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예배용 전통불화 지켜내며
감상용 현대불화로 대중에게 다가서야

일본 담산신사 소장 고려시대 수월관음도.

종교미술이라는 큰 범주에 속하는 불교미술은 일반미술과 마찬가지로 조각·회화·공예 등 어떤 종류든 간에 시각적 매체를 이용해 아름다움의 추구와 더불어 사람들에게 불교교리 및 진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서의 미술을 일컫는다. 따라서 훌륭한 불교미술이란 곧 사람들에게 불교에 대한 신심(信心)을 얼마만큼 크게 일어나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결코 틀리지 않을 것이다.

즉, 미술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친밀감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불교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을 때 비로소 종교미술로서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것이다.

불교미술 중 특히 불화는 사찰 법당에 봉안해 예불할 때 쓰는 예배용 불화와 사찰 건물 외부에 장식하기 위해 그리는 장식용 불화, 그리고 일반 가정집이나 건물 내부에 걸어두고 불교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감상용(교화용) 불화로 나눌 수 있다.

예배용 불화는 과거든 현재든 불화의 내용과 구성, 표현기법, 사용 재료, 각 존상의 형태 등을 변형시키지 않은 전통성이 강한 불화이다. 반면 현대불화는 내용이 왜곡되지 않는 범주 내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 및 표현방법, 재료의 사용 등에서 다양성을 보이는 불화라고 할 수 있다.

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 1775년(보물 제2123호). 〈사진=문화재청〉

시대적 특징 담아 다양하게 발전

삼국시대 4세기 후반에 불교가 전래된 후 시작된 우리 불교미술은 인도와 중국 불교미술을 바탕으로 통일신라-고려-조선을 거치면서 시대별 특징을 나타내며 다양하게 발전했다. 특히 불화는 그림이라는 조형 특성상 시대적인 형식과 색채를 벗어나 이루어질 수 없고, 어쩌면 그 안에 머물렀을 때 비로소 종교적 감흥을 한층 강하게 일어나게 하고 돈독한 신앙심이 싹트게 한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알려진 자료로 보아 한국불화는 고구려 고분벽화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불화다운 사례는 장천리 1호분 동벽 천정부에 그려진 ‘불예배도(佛禮拜圖)’를 들 수 있다. 이후 통일신라에 이르기까지의 불화의 예는 지극히 단편적인 한두 예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사찰에 봉안할 수 있도록 조성된 한국불화의 본격적인 모습은 불교를 국교로 삼은 고려시대 때부터로 ‘아미타독존불도’·‘아미타삼존불도’ 및 ‘아미타구존불도’ 등의 예배화와 더불어 개인적인 발원에 의해 그려져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높은 수준의 ‘아미타래영도’·‘수월관음도’·‘지장보살도’·‘경변상도’와 같은 정토계 불화와 ‘나한도’의 조성이 유행하게 된다.

조선시대는 억불정책으로 인해 불화 조성이 크게 위축되었다. 그렇지만 왕비·비·빈 중심의 내명부(內命婦)와 왕세자들의 숭불(崇佛) 및 신불(信佛)과 함께 조선 전반기에는 궁중화원들에 의한 궁정불화(宮庭佛畵)가 성행하게 된다. 그리고 임진왜란과 정묘호란·병자호란을 겪는 동안 보여준 불교의 구국승병활동(救國僧兵活動)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으면서 화승들의 유파 형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일반인 발원자 및 시주자 층의 확대로 17세기 중·후반까지는 매우 격조 높은 불화들이 조성된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초반부터 내불당(內佛堂) 및 원당(願堂)의 건립과 더불어 각 전각 내에 별도로 불화를 그려서 봉안하는 전통이 형성되었고, 많은 대중의 동참을 위한 야단법석(野壇法席) 마련과 함께 세계적 유일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초대형 ‘괘불화(掛佛畵)’의 조성 또한 유행하게 된다. 대체적으로 영·정조시대(1725∼1800)까지는 존상의 형태라든가 화면구성 및 색채 채용에 있어 비교적 안온하고 번잡하지 않으며 조화를 잘 이룬다. 반면 19세기 후반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그려진 불화를 보면 민중과 관련한 ‘감로왕도(甘露王圖)’를 비롯해 ‘칠성도’·‘신중도’·‘산신도’·‘독성도’ 조성이 크게 증가한다. 전반적으로 화면구성이 복잡해지며 존상들의 신체비례가 다소 어긋남은 물론 탁한 색조와 더불어 청색·홍색·황색 등과 같은 강한 원색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조화롭지 못하고 생경함을 느끼게 한다.

(좌) 보은 법주사 괘불도, 1766년(보물 제1259호). 〈사진=문화재청〉, (우) 고려시대 아미타래영도(이탈리아 국립동양박물관 소장).

