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유대교 절대자가 계율 제정 오신채를 비롯해 불교의 음식 관련 계율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다른 종교의 음식 관련 계율은 해당 종교 신도들을 제외하고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슬람교의 ‘할랄(halal, halaal)’과 유대교의 ‘카셰르(kasher, kosher)’도 그런 음식 계율 중 하나다.할랄, 도축 시 동물 고통 최소화아랍어로 ‘할랄’은 ‘허용된’이란 뜻으로 이슬람교의 경전 코란(Koran)에서 먹어도 된다고 한 음식이다. 허용되지 않는 음식은 ‘하람(haram)’이라고 한다. 할랄은 음식에 대
인도, 재래종 소는 숭배 물소는 도축 인도는 소를 신성시 한다. 성지순례를 다녀온 불자들은 한번쯤 경험해 보았겠지만, 소가 도로 한가운데 앉아 있으면 운전자는 피해가거나 무작정 기다린다. 이렇게 소를 신성시하는 이유는 힌두교의 영향이다. 13억 명의 인구 중 약 10억 명이 힌두교를 신앙하다보니 인도연방 헌법은 소의 도살을 금지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주에서도 ‘소 보호법’을 제정해놓고 있다.힌두교 포교 위해 신성시소를 신성시한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조금 다르다. 전문가들은 농경문화와 함께 불교, 자이나교 등 인도 고대
걸식 인한 위생에 효과 탁월 마늘과 생강은 모두 매운 맛을 지니고 있지만, 마늘이 오신채에 해당하는 반면 생강은 사찰음식에 즐겨 사용되는 향신료다. 생강과 비슷한 식물로는 ‘인도’하면 떠오르는 강황과 울금이 있다. 생강이 ‘생강목-생강과’에 속한다면, 강황과 울금은 둘 다 생강과 중에서도 ‘쿠르쿠마(Curcuma)속’에 포함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생강과 울금, 강황은 모두 맛과 성분에 차이가 있는데, 이 중 생강은 알싸하고, 매콤한 맛과 톡 쏘는 상쾌한 향이 나는 게 특징이다. 생강은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성분이 있어
‘취하게 마시지 말라’가르쳐 절집에서는 흔히 술을 ‘곡차(穀茶)’라고 부른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조선시대 때 진묵 대사(1562~1633)가 술 마시길 좋아했는데 ‘술’이라고 부르기가 겸연쩍어 ‘곡차’라고 불렀다는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진묵 대사가 ‘겸연쩍어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승불교권에 해당하는 우리나라 승단이 그 이전부터 술을 금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승들의 일화에는 ‘곡차’가 자주 등장한다. 이런 배경에는 술 마시는 행위 자체만으로는 계를 어겼다[犯戒]고 보지 않는 의식이 바닥에 깔려 있었기 때문
냄새와 식탐이 금기 이유 대승불교권에서 금기시하는 ‘오신채(五辛菜)’는 글자대로 매운 맛을 내는 다섯 가지 채소를 말한다. 〈범망경(梵網經)〉은 오신채의 종류를 “대산(大蒜), 혁총(革蔥), 자총(慈蔥), 난총(蘭蔥)과 흥거(興渠)”라고 적고 있다. 모두 생소한 이름인데, 우리말로 풀이하면 ‘대산’은 마늘, ‘혁총’은 부추의 일종, ‘난총’은 파, ‘자총’은 달래의 일종이다. ‘흥거’는 미나리과 식물인데 동북아시아에는 나지 않는 식물이다.오신채는 흔히 스님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양기(陽氣)를 북돋우기 때문에
동물만큼 식물 생명도 존중 불교의 육식 금지는 대승불교권 일부 국가에만 해당한다. ‘상편’ 말미에서 언급했듯이 대승불교의 육식 금지는 비린 음식을 부정하다고 생각했던 고대 인도 문화, 즉 힌두교와 자이나교 등의 영향을 받았다. 결국 대승불교에 와서 ‘육식은 무조건 금해야 한다’는 경전이 등장한다. 〈열반경〉, 〈능가경〉, 〈범망경〉, 〈승만경〉 등은 극단적으로 육식을 금한다.동물과 식물의 생명 차이〈대반열반경〉 ‘사상품’에는 “고기를 먹는 것은 큰 자비 종자를 끊는 것”이라며 육식을 금하는 내용이 나온다. 초기불교에서 볼 수 없었던
