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 원인은
자기중심적 사고체계
​​​​​​​마음공부에 힘써야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에 지성이 있다. ‘지성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아주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떠오른다. 지성은 지식만 많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인간미가 넘치는 인성까지 갖춰야 한다. 지식의 기준은 학력이라는 정량 평가로 이뤄지지만 인성은 정성 평가이기에 그 기준이 모호하다. 그래서 참 좋은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어떤 때는 참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성이라는 것도 이렇게 복잡한데 요즘 반지성이라는 신념 체계가 등장하여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반지성주의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세계 속에서 모든 내용을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반지성의 대표적인 예가 여성혐오다. 21세기 과학문명 시대에 어떻게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며 배제하는 현상이 일어나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동등한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지성인데 그것을 깨트리는 언행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의 반지성 때문에 불평등과 갈등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사회지도층의 성추행 사건이 불거져서 사회적 지탄을 받을 때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여성의 옹호자 역할을 했던 사람이 얼마 후 그 자신도 성추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뉴스를 보면서 반지성주의의 심각성을 절감하게 된다. 그런데 반지성주의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부모 찬스, 전관예우로 불리우는 경력 찬스, 자기 돈이 아닌 법인 카드를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는 법카 찬스는 반칙이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 찬스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기가 당한만큼 되갚아주겠다는 보복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위치가 바뀌면 상대방이 했던 나쁜 행동을 똑같이 반복한다. 이런 현상은 남의 문제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사람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비합리적으로 바뀌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 체계 때문에 생긴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반지성주의 함정에 자신도 모르게 빠지게 된다.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마음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불교에서는 마음공부를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라고 하는데 깨닫는다는 것은 현명해지는 것으로 자기도 모르게 행한 잘못된 일을 찾아내고 알면서도 저지른 나쁜 일들에 대해 참회하면서 얻어진다.

불교는 반지성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주 분명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바로 삼독(탐·진·치)을 없애는 것이다. 약자에 대한 혐오 현상이나 온갖 찬스를 사용하는 기회주의는 우리 마음 속에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속에 분노심이 있어서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집요하게 공격한다. 그런데 욕심과 분노가 없는데도 반지성을 보인다면 그것은 어리석기 때문이다. 자기 판단 없이 남의 말을 듣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지성과 반지성 사이에 위치해 있다. 아주 중차대하고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탐진치에서 벗어나 깨달음으로 참지성을 추구해야 한다. 참지성은 부처님의 큰 가르침인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上求菩提], 아래로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下化衆生] 것이다. 이렇게 서로를 존중한다면 함께 발전하는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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