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없는 정토신앙 강조 특징 고려 후기 널리 조성되었던 수월관음도는 ‘입법계품’에 수록된 선재동자의 구도여행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두 그루의 청죽(靑竹)이 솟아있는 암좌에 정갈한 모습으로 반가좌한 채 선재동자를 맞이하고 있는 수월관음의 형상은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아름다운 정경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금니를 사용한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표현이 돋보이는 고려의 수월관음도와 달리 굵고 활달한 묵선으로 표현된 무위사 극락보전 관음보살은 도상과 표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무위사 전각 건립 40여 년 뒤 후불벽 그려 전라남도 강진군 월출산의 남쪽 기슭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고찰인 무위사(無爲寺)에는 국보 13호로 지정되어 있는 극락보전이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전한다. 1430년에 지어진 조선초기의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에 맞배지붕을 가진 단층 전각이다. 전각의 내부 수미단에는 조선후기의 전각과 달리 후불벽을 설치하여 공간을 앞면과 후면으로 분할하여 후불벽의 앞 수미단에는 아미타삼존상을 봉안하고 그 뒤에 아미타삼존후불벽화를 그렸다. 1478년에 조성 봉안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옥중생 구제와 정토왕생 모두 서원 죽음 이후 다른 육체를 받기 이전의 중음(中陰)의 세계에 빠진 인간들은 명부(冥府)세계에서 살아생전 쌓은 죄업을 명부의 왕들에게 심판을 받는다. 조선후기 시왕도에는 열 명의 시왕이 각각 망자에 대한 죄를 논하고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리는 장면이 연출되어 있다. 탁자 앞에 앉아 심판하는 시왕의 모습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시왕도의 하단에는 각 시왕이 관장하는 지옥의 장면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처참하게 죄를 받고 있는 죄수와 두려움에 떨며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현신, 선재 구도행·깨달음 상징 고려 귀족 사회의 화려함과 아취(雅趣)를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는 불화 중에서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의 아름다움은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중에서도 일본 카라쓰(唐津) 가가미진자(鏡神社)에 전하는 〈수월관음도〉는 고려불화 최고의 정수를 보여준다. 1310년 5월 고려 충선왕의 애첩인 왕숙비가 후원하여 도화원의 화원이 그린 이 불화는 가로폭이 419.5cm, 세로폭이 254.2cm의 거대한 화폭에 그려진 고려 최대의 불화이기도 하다. 이 불화의 화면 아래에는 1391년 승
〈법화경〉 7만 자 법화탑 모양 따라 사경 고려후기에는 국가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귀족들의 개인적인 발원으로 널리 사경이 조성되어 그 어느 때보다 귀족적이고 화려한 사경문화가 꽃 피었다. 사경은 감색 혹은 자색 등으로 물들인 고급스런 한지에 금 또는 은니로 변상도를 정밀하게 그려내고, 표지까지도 소담스런 넝쿨진 꽃으로 아름답게 장엄하고 있다. 사경은 공덕을 쌓기 위한 수행이나 전법의 방편으로 그 가치가 크지만 고려인들은 사경을 고려후기의 우수한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예술적인 가치와 아름다움을 지닌 창작물로 승
고려 정토신앙, 〈법화경〉 근거한 성불 지향 고려후기 ‘영산회상변상도’ 하단에 표현된 아사세왕은 아버지를 죽이는 패륜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참회를 통해 구원 받아 성불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상징적 인물이다(550호 15면 그림 참조). 이 아사세왕 도상은 특이하게도 고려 13~14세기에 조성되었던 ‘영산회상변상도’에만 한시적으로 등장하는데 과연 그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도상(圖像, Icon)은 종교, 신화 및 그 밖의 관념체계 상 어떤 특정한 의의를 지닌 미술품에 나타나는 인물 또는 형상을 가리키는 용어이다.도상
