 열린 한중일불교대회에서 쉐청(學城) 중국불교협회 부회장의 강연 내용이 문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이 대회 학술회의에서 “중국의 기자(箕子)가 조선으로 넘어가 첫 왕국을 세웠다”는 요지의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불교 천태종 정산 총무원장(한국불교종단협의회 부회장) 등 한국 대표단 몇 분이 공식 항의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그냥 넘길 수 없는 사건이 분명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자가 한반도에 세웠다는 이른바 기자조선(箕子朝鮮)은 그냥 꾸민 허구다. 기원전 3세기 전반까지의 중국 정사와 경서(經書)에는 기자가 조선왕이 되었다는 기록이 없다. 기원전 3세기 말에 이르러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고조선 침략 야욕을 드러내자, 어용학자 그룹이 몇 다리를 거쳐 꾸며냈던 것이다.

《주역(周易)》에는 ‘기자지명이(箕子之明夷)’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어리석은 임금 암주(闇主)가 위에 자리하고, 밝은 신하가 아래 있을 때는 감히 지혜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복승(伏勝)이라는 한나라 어용학자는 이를 한술 더 떠서 《상서대전(尙書大傳)》 〈주서(周書) 홍범조(洪範條)〉에다 “무왕이 은(殷)을 이겨 기자를 옥에서 풀어주자, 그가 도망간 것을 알고는 조선의 왕으로 삼았다”고 썼다. 그러나 《상서대전》의 본이라 할 《상서(尙書)》는 물론 《시경(詩經)》 등 13종에 이르는 경서에는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중국의 쉐청 부회장은 “청동기 기술도 기자가 조선으로 가져가 문명을 촉진시켰다”고 덧붙였지만, 은ㆍ주의 고고학적 청동기 문화는 고조선과 사뭇 다르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을 꼭 빼닮은 주장을 쌩뚱맞게 꺼낸 중국의 속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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