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는 “세상만사는 무릇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생이 있으면 멸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꽃이 화려하게 만개하지만 그 끝이 있기 마련이고, 낙엽은 떨어지지만 봄이 오면 새순으로 태어납니다. 이러한 자연의 섭리를 보면서 인간들은 이고득락(離苦得樂)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누리려는 인간의 마음은 누구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는 본래 청정하고 깨끗한 존재였는데, 업(業)에 의해서 죽고 태어남을 반복하며 그 과보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탐내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의 삼독심(三毒心)으로 살다보니 그 과보로 괴롭고 힘든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생로병사가 있는 이상 그 세계는 고해(苦海)이고, 그 세계를 사는 모든 존재는 고통을 받으며 살아간다고 하셨습니다.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야 영원하고도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어느 때 파세나딧왕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행(行)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세 가지 행 가운데 뜻의 행이 가장 중요합니다.”

파세나딧왕이 다시 물었습니다.

“무슨 이유로 뜻의 행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습니다.

“대개 사람의 소행은 먼저 뜻으로 생각한 뒤 입으로 나오고, 입으로 나온 뒤에 몸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혀란 기관은 일정하지 않아 선악의 가름이 없습니다. 비록 사람이 목숨을 다할지라도 몸과 혀는 있습니다. 그러나 대왕이시여, 그 사람은 왜 몸으로 행하지 못하고 혀로 말하지 못합니까?”

“그 사람은 뜻의 감관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사실로 보아도 뜻의 감관이 중요하고 다른 두 가지는 가벼운 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게송을 지어 왕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심위법본(心爲法本) 심존심사(心尊心使) 심지염악(心之念惡) 즉행즉시(卽行卽施) 어피수고(於彼受苦) 윤력우철(輪轢于轍).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 된다./마음은 주인 되어 모든 것을 부린다./마음 속에 악을 생각해/곧 그대로 실행할 때는/ 거기서 괴로움의 갚음 받는 것/바퀴가 바퀴자국 밟는 것 같네.”

악한 생각이 일어나면 몸으로 실천하는 것도 악한 짓이 되는 것입니다. 악한 행동을 하게 되면 고통받기 마련입니다. 마치 수레바퀴가 굴러가면 그 길에 바퀴자국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어떤 행동에 대한 과보는 반드시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생전에 탐심을 내고 신경질도 내고 어리석은 마음으로 일관한다면 괴로운 삶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을 잘못 일으키지 않고 삼독심에서 벗어나고자 정진하고 수행한다면 아무런 근심걱정 없는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삼독심을 멀리 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먼저,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을 부려선 안 됩니다. 허황한 욕심은 자신을 더욱 옥죌 뿐입니다. 둘째는 성내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분노를 가라앉히는 사람이 나중엔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분심을 앞세웠다가 오히려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는 어리석은 마음을 지혜로운 마음으로 돌리는 게 중요합니다. 내일의 삶을 희망으로 열어 갈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지혜에 있습니다. 이 삼독심만 멀리하게 되면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하며 바른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근심걱정이 생길 리 만무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에 신음하고 두려움에 떠는 중생들에게 안락하고 편안한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가르침을 내려주셨습니다. 근심걱정 없이 행복의 길로 나아가길 원한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불자가 되길 바랍니다. 불자들이 먼저 증명해 보인다면 우리 사회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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