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그는 우리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잊혔던 인물이었다. 그런 기억을 되살려 낸 이는 일본의 오야 토쿠죠라는 학자였다. 그는 일본에 전승되어 오던 의천에 관한 자료들을 모으고, 한국과 중국에서 새로운 자료들을 발굴하여 1937년 라는 책을 출간했다. 을 비롯하여 의천이 집성하고 편찬한 , 등에 관한 자료들을 망라하여 소개하고 있다. 그는 의천이 조성했던 대규모의 출간사업을 ‘공전(空前)의 위관(偉觀)’이
창의성 향상 뇌 발달 도와 세상이 디지털화되고 있다. 편리해졌지만 감성이 메마를 수 있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한다. 대표적인 것이 글 쓰는 일이다. 과거 같으면 글씨는 손으로 써야 했다. 지금은 워드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그 덕분에 다양한 그림을 삽입하거나 글을 수정, 편집하는 일은 편해졌다. 반면 글을 쓸 때 손을 통해 전해지던 감성은 사라졌다. 마찬가지로 손글씨를 읽는 사람이 받던 느낌도 더 이상 체험할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손 글씨의 소중함은 이런 감성적 측면만은 아니다. 디지털 시대
엄숙·경직성 벗고 자유로움 담자 중국의 서법이나 일본의 서도와 같이 우리나라는 서예라는 이름으로 유구한 역사를 가진 글씨 예술 분야를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근대에 와서 서예는 그저 초등학교에서 한두 번 정도 해보는 누구나 일천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최근 캘리그라피, 즉 손글씨예술이라는 분야가 활성화 되면서 한글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시장이 형성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한글과 손글씨의 매력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그렇다면 서예와 캘리그라피는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우선 서예
사경, 경전의 확산 통해 종교를 지탱, 발전시킨 거룩한 행위 문화의 다양한 전개와 발전, 문명 발달의 뿌리에는 지식의 집적(集積)과 전파가 있었다. 그리고 지식의 집적과 전파는 문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문자는 ‘문화와 문명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문자는 지역과 민족에 따라 새로운 형태로 창조되어 시대의 변화에 따라 통·폐합, 혹은 분화되어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분포를 띠게 되었다. 그리고 저마다의 문자에 내재된 성격에 수반되는 여러 특성들을 지니게 되었다. 인간의 쓰기 활동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디지털 시대의 대표적 아이콘이다. 자판을 두드려 문자나 메일을 보낸다. 손으로 써서 보내던 편지를 연필 없이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빠르고 편리하게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됐지만, 연필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쓰는 정성은 덜해진 게 사실이다. 큼지막하고 꼬불꼬불 한 어린 아이의 글씨, 예쁘고 아름다운 서예가의 글씨, 보기만 해도 정감이 간다. 손글씨는 마음이 되고, 신앙이 되고, 사랑이 된다. 그리고 이제는 손글씨가 예술로 피어오르고 있다. 멋드러진 손글씨의 세계를 만나보자.
