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10일, 나흘간 사부대중 400여 명 동참해
직접 키운 배추 1만 포기·무 100포대·양념채소로
겨울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리는 쌀쌀한 바람에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던 11월 10일.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천태종 총본산 구인사 향적당 앞마당에서는 ‘월동준비’가 한창이었다. 갖은 양념으로 소금에 절인 배추를 버무리는 스님과 불자들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앞서 천태종(총무원장 덕수 스님)은 11월 7일 배추·무 등 김장 재료 수확을 진행, 나흘간 진행되는 ‘2023년도 천태종 총본산 단양 구인사 김장’의 시작을 알렸다. 8일에는 수확한 배추와 무를 다듬어 소금에 절였고, 9일에는 잘 절여진 배추와 무를 맑은 물에 담가 염분을 씻어냈다. 그리고 사부대중은 고춧가루·찹쌀 풀·배·대파 등 갖은 재료를 갈아 양념을 만들었다.
기자가 방문한 10일에는 ‘김장의 꽃’인 양념 버무리기가 진행됐다. 아침 해조차 눈을 뜨지 않은 이른 시간부터 향적당 앞마당에 모인 사부대중은 산처럼 쌓인 배추와 무를 하나하나 정성스레 버무렸다. 김장 울력에 동참하고자 전국 각지에서 모여 든 신도들도 분홍색 고무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질끈 동여맨 채 김치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다.
울산 정광사에서 온 김은선(여, 64세) 불자는 4박 5일 기도를 위해 구인사에 왔다가 김장 울력에 동참했다. 김 씨는 “모두가 정성을 담아 만든 김장김치가 구인사 사부대중에게 힘이 되고 충실한 수행의 원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장에 집중한 사부대중의 얼굴과 마스크·옷 등에는 빨간 양념이 여기저기 묻어있었지만, 모두 즐거운 표정이었다. 사람들은 김장을 하는 중간 중간 굳은 허리를 펴느라 일어섰고, 입에서는 ‘아이고, 아이고’하는 신음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왔다. 그럼에도 잠시 숨을 고른 뒤에는 다시 분주하게 배추와 무를 버무렸다.
올해 구인사 김장에 사용된 배추는 1만 여 포기로, 5톤 트럭 10대 분량이다. 배추를 포함해 무 100포대 등 김장에 사용한 재료는 모두 구인사 사부대중이 2만 여 평 부지의 밭을 직접 경작해 수확한 농산물이다. 한 해 동안 구인사 사부대중에게 제공되는 귀한 양식인 만큼 그 규모와 정성에 혀를 내두를 정도지만, 1년 농사의 가장 큰 결실이기도 하다.
원주 성문사에서 온 박정자(여, 70세) 불자는 구인사 김장 울력이 처음이다. 박 씨는 “다른 사람이 공양할 음식을 직접 만드는 울력은 ‘복 짓는 일’이자, 수행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신도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구인사 김장에 동참해 복도 짓고, 행복한 추억도 쌓아보길 바란다.”고 권유했다.
나흘간 이어진 구인사 김장에는 4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동참했다. 이들이 정성스레 만든 김장김치는 저장고에 보관하며, 1년 간 구인사 대중공양간에서 구인사를 찾는 이들의 반찬으로 제공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