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음악 분야 뒤떨어져
종사자들 지원·포상해
​​​​​​​포교 방편 활용해 나가야

요즘 불교계의 여러 분야를 반성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평생 불교공부만 해왔기에 불교학 이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스스로에 대한 자책 때문이다. 출가자의 감소, 사찰의 세속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져 가고 있다. 그러나 그 대책들이 지나치게 관념적이거나 헛다리를 짚는 경우가 허다하다. 모든 정책은 신중해야 하고 보다 원대한 꿈을 현실화시키려는 노력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모든 문제점들의 시발점은 불교 포교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불교 신자가 늘어나면 불교는 저절로 발전하기 마련이다.

불교발전의 포교전략은 법문이나 불교도서의 간행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교예술을 통한 교화가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불교예술은 음악이나 미술·연극영화·창작예술 등 다양한 장르를 포함한다. 그 모든 분야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고, 평가는 이웃종교의 현황과 비교분석해야 그 명암이 드러난다. 다른 모든 분야보다 가장 뒤떨어진 예술분야가 불교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불교음악은 범패·판소리 등으로 이어졌고, 찬불가·불교가곡·불교 대중가요 등으로 계승되고 있다. 경전을 보면 그 구성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앞부분은 경전의 서론 부분인데, 주로 법회장소, 참여한 대중이 묘사된다. 다음은 본론 부분으로 제자들 중 어느 분, 특히 사리불이나 수보리가 질문자인 경우가 많다. 이어서 부처님의 법문이 핵심이다. 그런데 부처님 말씀은 강의 형태로 진행되다가 꼭 강조해야 할 부분에 이르면 게송(偈頌)이 나타난다. 그 게송을 인도말로는 ‘기타(Gita)’라고 하는데, 운율에 맞추어서 단순 명료하게 표현한다.

한문 번역본은 이에 맞춰 오언 혹은 칠언 절구(絶句)로 번역되거나 간혹 불교식 한문인 사언(四言)으로 표현한다. 필자는 이 게송 부분에서 부처님은 노래를 불렀을 것으로 추정한다. 노래라는 것은 퍽 오묘해서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경전의 끝부분은 제목을 교시하고, 이 경전의 유포에 한없는 공덕이 뒤따른다는 법문을 남긴다. 경전의 본론 부분은 정종분(正宗分)이라고 하고, 마지막 부분은 유통분이라고 한다.

이 게송은 범패라는 형태로 이어졌고, 나중에는 다라니(陀羅尼) 등의 암송 형식으로 전수된다. 그러나 이 범패는 오늘의 우리 정서에 들어맞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가톨릭의 미사음악이 클래식 음악으로 전수되고, 많은 호응을 얻는 것과 비교하면 참담한 현실이다. 그래서 대두된 것이 찬불가다. 단순히 찬불가를 듣고, 법회에서 따라 부르는 입장에서 보면, 조금 송구스러운 표현이지만, 찬송가와 별로 차별화되지 않은 느낌이 짙다. 곡(曲)도 문제지만, 가사도 별로 와 닿지 않는다. 오직 부처님, 거룩하신 부처님 등을 반복적으로 되뇌이는 불교 원리주의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일본의 민요 가사에는 부처님이라는 단어를 한 마디도 쓰지 않으면서도 불교적 사상을 녹아 내리게 하는 노래가 많다. 필자가 동국대학교에 있을 때 불교음악을 키우기 위해서 경주캠퍼스에 불교음악과(한국음악과)를 만들었고, 불교 오케스트라도 조직하였다.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현대불교음악이지만 아직 우리 교계와 한국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불교음악 진흥을 위한 차선책으로는 이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에 대한 지원과 포상이 절실히 필요하다. 음지에서 힘든 일을 수행하는 불교음악 종사자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보살들이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