전통 계승과 현대화의 바람직한 방향

‘한국불화의 현대화’는 결코 거창하지도 그리 멀리 있지도 않다. 뿐만 아니라,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크게 어려운 일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날 전통을 바탕으로 하는 예배용 불화는 안타깝게도 대부분 1800년대 후반 이후 일제강점기 때까지의 부조화스럽고 격조 낮은 불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적어도 전통방식의 예배용 불화라고 한다면 1700년대 중반 이전 시기의 불화를 바탕으로 하되, 주존불의 성격에 따른 부처의 형태 및 수인(手印), 교리에 합당한 존상의 배치와 구성, 적·녹색 위주의 기본 색채와 표현기법을 따라야 한다. 감상용 불화라고 할지라도 철저하게 전통을 바탕으로 하면서 시대에 따른 우리다운 모습과 현대인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색깔을 담아내는 것이야 말로 현대화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불화의 올바른 전통계승과 현대화 방향에 대해 고민해오고 있는 한 사람으로써 이의 해결을 위한 나름의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해 본다.

첫째, 전통을 어떻게 올바르게 계승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전통을 계승한다.’고 함은 선조들의 훌륭한 결과물에 대한 보다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 장점을 제한적으로 받아들여 현재에 반영시키고, 보다 나은 결과를 이루어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전통불화 작가라면 전통의 올바른 계승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전통불화를 그리면서도 공부를 소홀히 해서 교리에 어긋나거나 말거나 또는 합리적인지 아닌지 새길 겨를도 없이 무작정 베끼기만 열중하는 경우가 잦다. 또한 예배용 불화이면서도 남들과 색다른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핸드폰과 노트북 같은 현대 문명구(文明具)를 무분별하게 지물(持物)로 등장시킨다든가 존상의 배치, 색채의 채용, 표현기법 등에 있어 전통과는 전혀 무관한 정체불명의 불화를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다. 더 이상 이러한 우를 범해선 안 될 것이다.

오늘날 예배용 불화를 조성함에 있어서도 존상의 형태를 비롯해 화면 구성 및 각 존상의 배치에 대해 전통의 테두리를 결코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가장 중시되는 존상 형태의 경우,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틀린 부분에 대해서는 해부학적으로 바르게 표현함으로써 왜곡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즉, 존상의 형태를 나타냄에 있어 인체에 사실적으로 접근해 정확하고 합리적인 묘사를 함으로써 예배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만족시킬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만약 새롭게 ‘아미타후불도’를 조성할 경우 주존불인 아미타불의 형태 및 수인, 법의(法衣) 착용방법, 관음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로 한 팔대보살 등은 전통방식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되 표정 및 사용 색채의 안정화, 보배나무(寶樹) 및 극락조(極樂鳥), 비천상, 악기(樂器) 등을 배경에 등장시켜 극락세계를 연상할 수 있도록 변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둘째, 합리적 표현과 불교사상을 개념화한 상징적 표현의 필요성이다. 불화의 주존불은 가장 이상적인 모습일 때 비로소 존숭과 예경의 마음이 솟아난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인체를 모델로 하는 존상의 묘사에 정확성이 떨어지고 비례가 어긋나며 투명도가 떨어지는 탁한 색채의 채용, 과도한 바름질 및 생동감 없는 표정 등 세부묘사에 사실성이 결여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단적인 예로 몸은 측면을 향하고 있음에도 가슴 앞의 영락이나 보관 장식은 마치 정면을 향하듯 묘사되어 있거나, 몸은 정면을 향하는데도 합장한 손은 본존불을 향하고 있듯이 옆으로 그려 어색한 면을 드러내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감상용(교화용) 불화를 조성할 때 또한 반드시 이렇게 저렇게 표현해야 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사실적 표현과 더불어 불교사상을 개념화하여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중생을 어려움으로부터 구제해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대자대비구고구난(大慈大悲救苦救難)을 상징하는 관세음보살과 극락을 주재하는 아미타부처님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할 때, 부처님과 보살님의 모습은 전통적인 형태를 따르되 꽃비 내리는 속에서 꽃방석에 앉아 있는 부처님 또는 꽃구름 타고 구제중생 맞으러 내려오시는 부처님, 꽃밭 속의 보살 또는 대나무 아래 편안하게 앉아 유유자적하거나 선재동자를 맞이하는 모습, 관음보살과 연관 지은 주제(꽃밭 속 보살, 꽃과 새, 꽃과 정병, 꽃과 선재동자)를 개념화해 표현하고 밝고 은은한 색조를 채용함으로써 불자들이 극락세계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잔잔한 감동을 받게 할 필요가 있다.