백성 속에 뿌리 내린 불교에 ‘한글’이란 날개를 달다 한글이 세상에 나온 지 570돌을 맞았다. 한글 즉 훈민정음(訓民正音)은 1443년(세종 25)에 창제되어 1446년(세종 28) 음력 9월 상한에 반포되었다. 오늘날 한글날로 제정된 10월 9일은 당시 반포 날짜를 음력 9월 10일로 상정하여 양력으로 환산한 것이다.반포 초기 훈민정음과 불교의 인연은 남달랐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이용한 문헌으로 먼저 , 등의 불경 언해와 ,
천고마비(天高馬肥). ‘하늘은 높아지고, 말은 살찐다’는 계절,가을을 상징하는 단어다. 가을엔 사색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책을 읽는 이도 많아진다. 사색하기 좋은 대표적인 장소는 사찰이다. 조계종은 전국 14곳의 사찰에 도서관을 오픈했고, 천태종도 1994년 문을 연 부산 삼광사 도서관을 비롯해 분당 대광사는 북카페, 서울 관문사는 열린도서관을 9월 중 오픈할 예정이다. 올 가을 사찰도서관을 찾아 평생 동안 먹을 마음의 양식을 쌓아보자. 사찰도서관과 함께 매주 정기모임을 갖는 불서 읽기모임도 소개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과 어려운 교학을 불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 쓴 서적 등을 통칭해 불서(佛書)로 부른다. 2013년 북칼럼니스트 이미령 씨가 이끄는 ‘붓다와 떠나는 책 여행’을 필두로 불교계에 불서읽기 모임이 유행처럼 번졌다. 하지만 현재는 몇몇 모임들만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매주 불서를 읽고 토론하며 부처의 길로 나아가는 불서읽기 모임 2곳을 소개한다. 불교명상도서관 니까야 아카데미수원 공소사 불자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기 위해 가정에서 시작한 모임이다. 인원이 점점 많아지
윤창화 민족사 대표/ 절 집안의 고춧가루 송편세속사와는 무관한 불문(佛門). 그러나 중요한 명절이 되면 분주하다. 부처님과 개산조, 조사 선지식에게 다례(茶禮)를 올리기 때문이다. 동지ㆍ정초ㆍ백종ㆍ추석 가운데 가장 중시하는 명절은 정월 초하루와 추석이다.추석은 그해 생산된 과일이나 곡식을 올리는 명절. 그래서 사찰에서도 송편ㆍ사과ㆍ배 등 그해 산물(産物)을 준비하여 부처님께 올린다. 추석을 준비하는 것 가운데서도 메인 메뉴는 송편 만들기. 송편을 만들 때는 노스님 등 어른 스님들을 제외한 모든 대중들이 울력을 한다. 삼삼오오 큰방에
충무공 정신 온 몸으로 느껴 ‘현충사(顯忠祠)’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지 100년 뒤인 숙종 32년(1706년)에 세워진 사당입니다. 현충사란 이름도 숙종이 친히 내린 것으로 전해집니다. 천안아산역에 도착해 택시 또는 지하철을 타고 온양온천역에 내려 다시 한 번 시내버스를 이용해야 합니다.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손꼽히는 충무공 이순신.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이 혼인 후 무예를 연마하여 구국의 역량을 기르던 곳입니다. 푸른 녹음이 가득한 여름과 노
백범과 백화마을 ‘아름다운 인연’ 간직 김구 선생(1876~1949)과 전재민(戰災民, 전쟁으로 재난을 당한 사람)의 아름다운 인연을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 바로 ‘광주백범기념관’입니다.해방 후 광주광역시 동구 일대는 일제강점기 때 조국을 떠났다가 귀국한 전재민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김구 선생은 이들의 어려운 처지를 알고 성금을 기증했습니다. 당시 서민호 광주부윤(지금의 시장)은 이 기금을 종잣돈 삼아 100세대의 집을 지어 전재민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마을 이름을 ‘100가구가 화목하게 살길 바
‘여학생 희롱’ 전국 학생운동으로 확대 1929년 10월.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통학열차 안에서 일본인 남학생들이 조선인 여학생을 희롱했습니다. 이 모습을 목격한 조선인 남학생과 일본인 남학생 사이에 패싸움이 벌어졌죠. 사건을 맡은 일본 경찰은 일방적으로 일본인 학생 편을 들었고, 조선인 학생들을 구타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규모 항일 시위가 벌어졌고, 광주에서 시작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됐지요. 전시실에는 학생들의 항일운동 당시 장면, 학생들이 입은 교복, 활동 모습 등
국내 유일의 애국지사묘지공원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들의 넋을 기리는 공원이 대구 신암동에 있습니다. 국내 유일의 애국지사묘지공원인 ‘신암선열공원’입니다. 대구의 관광지인 금호강변과 동촌유원지와도 가깝게 위치해 가족과 함께 나들이 삼아 방문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입구에서 공원 안으로 들어서면 공원을 지키고 있는 커다란 비석이 보입니다. 이 비석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공원의 본관이자 애국선열들의 위패를 모신 단층각이, 왼쪽에는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대구 출신 애국선열
