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인식할 수 있는 힘과 사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힘이 없었다면 어떻게 문화를 창조했을까. 그래서 마음을 위대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제일 먼저 발견한 이가 고따마 씻다르타이다. 불교는 마음을 섬긴다.

인디아 사람들이 마음을 잘 섬기려고 창안한 것이 요가(Yoga)이다. 불교도 그렇다. 요가의 틀을 벗어나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다만 요가는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가 갈고 닦지 않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없고, 안락을 얻을 수도 없으며, 복을 지을 수도 없고, 덕을 베풀 수도 없다. 요가는 인간을 무한하게 개발할 수 있는 매우 합리적·과학적인 수행법이다.

불교요가(Buddhistic-Yoga)는 건강한 몸과 청량하면서 고요한 마음을 얻는데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요가는 싼쓰끄리뜨 [√yuj: 마음이나 생각을 고정시키다, 집중시키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Yoga는 마음을 한 점에 모아, 정신을 통일하는 동작이다. 사람의 영혼과 우주의 영혼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 Yoga의 본디 뜻이며, 이것이 또한 목적이기도 하다.

요가는 본디 인디아의 6파철학의 하나인 요가학파의 창시자 빠딴잘리(Patajali)가 기원 6세기경에 이제까지 이어져오던 많은 요가의 각파의 수행법을 여덟 요소로 정리하여 통일했다.

도덕·육체·정신
동시 수행 가능한
요가 통해 ‘자기’실현하자

일반적으로는 이것을 어슈따앙가 요가(Aga Yoga, 8支 요가)라고 한다. 이 여덟 요소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면 도덕적 수행·신체적 수행·정신적 수행으로 볼 수 있다. 그 여덟 가지란, 구체적으로는 야마(Yama, 禁戒)·니야마(Niyama, 勸戒)·아싸나(sana, 調身)·쁘라나야마(Pryma, 調息)·쁘라띠야하라(Pratyhra, 制感)·다라나(Dhraa, 凝念)·디야나(Dhyna, 禪定)·싸마디(Samdhi, 三昧)를 가리킨다.

한 그루의 온전한 나무는, 뿌리·줄기·가지·잎·나무껍질·수액·꽃·열매를 가지고 있다. 이들 구성요소들은 각각 분리된 주체성을 가지지만, 하나하나의 구성요소는 그 자체로는 나무가 될 수 없다.

요가도 그와 꼭 같다. 모든 부분들이 모여서 한 그루의 나무가 되는 것처럼, 여덟 요소들이 잘 어우러져서 완전한 요가를 이룬다. 우주적 원리로서의 Yama는 뿌리이며, 개인적인 수련으로서의 Niyama는 줄기이고, sana는 여러 방향으로 뻗어가는 가지와 같고, 에너지와 함께 호흡에 의해서 몸에 산소를 공급하는 Pryma는 탄소동화작용과 호흡에 의해서 나무 전체에 산소를 공급하는 잎과 같으며, Pratyhra는 감각들의 에너지가 밖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 마치 나무껍질이 나무가 쇠약해지는 막는 것과 같고, Dhraa는 몸과 지적작용을 지탱하는 나무의 수액과 같으며, Dhyna는 Samdhi라는 열매를 익게 하는 꽃이다. 열매가 한 그루 나무의 가장 발전된 결과라고 할지라도, 요가 수행의 정점은 진정한 자기의 실현이다.

한국 사람은 모두 한식을 먹고 산다. 같은 것을 먹고 살지만 사는 방식은 각각 다르듯이 요가도 그렇다. 요가를 수행하지만, 힌두교도는 힌두요가를, 자이나교도는 자이나요가를, 불교도는 불교요가를 한다. 불교수행이 생명력을 가지려면 도덕적 수행·신체적 수행·정신적 수행의 삼위일체라야 한다.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이 평 래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