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춘광 감사원장

불자 여러분!
추석은 잘 쇠셨는지요?

올해는 벼를 비롯한 온갖 곡식과 과일이 풍년이라고 하던데, 우리 불자님들도 추석을 맞아 이런 풍성한 가을의 기분을 실컷 느껴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이 다가오고, 그래서 수험생들은 마음을 편안히 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수험생을 둔 부모님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점집을 찾아가 합격 가능성을 미리 알아보거나 부적을 사는 등 가능한 모든 곳에 기대보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안감을 쉽게 떨쳐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깊은 신심을 가진 이들은 절이나 교회에 가서 “내 아이가 제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며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드리면서 자기 마음을 안정시키고 수험생인 자식의 마음도 편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입시를 앞두고 특별 기도를 드리는 것은 수험생과 학부모 양쪽을 위해 필요하고 또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내 자식만 잘 되게 해 달라”거나, 본인의 노력이나 쌓아놓은 실력과는 관계없이 무턱대고 좋은 성적을 내게 해주십사 간청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신에게 매달려 무조건 은혜를 비는 것이 신앙의 바탕인 일신교적인 다른 종교 신도들과 달리 ‘인과응보(因果應報)’를 확신하는 우리 불자님들은 “내 아이가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그 동안 기울여온 노력에 어긋나지 않고 본인 실력에 맞는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는 식으로 기도의 방향과 내용이 다를 것이라고 믿습니다.

옛날에 재물은 많지만 지혜롭지 못한 어리석은 부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다른 부잣집으로 놀러갔다가 3층으로 된 누각을 보았는데, 화려하고 웅장한 그 누각을 부러워하면서 ‘나도 저렇게 멋진 3층 누각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이 보았던 그 3층 누각을 지은 목수에게 “저 집보다 더 멋있는 누각을 지어 주시게”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주문을 받은 목수는 곧바로 땅을 고른 뒤 주춧돌을 놓고 벽돌을 쌓아 누각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무식한 부자는 그 목수가 집을 짓는 방식이 이해되지 않아, 목수에게 불만을 표시했고 두 사람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갔습니다. “어떤 집을 짓고 있는가?” “3층 누각을 짓고 있습니다.” “아니지. 이것은 3층이 아니라 1층이잖아.” “1층을 먼저 짓고, 그 다음에 2층, 3층을 짓는 법이지요.” “아닐세. 나는 3층 누각이 필요하지 1층, 2층은 필요 없네. 그러니 아래 두 층은 빼고 3층부터 짓게나.” “어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래층을 짓지 않고는 위층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십시오. 곧 3층을 짓겠습니다.”

부자는 목수의 말을 듣고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야. 나는 아래 두 층이 필요 없다고. 두말 말고 3층부터 짓도록 하게.”(《백유경(百喩經)》)

그동안 노력과 관계없이 100일이나 21일 기도를 해서 높은 성적을 올리기 기대하는 것은 “1, 2층은 필요 없으니 빨리 3층을 지어 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어리석은 그 부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기초를 다지지도 않고 좋은 결과를 바라는 이들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수능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수험생인 자식들에게 ‘자신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일일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머물고 계실 때의 일입니다. 코살라의 파세나디 왕과 말리카 왕비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갔습니다.

“말리카여! 그대에게는, 누군가 그대 자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있나요?” “대왕이시여! 제게 제 자신보다 소중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대왕이시여! 대왕께는 누군가 대왕 자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있으십니까?” “말리카여! 내게도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은 없지요.”

그 뒤 파세나디 왕은 궁에서 내려와 세존을 찾아뵈러 가서, 인사를 드리고 조금 전에 왕비와 나누었던 이 대화를 되풀이해 말씀 드렸습니다. 이야기를 전해 들으신 세존께서는 바로 그 순간 이러한 게송을 읊어 ‘자신의 존귀함’에 대해 강조해주셨습니다.

“마음을 다 기울여 곳곳을 왔다 갔다 하여도/ 자기 자신보다 소중한 사람은 어디에서도 찾지 못하네./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니/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치면 안 되리.” ( 《우다나(Udana; 自說經)》 제 5장)

그렇습니다. 세상 어느 사람도 자기 자신보다 귀하고 소중한 이는 없습니다. 지금 수험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자기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 우리 불자님들은 주변의 수험생들이 이 소중함을 깨닫게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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