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모든 분야서 다른 주장
상대방에 쉼없이 독화살
불교 ‘​​​​​​​자기 성찰’이 해법

인류의 발전 단계를 큰 카테고리로 설명하면 신 중심의 시대에서 인간 중심의 시대로 변화했고, 현재 우리는 우주중심의 시대에 살고 있다. 신 중심의 사회에서는 인간이 살고 있는 곳이 하늘··바다 등으로 구성된 세계라고 하여 ‘World’라 하였고, 인간중심의 사회에서는 인간이 살고 있는 곳은 둥근 지구이니까 ‘Earth’로 명명하였다. 그런데 우주가 무한하고 지구는 수많은 위성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알고는 인간이 살고 있는 곳을 ‘Globe’라고 부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이름의 변화에 인류의 세계관이 잘 나타나는데, 또 한 가지 주목해봐야 할 것은 ‘Nature’ 즉 자연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자연이라는 개념은 서구의 자연관에서 나온 것으로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는 원래의 세상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과 대립하고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문명이며 진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대립 관계가 아니라 상호 의존적 관계라고 말한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개발 목적으로 자연을 훼손시키는 것을 경계한다. 자연을 보존하면서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는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철학이다.

서구 사회의 윤리체계에서는 도덕의 핵심이 정의이지만 불교의 윤리체계에서는 자비가 핵심이다. 정의는 인간이 개별적 존재라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개별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이 대립할 때 치열하게 싸우게 되기에 공정한 분배의 원리가 필요한데 이때 적용되는 공정한 분배 원리가 바로 정의이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연기론에 근거하여 나와 남이 하나[自他不二] 라고 보기에 서로 포용한다. 나에서 남으로, 인간에서 자연으로 확장하여 포용하면 인간 상호간, 인간과 자연 간의 대립은 사라질 것이다. 자연 속에 있는 동물은 물론 식물까지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는만큼 존중되어야 하고 윤리적인 배려를 받을 권리를 주장하는 생물 중심적 윤리가 바로 불교의 윤리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극단적으로 편가르기를 하여 상대방에게 쉼없이 독화살을 쏘아대고 있다. 정치·외교·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며 말폭탄을 퍼부어대고 있다. 우리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어느 학자는 식민지와 전쟁을 겪으면서 한국인에게 생긴 불안심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불완전한 상태여서 이런 저런 갈등이 생기고 그 갈등 때문에 끝이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 살고 있다. 불안은 해소하지 않으면 점점 커지기 때문에 불안 요소를 없애는 것이 가장 현명한데 불교에서 그 방안을 가르쳐주고 있다. 바로 자기 성찰이다.

자신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수용하면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거나 자기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타인을 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자기는 완전한데 다른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기 중심으로 세상이 움직여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이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넘어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 의존적 관계로 확장하여 보면 오늘날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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