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기운 살리는 지신밟기
딱딱하게 굳은 땅 깨우듯
​​​​​​​닫힌 마음과 굳은 몸 깨우자

줄어들었던 키가 원래대로 돌아온, 조금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나이 들수록 뼈의 밀도와 구조가 바뀌어 키도 줄어든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왠지 서럽게 여겨졌다. 그런데 두어 달의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하면서 원래 키로 돌아온 것이다. 굳어 있는 몸을 깨우는 이완이 필요했던 셈이다.

정초에 지신밟기를 하는 풍습도 겨우내 딱딱하게 굳은 땅을 깨우는 의미를 지녔다. 집집이 농악패가 풍물을 울리며 마당을 밟아 지신(地神)을 일깨움으로써 한 해의 복과 무탈을 비는 것이다. 지신을 밟을 때는 대문ㆍ안방ㆍ부엌ㆍ장독대ㆍ뒷간의 곳곳을 돌며 고사 소리를 이어간다.

장독대에선 이 집 장맛이 좋아지게 해달라 하고, 곳간에선 곡식 떨어지는 일 없이 가득하길 빌며, 마구간에선 우마가 탈 나지 않고 일 잘할 수 있기를, 우물 앞에선 맑은 물이 마르지 않고 샘솟기를 비는 것이다. 이곳저곳 고루 밟으며 땅의 기운을 살리는 주술적 기원이라 하겠다.

쌍계사 고산 스님은 생전에 신도들이 절에 와서 탑 주변을 쿵쿵 밟으며 돌더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세 절을 밟아야 복을 받는다고 해서 밟습니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삼사순례’를 ‘세절밟기’라 부르면서, 일종의 지신밟기로 여긴 셈이다. 밟는 행위로 무언가를 일깨우는 종교ㆍ주술적 공감대를 지녔다면, 세 절을 ‘밟는 것’이 당연했을 법하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날씨가 추울수록 몸이 움츠러들듯, 삶이 힘들수록 마음도 닫히기 쉽다. 그리하여 머리의 생각을 마음으로 참되게 느끼지 못하고, 마음으로 느꼈더라도 손발로 실천하지 못하는 딱딱하게 굳은 몸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근육을 풀어주고 땅을 밟듯이, 우리의 닫힌 마음과 굳은 몸을 깨울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오래전 12월의 어느 겨울날, 산사의 새벽예불에 참관한 경험을 잊을 수 없다. 저녁예불까지 온전히 하루를 보내면서, 염불 소리ㆍ타악기 소리와 함께 출가수행자들의 몸짓과 의식 하나하나가 성스러운 종교적 성정으로 빠져들게 했기 때문이다.

도량석 목탁 소리가 잦아들 무렵, 새벽 산사에 울려 퍼진 종송(鐘頌)의 염불 소리는 깊은 여운을 남겼다. 학인 스님들은 기러기처럼 가지런히 법당을 향하고, 범종각 사물이 차례로 울리면서 모든 게 현실 같지 않게 여겨졌다. 북과 쇠가 내는 타악기 소리는 태초의 설렘처럼 아득했고, 법당에서 이어진 대중스님들의 검박한 새벽예불 소리는 범접할 수 없이 숭고했다.

그들은 묵묵하고 조용히, 온몸을 던져 치열하게 실천하고 있었다. 갓 출가한 학인 스님의 앳된 모습에서,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았다. 많은 것을 걷어내고, 삶의 근원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간과 만난 것이다. 가장 단순하고 성스러운 소리와 함께했기에, ‘종교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의 접점으로 각인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지신밟기를 하듯 내 삶의 의미를 일깨워, 머리에 담긴 것이 진정 마음으로 느껴지고, 마음에 새긴 것이 손과 발을 움직이게 하여 몸이 원활하게 돌아가기를 바라는 새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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