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반 불교를 접한 뒤 20여 년이 넘도록 염불선 수행을 해오고 있는 이기화 서울대 명예교수. 그는 한국불교의 장자 종단인 조계종이 간화선 수행에만 치중한 채, 염불선 등 다른 수행법을 등한시 하는 점이 아쉽다고 했다.  편집자

“불교, 잘못된  정치현실도 제도해야”

 

◇이기화 서울대 자연과학대 명예교수는 정부가 정책을 잘못 펴고 있을 땐 불교가  나서 깨우쳐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준보(이하 심) : 몇 년 전 번역하신 《요범사훈》을 읽다 보면 마음 먹은대로 인생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2006년 정년퇴임식 자리에서 번역서 《요범사훈》을 선물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기화(이하 이) : 퇴임논문집을 만들었는데, 전공분야가 다르면 이해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갖고 있다가 버리기 일쑤죠. 그래서 먼 길 오시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었습니다. 혼자 20년 간 불교공부를 했어요. 그러다 《요범사훈》을 읽게 됐는데, 한자가 많아 영어로 번역된 책을 봤습니다. 틈틈이 번역하면서 법련사 홈페이지에 게재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책으로 만들게 됐죠. 처음엔 법보시를 했는데, 조잡하다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정식 책으로 발간했어요. 2006년 8월에 1쇄를 찍었는데, 지금까지 3년 간 6쇄를 할 정도로 꾸준히 잘 나가고 있습니다.

심 : 그 후에도 불교서적들을 출간하신 걸로 아는데, 어떤 책들입니까?
이 : 중국 명나라 때 고승 지욱(智旭, 1599~1655)대사가 지은 《아미타경요해(阿彌陀經要解)》를 미국의 저명한 불교학자 J.C. 클리어리가 영역한 《왜 나무아미타불인가》를 재번역했어요. 2007년 말 12월에 출간했지요. 또 7세 때 티베트의 위대한 스승 왕포 잠양 켄세의 세 번째 환생으로 판명된 종사르 승원 원장 종사르 잠양 켄세 스님이 지은 《무엇이 우리를 불교인이 되지 못하게 하는가》를 번역했습니다. 이 책은 친구의 부탁을 받고 번역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총 3권의 책을 번역했는데 다 잘 됐죠.

심 : 강단에서 은퇴하신 뒤 강의는 전혀 하지 않으십니까?
이 : 퇴임 후에는 강의를 하지 않는 게 학과 전통이라 학교에서는 전혀 강의하지 않아요. 한전이나 기상청에 지진 관련 자문을 하고 있는 정돕니다. 강남 봉은사에서 발행하는 〈판전〉이란 잡지에 칼럼을 쓰기도 합니다. 봉은사에서 가을에 불교아카데미를 개설하는데, 거기서 5주간 강의하기로 돼 있어 준비하고 있습니다.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요범사훈》을 보시고 연락해 와 인연이 됐지요.

심 : 전 법련사 주지 현호 스님과의 인연으로 40대 초반에 불교에 입문하셨는데,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이 : 개인적인 문제로 괴로워하다가 현호 스님이 법련사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찾아갔었지요. 개인적으론 고향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 때 이후로 심리적인 안정을 찾게 됐고, 불교에 심취하게 됐습니다.

심 : 평생 지구과학을 연구해 오셨는데, 불교의 어떤 점이 마음에 와 닿으셨습니까?
이 : 불교는 합리적인 종교입니다.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석가모니가 노력했던 방법이 합리적이었죠. ‘세상 모든 것이 고통이다. 그것의 원인이 뭐냐’, ‘원인만 제거하면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 고 했던 석가모니의 생각은 상당히 과학적입니다. ‘본인이 세상을 오해해서 고통을 받는 것이니 오해한 것만 알고 풀면 고통은 사라진다’는 이것이 바로 불교의 사상입니다. 하나님만 찾는 기독교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심 : 개인적으로 가르침을 준 스님이 있으십니까?
이 : 불교를 단지 학문이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로 생각하게 된 데는 전 송광사 방장이셨던 승찬 스님의 영향이 큽니다. 구산 스님이 송광사에 계실 때는 사람이 너무 많이 찾아와 구체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었어요. 하지만 승찬 스님이 방장으로 계실 때는 찾는 사람이 얼마 없어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할 시간이 많았습니다. 깨달은 바가 많았지요.
당시 승찬 스님이 ‘생사라는 것이 내 몸은 그냥 한 생각이 났다가 없어지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은 나에게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승찬 스님은 불성을 날씨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드는 기차 선로에 빗대어 말씀하셨죠. 일반적인 물리 현상이 아닌 불성으로 보신겁니다. 승찬 스님이 입적하신 뒤로 참선 공부를 더 이상 못하게 됐습니다. 스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선에 심취했었을 것입니다. 혼자서 해보려 했지만 잘 안 되더군요. 참선보다는 염불이 마음을 집중시키는데 편하고 쉬워 염불선에 관심을 갖게 됐죠.

