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 태실 그림 ‘장조 태봉도’ 등 3건도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6월 30일 〈묘법연화경〉과 ‘건칠보살좌상’ 등 6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장조 태봉도’ 등 유례가 드문 조선왕실 태실 관련 그림 3점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이번 보물로 지정 예고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1405년 음력 3월 하순 안심사(安心寺)에서 조성한 불교경판을 후대 인출한 경전으로, 7권 2책으로 구성된 완질본이다. 특히 이 중 권1~3은 매우 희소한 권차라는 점에서 자료적인 완전성이 높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청도 도연사 소장 〈묘법연화경〉은 조선 초기 불경 출판인쇄 경향과 각수의 변상도(變相圖) 제작 수준, 고려 말〜조선 초 불교사상의 경향을 추적할 수 있는 원천정보가 된다는 점에서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다. 전반적으로 보존 상태가 온전하며, 완질본이라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필요가 있다.
‘건칠보살좌상(乾漆菩薩坐像)’은 고려 말〜조선 초에 제작된 보살상으로,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두 손은 설법인(說法印)을 결한 좌상이다. 흙으로 빚은 소조상을 만든 뒤 그 위에 여러 겹의 천을 바르고 옻칠한 다음 소조상을 제거한 건칠(乾漆)기법으로 제작됐다.
‘건칠보살좌상’은 124.5cm의 큰 규모에 정교한 장식성이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안정된 비례감과 중후한 신체, 사람 손처럼 양감을 강조한 두 손, 자연스럽게 땋아 어깨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석영재질의 눈동자를 별도로 만들어 넣는 등 사실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후대의 보수 흔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제작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현존하는 건칠보살상 중 규모가 가장 크다.
‘금동아미타여래삼존상(金銅阿彌陀如來三尊像) 및 복장유물’ 은 복장발원문을 통해 1333년에 조성된 사실이 밝혀졌다. 불상은 본존 아미타여래상과 좌우 협시인 관음보살(觀音菩薩),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로 구성됐다. 고려 14세기 삼존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췄으며 편년의 기준이 되는 도상과 양식을 지녀 한국불교조각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번에 조선왕실 태실과 관련한 그림으로 지정 예고한 태봉도는 ‘장조 태봉도(莊祖 胎封圖)’, ‘순조 태봉도(純祖 胎封圖)’, ‘헌종 태봉도(憲宗 胎封圖)’ 등 3건이다.
‘장조 태봉도’는 1785년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태실(胎室)과 주변 풍경을 그린 것이다. 그림 속 장조의 태실은 많은 산봉우리가 에워싼 타원형 구도 속에 자리하고 있으며, 멀리 상단에는 뾰족한 원각봉을, 가운데에는 명봉사와 문종태실을 배치했다. 그 위로 사도세자의 태실인 ‘경모궁 태실(景慕宮 胎室)’을 그렸다. 장조의 태실은 이중으로 된 연꽃지붕이 있는 개첨석(蓋簷石, 지붕돌)에 팔각의 난간석을 둘렀고, 앞쪽에는 거북형 받침에 표석(標石)이 세워져 있다.
‘순조 태봉도’는 순조가 1790년에 태어난 후,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에 태실을 만들어 태를 안치한 태실의 형상과 그 주변 지형을 그린 것이다. 순조가 1800년 즉위한 후 6년이 지난 1806년 태실에는 난간석 등 석물이 추가로 배치됐다.
‘헌종 태봉도’는 헌종이 1827년에 태어난 후,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에 마련된 태실과 주변 경관을 그린 작품이다. 헌종이 1834년 즉위한 후, 13년이 지난 1847년 그림 속 태실처럼 격식을 갖춘 것으로 보아 태실가봉(胎室加封) 당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 세 건의 태봉도는 왕실에서 아기를 낳았을 때 태를 묻는 장태(藏胎) 문화를 조선왕실에서 의례화시켜, 새로 태어난 왕자녀의 태를 길지(吉地)에 묻는 안태의례를 정착시킨 전통을 보여준다. 문화재청은 관계자는 “태실의 모습을 그린 태봉도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역사·희소성이 있다.”며 “제작 동기와 제작 시기가 분명하고 태실과 관련된 왕실 회화로서 미술사적으로도 가치가 높아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