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사문유관서 깨달은|
뭇 생명 겪는 생로병사

부정할 수 없는 세상이치

37년생이신 엄마가 뇌경색을 일으킨 뒤 어느 정도 회복하시고서 주간보호시설에 다닌 지 10개월 가까이 됐다. 엄마의 강한 정신력 덕분일까. 뇌경색을 일으킨 뒤에 그 회복속도는 빨랐고 의사들도 이젠 저를 볼 일이 없어요.”라고 할 정도이지만, 꾸준하게 운동하고 사람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주간보호시설 나들이는 필수 일과가 됐다.

처음에는 내가 왜 거기에 가야 하느냐!”면서 엄마는 반발했고 분노했다. 시설에는 치매 초기인 어르신들도 섞여 있었고, 치매를 앓지 않더라도 늙고 병들어 운신하기 힘든 어르신들이 많았다. 자존심 강한 엄마가 그런 어르신들 사이에서 종일 보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오후에 집에 오시면 어떤 노인이 어떤 추태를 보였다느니, 꼭 어린애들 재롱잔치하는 것 같다느니, 왜 나이 들면 저리 되느냐 하면서 당신의 느낌을 내게 들려주시는데, 어떤 내용에서는 맞장구를 쳐드리지만 어떤 내용에서는 당혹스러웠다. 엄마가 못마땅하게 여기시는 그 어르신의 행동을 나는 날마다 바로 엄마에게서 보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걸 인식하지 못하시는 거다. 그 늙음이란 것이 자신에게도 벌어지는데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늙음을 미워하고 피하는 모습-바로 싯다르타 태자가 사문유관에서 동쪽문으로 나갔다가 깨달은 이치 아니던가.

그런 곳을 10개월 가까이 다니시면서 엄마가 늙음늙은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 달라진 듯하다. 얼마전 치매 어르신 한 분을 아들이 와서 조용히 모셔갔단다. 그 어르신은 이른바 미운 치매를 앓았다. 소리를 지르고, 책상을 두드리고, 누군가와 눈만 마주치면 사생결단하고 싸우고, 아드님이 한낮에 모시러 왔지만 정작 그 당사자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소리 지르고 싸우고 집어던지더란다. 당신의 보따리를 커다란 비닐봉지에 싸서 출입구 가까이 내놓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처량하더라고 엄마가 내게 말씀하신다.

그 노인이 가는 병원은 죽어야 나오는 곳이라더라. 여기처럼 그냥 자유롭게 다니게 하지 않고 진정제랑 수면제만 준대. 그런데 그 노인은 밥도 아주 잘 먹어서 몸은 건강하던데 언제까지 그렇게 지낼 수 있을까 모르겠다.”

···라는 인생의 주기를 늘 대하다 문득 궁금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흔히 늙어서 죽는다.’라는 말을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생···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엄마가 전해주는 주간보호시설의 풍경과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깨닫는다. 그저 늙어서 죽는다면 그건 차라리 축복이라는 사실을. 태어난 후부터 인간은 늙어가는데, 늙는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병에 걸린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니 늙는다는 것은 결국 몸의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병에 걸린다는 것이고, 병에 걸린다는 것은 지독하게 아프다는 말이고, 그렇게 죽도록 아픈 끝에 쇠멸에 이른다는 것을.

그게 산다는 건지.”

엄마의 목소리에 진한 회한이 묻어난다. 이 회한까지가 인생인 것일까. 나도 그럴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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