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 손길 필요해 보여도
상대방 의사 먼저 물어야
관음보살도 중생 요청에 구제

집 근처에 샌드위치 가게가 문을 열었다. 어느 날 오후, 그 가게를 처음 방문해서 알바생에게 메뉴 하나를 주문했다. 그러자 키오스크를 이용하란다. 카드를 꺼내들고 기계 앞으로 가서 주문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키오스크 주문이 어려워 곤란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흥미롭기까지 하다. 가게마다 화면에 뜨는 메뉴들이 서로 다르니 그걸 보는 재미도 크다. 다만 내 뒤에 줄이 서 있으면 마음이 바빠져서 손가락이 실수를 하기도 한다.

이날 처음 방문한 샌드위치 가게에서 키오스크 주문을 시작했는데 세 번째 단계에 생각지도 못한 선택화면이 떴다. 나는 ? 이런 것도 골라야 하네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알바생이 다가오더니 손을 뻗어 키오스크를 처음 화면으로 되돌리고 틱 틱 틱 찍어대기 시작한다. 샌드위치 종류며 개수, 사이드 메뉴, 음료, 기타 등등의 선택화면이 번개보다 빠르게 지나간다. 내 의사는 묻지 않고 버튼을 누른 알바생이 말한다. “이제 여기 카드를 꽂으시면 돼요.”

얼떨결에 계산을 마치고 샌드위치 하나를 받아서나오는데 기분이 묘했다. 그 알바생은 친절했는데 고맙기는커녕 무안했다. 누군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는데 왜 그게 고맙지 않은 걸까? 그렇다. 바로 “May I help you?” 도와드릴까요?”라고 상대방 의사를 묻는 것이 빠진 것이다.

그동안 이 말에는 부정적이었다. 상대가 힘들어 보이면 묻지 말고 즉시 달려가야 하거늘, 그 무슨 한가한 소리인가. 경전에서도 보살은 중생이 청하지 않아도 벗이 되어[不請之友] 준다고 하고, 우물로 기어가는 어린 아이는 무조건 달려가서 붙잡아야 하며, 쇳조각을 삼킨 아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빼내주어야 한다(<맛지마니까야>-아바야왕자경)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보문품>을 보면 관세음보살을 부르라고 한다. 알아서 달려오지 않고 부르라고 한다. 소리 높여 이름을 부르던지 마음 가득 염하든지 먼저 부르라는 것이다.

먼저 요청을 해야 답이 온다. 상대방이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다면 굳이 달려가서 그의 선택과 결심을 방해해서는 중생이 자신의 한계를 절박하게 깨달았을 때 관세음보살은 중생을 향해 “May I help you?”라고 구조의사를 묻는 것이다. 철저하게 중생에게 무게중심이 가 있다. 저들이 최선을 다해 살다가 불가항력의 처지에 빠졌을 때, 자신의 세력이 덧없음을 절실하게 깨달았을 때, 비로소 반응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결국 관세음보살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하더라도 인생이 얼마나 무상한가를 뼈저리게 느낀 그 절박한 깨달음이 중생을 살리는 것 아닐까.

내가 다 해줬으니 당신은 먹기만 하라는 게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신의 눈으로 메뉴를 읽고 당신의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는 시간을 준 뒤에 도저히 어쩌지 못해서 바라보면 그때 다가와서 주문을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야 그 손님이 키오스크 주문에 익숙해지지 않겠는가.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성장을 돕는 분이지 밥을 떠먹여 주는 분은 아니라는 생각에 사무친 어느 날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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