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도 산 종의회의장

불자 여러분!
이제 더위가 막바지에 이른 것 같습니다. 한낮에는 푹푹 찌는 것만 같은 무더위에 몸을 움직이기조차 힘들지만 밤이 되어 시원한 바람이 살짝 불면, ‘가을의 향기’가 전해져오는 듯합니다.

세상을 둘러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착실하게 자기 할 일을 다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정상적인 길’에서 벗어나 “나만 잘 살면 그만이지, 남 생각을 왜 해?”라며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심지어 살생·도둑질 등 나쁜 일을 하는 이들이 있어서 사회를 어둡게 만듭니다.

7월 22일 서울고등법원의 민사 재판부에서는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전직 대통령의 부인이 어느 민사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을 하게 됐는데, 취재 기자들이 몰려들면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한 전직 대통령이 대통령 재임 시 기업체 등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조성한 비자금 200억 원을 동생에게 맡겨 회사를 설립했는데, 지금 와서 동생이 “그 회사는 내 것”이라며 돌려주지 않으려 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동생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그 전직 대통령 가족은 급기야 동생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하였고 1심 재판에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형이 패소했는데, 고법의 항소심 재판에는 ‘체면’과 ‘체통’도 팽개친 채 전직 영부인이 직접 증인으로 출석해 “그 회사는 우리가 준 200억 원으로 설립한 것이 틀림없다”며 남편이 대통령 재임할 때 사적으로 메모를 해두었던 노트까지 들고 나와 구체적인 날짜를 들어가며 증언을 하였다고 합니다.

전직 대통령과 그 동생 사이에서 벌어진 민사 재판 자체가 관심과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소재이기도 하지만, 기자들은 전직 영부인의 증인 출석이라는 예전에 없었던 사건이 꽤 괜찮은 기사거리였고 그래서 재판 과정을 상세하게 보도한 신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돈이 무엇이기에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동생과 재판까지 가게 되었을까?’란 생각을 해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수천억 원이나 수조 원의 재산 때문에 재벌 형제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고 때로는 그보다 작은 액수의 유산 때문에 형제들 간에 재판까지 가는 일은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만, 그래도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자기가 떳떳하지 못하게 벌어들인 돈을 믿고 맡긴 동생과 소송까지 간다는 것은 아무리 이해해주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 일이 체통·우정·형제애·배려, 이런 것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이런 덕목들이 사라진 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재판정에서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 가려지겠지만, 두 형제 중 한 쪽에서는 아주 중대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것도 재판정에서의 거짓말, 곧 위증(僞證)을 한 것입니다.

“고기를 먹는 사람은 비천하고 비린내가 난다”며 비난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그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바른 길을 알려주십니다.

“이 세상에서 사악하고 빚을 갚지 않으며/ 중상모략을 하고 재판정에서 거짓말을 하며/ 위조품을 만드는 사람들/ 몹쓸 죄를 지어서/ 이 세상 사람들 중에서 가장 비천한 사람들/ 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비린 것이오.”(《수타니파타》 제245게송)

그렇습니다. 남에게 빌린 물건을 되돌려주지 않고 재판정에서 거짓말을 하거나 위조품을 만들어 파는 것은 아주 큰 잘못입니다. 세속의 판단 기준과 법에 따라 처벌을 받기도 하지만, 설사 세속 법의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자연 법칙에 따라 언젠가 그 과보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 전생에 한 때 유명한 의사였다가 다음과 같은 사연으로 이번 생에는 눈이 멀게 된 눈 먼 스님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그가 어떤 여자 환자를 일부러 맹인으로 만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여인은 “제 눈이 완벽하게 치료되면 아이들과 함께 선생님의 종이 되겠습니다”고 약속을 했었습니다. 자신과 아이들이 종이 될까봐 두려워진 그녀는 그 의사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녀가 그에게 “제 눈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라고 말을 했지만, 실은 그때 그녀의 두 눈은 완벽하게 치료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의사는 그녀가 자기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복수심에서 그녀에게 또 다른 고약을 주었는데 이 약이 그녀의 눈을 완전히 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 악행의 결과로 그 의사는 그 뒤 여러 생애 동안 여러 차례 시력을 잃게 되었던 것입니다.

불자 여러분!
거짓말이란 이처럼 무겁고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악행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혹시 아무 생각 없이 거짓말을 하는 이웃이 있다면, 그들이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잘 이끌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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