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 48공안 다룬 연작판화집
이철수/문학동네/30,000원

판화로 묵직한 화두를 전달해온 이철수 화백이 데뷔 40주년을 맞아 선불교의 가르침을 담은 대표적인 지침서 ‘무문관(無門關)’을 주제로 한 연작 판화집을 펴냈다.

무문관은 1228년 중국 남송의 무문 혜개 스님(無門慧開, 1183~1260)이 선 수행의 규칙으로 삼아야 할 48가지 공안을 고르고 해설과 송(頌)을 덧붙인 책이다. 옛 선사들의 오묘한 속뜻을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이 글귀들은 범인으로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읽는 이의 해석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어 세심한 접근을 요한다.

〈문인가 하였더니, 다시 길〉은 이철수 판화가가 무문관을 10년 이상 곁에 두고 탐독한 끝에 얻은 깨달음을 화폭에 담은 작품들이다. 각각의 작품은 무문관의 내용을 그대로 해설한 삽화가 아니라 작가가 수행자로서 스승들의 말씀을 새겨 지금의 현실에 맞는 화두를 길어내기도 하고, 때로는 스승에게 대거리하듯 말을 걸기도 하는 독자적인 공부의 결과물이다.

판화 뒤에는 그와 짝을 이루는 공안(公案)을 함께 수록해 그림과 글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책이 전하는 핵심적인 화두 중 하나는 판화 ‘수산의 죽비’에 드러나 있다. 수산(首山) 화상이 좌중 앞에 죽비를 내보이며 ‘이 물건을 죽비라고 하면 저촉되고 죽비라고 하지 않으면 위배되니 이를 무엇이라 부르겠는가?’ 하고 묻는 장면이다. 언어나 문자가 진리를 곡해하는 일을 경계했던 선승들의 가르침이 그림을 통해 현대인에게 생생하게 전달된다.

이철수 판화가는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독서에 심취한 문학 소년이었으며 군 제대 후 화가의 길을 선택하고 홀로 그림을 공부했다. 1981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전국에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1989년에는 독일과 스위스 주요 도시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이후 민중판화가로 이름을 알린 그는 선과 영성에 관심을 두고 영적 세계와 예술혼이 어우러진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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