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직영 문제만 한정
정치권 유착 극복 못해
4대강도 구색 갖추기 불과

강남 봉은사 직영사찰 문제의 외압 논란과 관련해 출범한 화쟁위원회는 불교적 화쟁의 뜻을 바탕으로 지난 6월 의욕적으로 출범했다. 첨예한 의견 대립 속에서 화쟁위원회까지 구성되며 진행된 바닥에는 당시 상황이 단순한 사찰 직영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한국 불교가 담고 있던 근본 문제점에 대한 일반 대중의 우려와 의견대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우려란 한국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이웃종교와는 달리 대중과 함께 하며 중생의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오히려 언제나 권력 편에 서서 권력의 정당화에 기여해 왔던 한국불교의 모습이었다. 결과적으로 정치권력에 휘둘려온 한국 불교 역사는 부정할 수 없었고, 이렇게 대중과 함께하지 못함으로서 사회문제보다는 개인의 기복적 행태에 치우친 불교가 본래 가르침이 지닌 생명력을 잃고 나이 많은 노인들의 종교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로부터는 점차 외면당하며 쇠락하는 불교계 현실에 대한 위기의식도 담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화쟁위원회의 출범은 문제점에 대한 합리적 결론 도출을 제시함으로서 한국불교 중흥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움직임으로서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얼마 전에 발표된 화쟁위원회의 봉은사 사태에 대한 해법에는 실망을 금할 수 없다. 결론으로 내어 놓은 것을 보면 사찰 직영 문제에만 한정되어 있었고, 정작 불교인들의 우려와 염원이 담긴 정치권 유착 문제의 극복을 통한 한국불교 환골탈태의 문제의식은 완전히 사라졌다. 불교를 다시 대중의 편으로 가져오게 하려는 의지는커녕 그런 문제 제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는 태도는 지적받아 마땅하다. 봉은사 사태를 단순히 종단과 종단 내의 한 사찰과의 직영문제로 취급한 것은 당시 불교를 염려하는 많은 이들이 왜 봉은사 문제에 주목했는지에 대하여 전혀 모르는 무지함이거나 일부러 눈감은 비겁함에 불과하다.

물론 화쟁위원회가 종단 내의 문제만을 다룬다는 원칙을 명목으로 일부러 불교계의 정치권력 유착에 대하여 말을 삼갔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화쟁위원회가 또 다른 의제로 삼은, 사회적 합의 없이 진행된 4대강 문제는 구색을 갖추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4대강 문제에 대한 화쟁위원회의 결론을 보아도 명백하다.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속도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겨우 도출한 결론이란 ‘사회통합을 위한 4대강 사업 국민적 논의기구’의 구성을 제안한 것이다. 예산안 처리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언제 위원회를 구성해서 서로 납득할 합의를 도출한다는 것인가. 혹여 현 시점에서 국민적 합의가 있기까지는 당장 공사를 중단하라는 전제를 달았으면 모를까 매우 현실성 없는, 듣기에만 좋은 결론이었다.

종교가 사회와 격리되어 대중의 삶과 유리될 때 종교는 죽는다. 진제와 속제를 구분하며 삶의 현장을 떠나 관념적으로 된 종교는 중생의 아픔을 미끼로 정신적, 물질적 갈취를 하는 집단에 불과하기에 종교는 마약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화쟁위원회는 많은 불자의 개혁의지를 무시하고 철저히 기존 한국 불교의 병폐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 당시 불교계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자는 불자들의 뜨거운 염원이 담긴 소나기를 막아주는 좋은 우산 역할을 했다. 문제의 초점을 피해 제시된 결론을 보면서 이들에게 화쟁 정신은 좋은 것이 좋다는 적당한 타협주의에 불과했음에 한국불교의 슬픔을 다시 한 번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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