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정치에 국민 피로감
총선, 올곧은 정치인 뽑아
​​​​​​​K-문화와 함께 발전 이루자

한국의 정치판을 보고 있노라면 정책 대결이라는 품격보다는 진흙탕 싸움이라는 인상이 짙다. 정치라는 것이 권모술수도 있고 말 바꾸기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다. 정치는 타협과 양보의 테크닉이다. 그러나 오로지 사생결단을 내려는 극단적인 행위들이 난무한다. 여야가 주고받는 언설에는 미사여구 속에 감추어진 독기만이 있을 뿐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찾을 길이 없다.

정치에 대한 교수들의 농담 한 토막. ‘이 세상에서 제일 역사가 오래된 학문이 무엇일까?’라는 논쟁이 있다. 대부분 철학을 들지만 종교학·수학·의학 등을 꼽기도 한다. 정답은 의외로 정치학이다. 정치판의 꽃은 당연 국회의원이다. 정치판이 지저분하다는 것을 다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려고 난리를 피운다. 왜 그럴까? 이유는 자명하다. 권력과 돈을 향유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면책특권 또한 매력적이다. 국회는 법을 제정하고, 법을 지키며, 법을 어기는 이들을 벌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그 핵심인 국회의원들이 법을 무시하는 법속에 안주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병폐다. 대한민국의 현역 국회의원 283명 가운데 전과자는 47명이다. 6명 중 1명이 범법자인 셈이다. 그들이 법을 말하고 정의·민생을 운운하는 것은 코미디의 수준을 넘어서 비극적인 모습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정치가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근본원인은 여전히 이데올로기의 그림자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집단의식은 구세대적인 편가르기의 수단일 뿐이다. 보수도 진보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고, 진보도 보수적 경향을 띄울 수 있다. 그런데 보수냐 진보냐 하는 프레임을 씌워서 양자택일의 흑백논리를 강요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 진영은 선이고, 반대편은 악이라는 단순논리를 펴나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에는 이들의 잘못된 싸움을 중재하는 그룹이 없다. 원로도 이미 힘을 상실했고, 새로운 동력도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판국이다.

20세기를 지배해 온 사상 흐름은 실존철학적 경향이 있다. 인간이라는 근원적 문제에 천착하면서 모든 인간사를 선과 악의 대결로 풀어가려고 하였다. 드라마나 소설의 주제 또한 선악의 갈등이었다. 처음에는 착한 주인공이 지지만, 우여곡절 끝에 악인을 물리치는 권선징악적 해피엔딩이 과거 문학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21세기는 이와 같은 실존적 사고(思考)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이 무엇이냐를 따지기에 앞서 보다 시급한 문제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정치는 정치가 아닌 본래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지금처럼 여야가 싸움을 계속하면서 서로 자신의 편을 들어 달라고 호소한다면 국민적 피로감은 폭발할 수 밖에 없다. 오직 특검과 거부권만이 난무하는 정치판에 국민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 단 한 번만이라도 상대편의 주장에 동조한 적이 있는가? 무조건 반대해 놓고 그 다음에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이 지금 여야의 모습이다. 금년 총선은 어느 쪽이 이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올곧은 사람이 국회에 입성하느냐가 관건이다. 지금 한국은 여러 면에서 세계의 주역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는 물론이고 K-팝이나 문화적 감수성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비약적 발전은 경이롭다. 이 호기(好機)를 정치가 망쳐서는 안 된다, 그 키를 잡고 있는 힘은 바로 5,000만 국민이다. 불자들의 대오각성과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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