뭇 생명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
佛子들이 만들자

문수 스님은 육신을 버리고 가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경 스님은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잠적하셨다. 그렇게 떠나신 스님들의 뒤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당혹스런 불자들의 심정만이 허공을 맴돌고 있는 것일까? “우리들은 어쩌라고 그렇게 가십니까?” 하며 탄식하는 불자들의 어지러운 심정만이 들끓고 있는가? 정말로 그렇다면 그렇게 훌훌 털고 가신 그분들의 뒷모습이 너무나 허무하고 부끄럽다.

4대강 사업 중단과 사회의 양극화를 해소하라는 외침으로 몸을 사르신 문수 스님, 그분의 뜻을 직접 여쭐 길은 없다. 그러니 쓸데없는 억측이 될 짓은 하지 말기로 하자. 그러나 수경 스님은 언젠가 돌아오실 터이니, 나중에 여쭤보고 야단이라도 맞을 각오로 그 뜻을 한 번 헤아려봄직 하다.

삼보일배로 우리에게 뚜렷이 각인되어 있는 수경 스님의 행보는 올곧게 온 생명 살림의 길로 이어져 있다. 불교 환경운동을 대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종교계의 생명살림 운동을 이끄셨으며, 이 시대의 지성을 대표하는 위상을 지니고 계셨다. 그런데 그러한 보배로운 분을 안고 있는 불교계는 어떠하였던가? 부처님의 정신을 이 시대를 이끄는 이념으로 올바르게 구현시키는 일에 어느 만큼 관심을 기울여 왔던가? 그 분은 불교계에선 여전히 외로운 분이었으며, 종단에서는 귀찮으면서도 어찌 휘둘러 볼 수 없는 존재 정도로 취급하지 않았던가?

수경 스님이 잠적하시기 이전까지 가장 힘을 기울여 왔던 4대강 사업에 대한 불교계의 대응을 생각해보자. 그토록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조계종단을 비롯한 불교계 종단들은 과연 어떠한 대응을 보여왔는가? 일부 시민단체들의 움직임에 마지못해 끌려다니는 듯한 태도, 수경 스님을 비롯한 환경운동가들의 활동에는 오히려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못마땅해 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온 거동들을 감출 도리가 없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에 대한 대응을 보더라도, 처음에는 의미를 축소하고 미온적인 대응을 보이다가, 많은 스님들의 뜻이 모이고 종도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자 뒤늦게 방향을 선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되돌아보다 보니 그런 속에서 고군분투하시던 수경 스님의 외로움이 새삼스럽게 느껴져 온다.

그런 수경 스님의 마음에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은 어떤 파문을 던졌을까? 당신은 모든 것을 벗어던진 출가납자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불교 환경운동을 비롯하여 종단화합을 위해 앞장서시고, 모든 생명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불세계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런데 정작 몸까지 사르고 가신 문수 스님을 마주하면서, 모든 것을 벗어던졌다는 출가납자의 본분을 망각한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이 드실 수도 있었을 법하다. “중 벼슬은 닭 벼슬만도 못하다”는 스님네들의 말과는 다르게,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주렁 주렁 달게 된 벼슬 아닌 벼슬에 얽매여 있는 자신의 모습에 울컥하는 마음이 드셨을 수도 있다. 그래서 당신이 보여주실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몸짓으로, 모든 것을 벗어던지는 잠행을 택하셨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그러나 일단은 여쭈어 볼 수 없으나 나중에 야단맞기로 하고, 일단은 그 분의 뜻을 이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분들의 버림은 커다란 행위이다. 당신들이 모든 것을 버리는 몸짓이야 말로 조그만 것에 얽매어 있는 우리들에 대한 커다란 채찍이다. 그런 마음으로 며칠 후에 있을 문수 스님 추모제에 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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