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가 말했다. “사람이 금수와 다른 점은 지극히 미미한데,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내버리고 군자는 그것을 보존한다. 순임금은 사물의 이치에 밝았고 인륜을 잘 살펴서 인(仁)과 의(義)에 순응하여 행동했던 것이지 인과 의를 억지로 행한 것이 아니다.”    

- 『맹자』「이루」-

 인간은 인간 이외의 동물들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을까? 인간은 과연 여타 동물들이 갖지 못한 면모를 지닌 우월한 존재인가? 이런 물음에 대해 최근의 생물학적 인간관은 ‘아니올시다' 쪽으로 기울어 있다. 전통적으로 인간이 지녀온 인간 우월주의 신념은 기실 그 생물학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그다지 특별한 생명체로 보기 어려우므로, 오만한 인간 중심주의를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폭넓은 지지를 얻어가고 있다.

자연 파괴, 생태계 위기의 주범인 인간이 그 교만한 인간 중심주의를 꺾어야 한다는 것은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인간 중심주의의 오만에 대한 반성이 자칫 인간 존재의 특이성에 관한 외면으로 이어져서도 안 된다. 인간은 분명 생물학적 기반을 광범위하게 공유하고 있지만, 동시에 여타 동식물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면모를 간직하고 있을 수 있다는 점 또한 간과돼서는 안 된다.

전통적으로 인간과 여타 동물의 차이점, 달리 말해 인간의 인간다운 면모로서 가장 주목되었던 것은 인간의 ‘사유 능력'이다. 자신의 행동과 생각 자체를 다시 반성적으로 성찰하기도 하는 고도의 사유 능력은 분명 여타 동식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적어도 인간의 시선으로 보는 한에서는 말이다. 인간 존재의 독특한 면모로 널리 인정되는 ‘언어 능력' 역시, 따지고 보면 인간의 저 특별한 사유 능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 고도의 사유 능력 가운데 특히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것은 다름 아닌 ‘이성적 사유'이다. 특히 근대 이후의 인간관은 이 이성 능력을 인간 존재의 핵심으로 보았다. 논리적으로 생각하여 사물이나 세상의 법칙성을 파악해 내는 이성 능력을 인간 위대성의 원천으로 간주했다. 그리하여 이 논리적 사고력을 극대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근대 이후의 산업사회와 과학기술 문명은 그 산물이었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과 산업화로 인한 자연 파괴를 겪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이성 능력이 과연 특별한 축복인가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 도구적 이성 능력은 오히려 인간 타락과 세계 오염의 수단이 되고 있으니, 인간은 이성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이유로 우월감이나 자부심을 지니기 어렵다는 성찰이 확산됐다.

이처럼 서양인들이 인간의 사유 능력 가운데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계산하는 ‘도구적 이성 능력'에 관심을 기울인 것에 비해, 동양의 선현들은 ‘윤리적 이성 능력'을 주목했다. 특히 유교가 그렇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 인간이 여타 동식물에 비해 존재론적 자부심을 확보할 수 있는 근거는, 생물학적 본능을 반성하고 제어할 수 있는 ‘윤리적 이성 능력'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질 수 있고, 옳고 그름을 식별하여 올바름을 추구할 수 있는 윤리 능력의 단서를 간직하고 있는 존재, 그 단서를 확충하여 완전한 윤리적 능력자로 변신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고 한다. 이 잠재적 윤리 능력을 수양을 통해 계발하는 자라야 ‘인간다운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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