심 : 20년이 넘도록 염불수행을 하고 계십니다. 염불선은 어떤 수행법인가요?
이 : 염불수행이 하근기의 사람들의 수행법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책을 읽다보니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아미타경》에는 ‘아미타불을 염하면 극락세계에 태어난다’고 되어 있습니다. 염불을 통해 부처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어요. 죽더라도 갈 곳이 있기에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는 것이죠. 염불수행은 불퇴전입니다. 후퇴가 없죠.

심 : ‘염불선 수행이 불퇴전’이라는 말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이 : 《아미타경》에 나와 있습니다. 극락세계에 가기만 하면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이 없지요. 천당과의 다른 점은, 극락세계에 가서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겁니다. ‘후퇴하지 말고 도를 닦아 성불해라. 그 뒤 다시 내려와 중생을 구제하라’ 이것이 《아미타경》에 실려 있는 정토의 정신입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정화됩니다. 아름다운 환경, 자신의 불도를 도와줄 사람만 있는 곳이 극락정토입니다.

심 : 선수행에 매진했던 수행자들이 입적할 때 선수행을 접고 염불수행을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같은 이유인가요?
이 : 맞아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죄업이 하나도 없어야 부처가 되는 일반적 수행방법과는 달리 염불수행은 죄가 많은 사람도 일단 염불을 하기만 하면 죄업에 상관없이 극락세계에 가게 됩니다. 즉 죄를 많이 지어도 염불을 열심히 하면 아미타불이 다 죄업을 씻어주고 극락세계에 데려다 준다는 말입니다. 지금껏 조계종에서는 간화선 수행만을 중요시하고 염불수행 등 타 수행법에 대해서는 등한시 해온 게 사실입니다. 제가 볼 때는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염불수행을 활성화 하는 게 불교의 대중화를 위한 한 방편입니다.

심 : 절을 천만 배 한 스님을 인터뷰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절을 하기 전에 독경이나 염불을 먼저 하셨는데, 불교에서 불경시하는 음식을 먹지 못하겠더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런 걸 지키는 부분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 : 저도 육식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염불을 해 자연스럽게 마음이 맑아지면 의식적으로 하지 않아도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김영랑 시에 보면 “내 마음 어딘가에 끝없이 강물이 흐르네”라는 구절이 있는데, 염불·기도·화두가 끝없이 마음속에 흐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의식 속에 하나의 생각·염불·기도·화두가 끝없이 흐르도록 하면 굳이 절을 하지 않아도 수행이 됩니다. 즉 염불을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진짜 수행은 마음속으로 끝없이 염불을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심 : 염불수행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 처음에는 정해진 시간에 틀림없이 염불을 해야겠다는 각오와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습관이 길러지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염불할 수 있게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좋지만 자기 전 이불 속에서 염불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잠재의식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아침에 일어나면 염불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면 염불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되죠.
심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우리나라가 너무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불자들은 어떤 입장을 지녀야 화합을 이룰 수 있을까요?
이 : 불교란 중도인데, 우리나라는 너무 극단적 정치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집착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집착을 버려야 불제자입니다. 세상을 좀 멀리 보고, 지혜를 가지려 노력해야 합니다.

심 : 조계종이 현 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정부가 한 쪽 면만을 보고 극단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코살라국이 부처님의 나라인 카필라국을 치러 갈 때 나무 밑에서 보고 있다가 세 번째 침공 때 돌아섰던 부처님처럼 소극적 입장에 있어야 합니까?
이 : 불교가 항의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를 깨우쳐 줄 필요가 있어요. 현 정권이 잘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노를 표하고 각을 세우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심 : 향후 집필활동이나 사회활동 계획은 있으십니까?
이 : 전공분야에서 도움요청이 오면 도움을 주고, 불교와 맺은 인연을 살려 공부 하고 집필해서 올바른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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