독립문-형무소-사형장 ‘섬뜩’독립 열망 품은 희생에 ‘먹먹’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대한독립 만세’의 함성은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울려 퍼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당시 만세를 외친 수많은 사람들은 일본 헌병과 경찰에 의해 감옥으로 끌려가 옥고를 치렀고, 이 와중에 많은 분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렇게 희생된 순국선열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서대문 독립공원’입니다. 독립공원에 가면 멀찍이 우뚝 솟아 있는 독립문이 보입니다. 원래
혼수품 옷감 한 필과 대나무로 만든 태극기‘독립만세’ 외친 학생들 목소리 들리는 듯 대청산 기슭에 자리해 대청공원으로 더 잘 알려진 중앙공원을 찾으면 우뚝 솟은 충혼기념탑이 눈에 들어옵니다. 탑의 반대방향으로 5분 정도 걷다가 모퉁이를 돌면 광복기념관이 나옵니다. 2000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후손들이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숭고한 민족정신을 계승해 올바른 국가관을 확립하게 하자는 취지 아래 건립됐습니다.전시실에는 안중근 의사 공판 속기록 번역서(사본), 의병장 전성범이 사용하던 장총, 대구사범학교
선사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우리나라 반만년 역사 한눈에 지금의 대한민국은 국가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애국지사가 있었기에 존재합니다. 이런 애국지사들의 뜨거운 혼을 체감할 수 있는 곳. 바로 천안에 위치한 ‘독립기념관’입니다.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상징하는 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이런 관심 속에 독립기념관은 1987년 8월 15일 개관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혹시 독립기념관이 천안에 위치한 이유를 아시나요? 이 지역에서 3ㆍ1만세운동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나라가 안팎으로 들끓고 있다. 안보 주권을 위한 결정이라는 명분과 지역의 반대 목소리 그리고 주변국들의 예민한 반응이 첨예하고 미묘하게 대립하고 있는 8월이다.8월의 가운데 날은 71주년을 맞는 광복절이다. 일제강점 36년, 나라 잃은 설움이 뼈에 사무치고, 광복을 위한 열망만으로 몸이 뜨거웠던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 대한민국도 없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힘은 무엇일까?땅과 물과 바람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 듯,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과 주권국가로서의 자부심을 잊고 살지는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2년 전 불교청년허브 ‘절오빠 절언니’ 결성스마트폰 활용 소셜네트워크로 ‘불교’ 전파20~30대 불자와 ‘불교이야기’ 나누며 소통SNS운영하며 불교활동 심화, 신심 깊어져온라인 홍보는 오프라인 모임을 위한 방편TV나 라디오에서 종교가 개신교인 연예인들이 들려주던 연애사나 인연 이야기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교회오빠’, ‘교회언니’. 몇 해 전 이름난 국내 유명 가수가 자신이 진행하던 한 라디오 방송에서 자신을 ‘절오빠’라고 표현했다. 이후 ‘거사님’, ‘보살님’, ‘법우님’으로 불리던 청년불자들의 호칭이 ‘절오빠’, ‘절언니’로 불리
불교계 활용도는 ‘보통’, 적극성은 ‘미달’ 수준SNS용 문화ㆍ명상ㆍ수행 프로그램 관심 필요동영상 사이트 이용 시ㆍ공간 넘어 소통해야지인 중심 지양, 개방형 SNS에 관심 기울일 때SNS(Social Network Sites)는 온라인 매체를 활용하여 관심이나 활동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관계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온라인 서비스 및 플랫폼이다. SNS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온라인상에서 지원되는 플랫폼 혹은 포털사이트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관심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이고 독자적으로 코너를 만들고 그곳에 각종
TV중독ㆍ인터넷중독서 진화한 ‘스마트폰 중독’‘가장 멍청한 세대’ㆍ‘천박한 사람’ 비난여론 ‘暗’SNS, 튀니지 변혁ㆍ이집트 독재 종식 주도 ‘明’붓다 지혜와 사유, 탁월한 스마트폰 중독 치료제긴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 고전 명작이 아예 한 편도 없는 젊은 세대도 적지 않다. 모두 스마트폰이 빚어낸 변화다.스마트폰, 국립국어원이 순화한 우리말은 ‘똑똑전화’다. 스마트폰이든 똑똑전화든 명분은 같다. 똑똑하거나 스마트하게 만들어주는 매체라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현대인에게 똑똑전화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