법화참법 수행하면 누구나 성불 의미 영취산에서의 부처님 설법장면을 묘사한 고려 후기의 ‘영산회상변상도’에는 당시 성행했던 예참의식과 성불을 상징하는 독특한 도상이 있다. ‘영산회상변상도’에는 영취산을 상징하는 산수 표현이 배제된 빈 공간에 석가모니불이 중앙의 높은 대좌 위에 자리하고, 그 주변을 10대 제자가 에워싸고 있다.석가여래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상서로운 보개의 양 옆에는 시방제불(十方諸佛)이 5불씩 나뉘어 구름을 타고 강림하고 있다. 5불의 옆에는 각각 석가여래의 협시보살인 문수와 보현보살이 각각 사자와 코끼리 위에 앉은
고려 독자적 여성성불관 구현 초기 교단과 달리 부파불교시대에 들어와서 양성 평등의 성불사상은 희석되고 왜곡되어 여성은 불교적 구원에서 배제됐다. 심지어 계율을 중시하는 경전에서는 성도(成道)를 방해하는 죄 많은 존재로까지 인식되기도 했다.이런 여성의 성불에 관한 인식에 변화가 생긴 시기는 초기 대승불교시대이다. 여기에는 ‘여성도 성불할 수 있다. 단, 성불하기 이전에 남자로 변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변성남자(變成男子)의 성불 이야기는 〈법화경〉 제파품(提婆品)에 쓰여진 용녀설화가 대표적이다. 겨우 8살의 여자아이인 용녀는 〈
중생구제 서원이 진정한 성불(成佛)의 길 불자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염원은 세상의 모든 고통과 번뇌로부터 벗어나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얻는 성불(成佛)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죽음에 대한 인간적인 두려움도 갖고 있기에 극락왕생을 바라는 소원(所願)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극락왕생과 성불은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 극락왕생이 곧 성불인 것일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극락왕생한 후에 어떤 과정을 거쳐 성불에 이르는 것일까?중국인들은 인도에서 가져온 정토관련 경전을 번역하면서 정토를 ‘안락국토(安樂國土)’라고 번역했다. 그만큼 안락
16묘관수행 통해 아미타불 극락 인도 깨달아 아미타삼존불이 내영한 순간을 극적으로 묘사한 고려후기의 유일한 작품이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아미타삼존내영도’다(그림). 아미타불의 육계주에서 나온 빛은 화면의 오른쪽 아래에 왕생자를 비추고, 본존보다 약간 앞에 나와 있는 관음보살은 연화대좌를 앞으로 내밀 듯 허리를 굽혀 왕생자를 대좌 위에 태우려 하고 있다. 아미타불의 오른편에 자리한 지장보살은 삭발한 스님인 성문의 모습으로 무명(無明)을 깨치려는 듯 밝은 빛을 내는 여의보주를 오른 손바닥에 올리
칭명염불 수행 통한 극락왕생 보여줘 ‘내영(來迎)’은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세계에서 인간이 머무는 사바세계로 내려와 임종이 임박한 왕생자를 영접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아미타불이 왕생자가 있는 곳에 직접 와서 데려간다는 점에서, 정토왕생은 아미타불의 힘에 전적으로 의존해 이뤄진다. 아미타불의 전신인 법장비구(法藏比丘)는 〈무량수경(無量壽經)〉에서 48원 중 19번째에 ‘임종 시 극락에 태어나기를 원할 때 대중에게 둘러싸여 아미타불 앞에 나타나지 못한다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발원할 정도로 내영인접(來迎引接)에 대한 강한 염원을 드러내
아미타정토는 성불로 향하는 수행의 땅 번뇌로 가득 찬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토는 가장 이상화된 구원의 장소다. 그 중 가장 사랑받는 아미타극락정토는 청정ㆍ안락하며 영원한 수명을 누릴 수 있는 극상의 아름다움을 지닌 곳이다. 중국의 불교 수용 이후 동아시아의 사상가들은 아미타정토가 어떤 곳인지, 그곳에 가기 위해 어떤 수행과 의식을 행해야하는지 끊임없이 연구하며 대중과 함께 실천했다. 사람들은 왕생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갖고 있지만 또한 스스로 부처가 되는 성불(成佛)을 추구하기도 한다
당대 선도대사 정토왕생관 드러나 〈관무량수경〉(이하 〈관경〉)은 인도 마가다국의 왕사성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기사굴산에서 석가모니불이 설한 내용을 적은 경전이다. 빔비사라왕의 아들 아사세는 제바달다의 나쁜 꼬임에 빠져 아버지를 감옥에 가두고 왕권을 찬탈했다. 이에 왕비 위데희는 몰래 먹을 것을 넣어 왕을 연명시키려 했으나 발각돼 옥에 갇힌다. 비탄에 빠진 왕비는 멀리 기사굴산에 계시는 석가모니불에게 구원을 청했고, 부처님은 친히 왕궁에 출현,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 극락왕생할 수 있는 방편으로 관상수행법을 가르쳐주셨다.〈관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