금한 건 육식 아니라 살생 육식은 불교에서 음식과 관련, 가장 민감한 사안이다. 경전이나 계율에 대한 해석, 지역이나 환경적 차이에 따라 입장이 다른 게 원인이다. 오늘날 불교를 신앙하는 국가별로 살펴보면 육식을 금하는 나라보다 허용하는 나라가 많다. 남방불교권인 스리랑카, 라오스, 미얀마 등은 탁발을 하면서 육식도 한다. 라마불교권 국가인 네팔, 티베트, 몽골 등은 탁발을 하지 않지만 육식은 허용한다. 고원지대 특성상 채소가 귀하고, 육식은 유목민족의 주식이기 때문이다. 대신 늙거나 허약한 가축을 선별적으로 도축한다.대승불교권은
계율 통해 형평성 유지, 초대자 배려 불자들은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을 보면 정성 담긴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우리나라 선방에도 안거 기간 ‘대중공양’이란 전통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런 마음은 부처님 당시 인도의 재가불자들도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재가불자들의 식사초대를 받아 공양을 하는 형태가 바로 ‘청식(請食)’이다. 경전에는 부처님께서 재가불자의 초대를 받고, 제자들과 함께 청식에 응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 때 부처님은 초대한 사람과 가족들을 위해 법문을
환자에겐 특식, 기근 때 저장도 허용 오욕(五慾) 중 하나인 식욕(食慾)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다. 음식은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요소지만 자칫 욕망이 요구하는 대로 먹다보면 ‘맛난 음식’을, ‘많이 먹는’ 습관이 생기게 된다. 〈유가사지론〉 등 불교 논서는 음식에 대한 탐욕을 ‘미식탐(美食貪)’과 ‘다식탐(多食貪)’으로 분류한다. 걸식과 오후불식은 이런 두 가지 식탐에 대한 일차적 대비책인 셈이다. 또 재가자들의 식사 초대를 거부하고 항상 걸식만 하는 ‘항걸식(恒乞食)’과 일곱 집에서 걸식할 때 한 집도 건너뛰지 못하게 한
수행자에 하심, 보시자 공덕 짓게 해 예전 순진했던 아이들은 아름다운 여자에게 이런 로망을 품었다. ‘저 사람은 이슬만 먹고 살고, 화장실은 가지 않을 거야.’ 이런 말도 안 되는 로망의 대상에 간혹 스님이나 수녀님이 포함되기도 했다. 하지만 미스코리아든, 도통한 고승이든 먹어야 산다. 먹기 위해서는 음식을 구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돈을 주고 사서 먹거나 농사를 지어 직접 조리를 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 두 가지를 계율로 금했다. 오직 걸식(乞食)만 허용했다. 걸식은 발우를 들고 재가불자들의 집을
‘무엇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느냐’ 중요 요즘 텔레비전은 ‘먹방’ 즉, ‘먹는 방송’이 대세다. 그만큼 먹을 게 풍부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밥투정, 반찬 투정을 할 수 있다는 건 사실 행복한 비명이다. 1960년대 보릿고개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밥은 ‘생명줄’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 초근목피로 연명했다. 마을 인근의 산은 벌거숭이가 됐고, 1970년대 정부의 녹화사업 이후 겨우 제 모습을 찾았다.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바로 ‘음식’이다. 음식과 문화는 뗄레야 뗄 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