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마다 연꽃이 가득합니다. 백련·홍련이 한 송이씩 피어나며 은은한 향기를 뿜어냅니다. 연꽃이 많이 핀 유명한 연못들은 올해도 연꽃을 보러 가는 인파로 붐빌 것입니다. 연꽃을 보며 그 자태와 향기를 사랑하고 스스로 연꽃같이 고아한 인격을 가꾸어 가는 불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름은 수행과 공덕의 계절입니다. 연못 가득 연꽃이 피어나듯 불자들의 마음 밭에도 수행의 향기가 가득하도록 정진하고 대자대비의 마음을 밝혀 무루의 공덕을 쌓아야 하겠습니다. 무더위를 이기는 인내가 수행으로 이어지고 백중을 맞아 선망 부모와 무주·유주의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빌어주는 그 마음이 무한 공덕의 뿌리입니다.

중생은 삼계와 육도를 윤회하는 존재입니다. 잘 알다시피 삼계란 욕계·색계·무색계이고 육도는 욕계의 여섯 가지 세계로 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의 길입니다. 이들 세계는 다시 여러 가지로 나누어지고 설명되는데 좀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그만큼 중생계는 복잡하고 미세하며 인과에 틀림이 없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부처님은 삼계와 육도를 벗어나는 길을 알려주신 분이고, 불교는 바로 그 벗어남의 지혜를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인간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눌 때, 악은 또 다른 악의 요인이 되고 선은 또 다른 선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삼계와 육도를 벗어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선의 공덕입니다. 선행으로 쌓은 공덕 혹은 복덕의 힘으로 더 나은 삶으로 향상해 가는 가르침에 귀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제악막작(諸惡莫作)’과 ‘중선봉행(衆善奉行)’에서 출발합니다. ‘일체의 악행을 저지르지 말고 선행을 받들어 행하라.’는 것입니다. 악을 해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것을 억제하고 조절하는 지혜를 갖추면 점점 줄여갈 수 있습니다. 악행의 습성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선행의 습관이 자라날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악’을 ‘막작’하는 습성이 ‘중선’을 ‘봉행’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그러한 복의 힘이 쌓이고 쌓이면 자신은 물론 모든 중생이 이고득락을 성취하게 됩니다.

수행을 완성하기란 말처럼 쉬운 게 아니지만, 조금씩 이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끝에 닿게 됩니다. 향기를 따라가면 꽃이 있게 마련입니다. 바다에 빠뜨린 반지를 찾기 위해 바닷물을 한 입씩 물어서 퍼내는 작은 새처럼 꾸준히 정진하면 반드시 성불의 시간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수행의 삶은 반드시 공덕의 힘으로 구축되어야 합니다. 그중에 천도의 공덕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의 죄업을 참회하는 것도 중요하고 유연(有緣)·무연(無緣)의 영가를 천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중생은 삼계와 육도를 떠도는 배를 함께 타고 가는 존재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상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수한 것들과도 모종의 인연이 얽혀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자신의 정진도 중요하지만 무수한 시간을 두고 맺어온 알지 못하는 인연들을 잘 보살펴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대부분 사찰이 백중 천도재를 입재했습니다. 백중은 조상만을 위한 재의식이 아닙니다. 돌고 도는 윤회의 굴레 속에서 자신과 맺은 모든 인연을 청정하게 만드는 중요한 의식입니다. 조상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도 갖지 못합니다.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의 크고 작은 조직에서도 헌신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속 발전소가 자비로 가득 차야 이웃을 위해 불을 밝힐 수 있는 이치가 공덕을 쌓아 ‘자타일시 성불도’를 이루는 길입니다.

산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고 자기의 공덕을 이웃에 회향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에 의지하듯 남들이 자신의 공덕으로 행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대승 불자의 길입니다. 일승묘법의 가르침을 연꽃에 비유하는 것은 오직 비움과 나눔의 지혜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꽃향기가 아무리 좋아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멀리 전해질 수 없고, 꽃 모양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눈을 감고서는 볼 수가 없는 법입니다. 대승의 정법에 인연 맺은 모든 사람이 스스로 수행 정진에 게으르지 않고, 자비와 지혜의 발전소를 힘차게 돌려 나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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