군위 법주사 괘불도, 1714년(보물 제2005호). 〈사진=성보문화재연구원〉

셋째, 재료 선택의 폭을 확대하고 표현방법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미술은 어떠한 재료를 사용해 나타냈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느낌을 준다. 전통적인 면이 강한 불화를 조성한다고 할 때 과거의 바탕재료나 안료와 동일한 재료를 채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 이상 시대별로 다른 재료가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곧 각 시대별 흐름에 따른 당시의 현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1세기를 숨 쉬고 있는 우리 또한 이에 걸맞게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재료 선택의 폭을 넓혀 가능하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친밀감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현대에 이르러 각기 개성적인 느낌을 주는 여러 질감의 바탕재료와 수많은 종류의 색감을 보이는 안료의 개발로 말미암아 이미 세상 속에 다양화가 충만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을 고수한다는 명분으로 이를 모르는 척 한다면 결코 세상 안으로 들어가 함께 할 수 없을 것이고, 불화는 낡은 옛 것이라는 생각의 장 속에 갇혀 버리고 말 것이다.

표현기법 역시 시대별로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듯이 단순히 앞 시대의 수법만을 고수하기보다는 재료의 다양화와 더불어 새로운 표현방법을 찾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예를 들어 후불화를 조성함에 있어 화면 전체에 걸쳐 존상들을 가득 배치하고 전체를 동일한 방법으로 묘사함으로써 평면적이고 답답함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각 존상의 중요도에 걸맞게 빠르고 느리고[緩急], 굵고 가늘고[肥瘦], 짙고 옅은[濃淡] 선을 적절하게 구사하여 나타냄으로써 보다 자연스러우면서도 활기에 찬 느낌을 주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조사도(나한도)’나 ‘보살도’ 및 ‘동자도’ 등을 조성할 시 존상 및 배경을 천편일률적으로 짙고 탁한 채색기법인 진채(眞彩) 처리하여 경직성을 보이기보다는, 투명한 느낌의 수채화적 기법을 구사하여 맑고 시원스러운 맛이 나도록 하는 것도 현대화의 한 방법이라고 하겠다. 이와 함께 그림으로만이 아니라 회화와 판화기법을 접목시켜 나타내는 것 또한 참신성을 보여주는 현대화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감상용 불화의 경우 현대적 감각의 아크릴 물감 등을 사용해 일반회화와도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 또한 현대화 개념의 한 테두리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반드시 정통성이 강한 예배용과 구분지어 그 적용범위를 어느 정도 한정 짓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생각된다.

넷째, 용도에 따른 적절한 재료를 선택할 필요성이다. 현대화의 한 단계로 재료와 표현방법의 다양화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곧 불화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재료와 표현방법에 차이가생기게 되므로 일률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다시 말해 예배용으로 법당에 봉안되는가, 아니면 가정이나 일반 건물 안에 장식 목적으로 걸어두는지(감상용 또는 장식용)에 따라 채택되는 재료가 각기 다르고, 표현기법이 달라지기 때문에 용도를 분명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훌륭한 재료와 표현기법을 채택했다 할지라도 용도에 적합하지 않다면 쓸모가 없어지므로 용도에 따른 불화 조성은 앞서 제시한 어느 방안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한국불화의 현대화의 성패는 용도에 적합한 불화를 그려내는 것 즉, 얼마만큼 많은 사람이 가깝게 다가가서 예배하고, 또는 그것들을 얼마나 갖고 싶어 하게 만드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은해사 괘불도, 1750년 (보물 제1270호). 〈사진=문화재청〉

이상에서 한국불화의 전통은 무엇이고 어떻게 계승해야 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현대화를 향한 바람직한 길인가에 대해 나름대로 개인적 견해를 드러내 보았다. 물론 각기 생각의 차이가 있겠으나 전통을 잘 유지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수용보다, 틀린 부분은 바로 잡아 고쳐감으로써 해결되리라는 생각은 누구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불교미술인들 모두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지속된다면 장차 한국불화의 현대화는 매우 희망적이며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창균
― 현재 소암불교미술문화재연구소장·대전광역시 문화재위원·대한불교조계종 성보보존위원을 맡고 있다.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불교미술전공 교수·문화재청 상임 문화재전문위원·한국불교미술협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불교회화의 감정〉·〈한국불교미술대전-불교공예편〉(공저), 〈범어사〉(공저)·〈불교공양구〉(공저) 등이 있다.

 

[현대불화작가 인터뷰Ⅰ - 신진환 작가]

신진환 작가 / 국가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 이수자. 문화재단청수리기술자. 제2회 올해의 불교미술인상 수상·제36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문체부장관상 등 수상.

“불화 속 부처님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

신진환(62) 작가는 어린 시절, 형을 따라 방문한 사찰에서 한 불모(佛母)가 불화를 그리는 광경을 보았다. 그 모습은 신 작가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후 임석환 불화장(국가무형문화재 제118호)을 은사로 전통불화를 전수받아 40여 년간 다채로운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고 있다.

작품세계를 설명해 달라.

작품 속 부처님은 내게 그림이 아니라 진짜 부처님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모의 길을 걸어온 40여 년 동안 부처님을 바르게 그리고자 매일 아침 사불(寫佛)을 하는 등 기도와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붓이 캔버스 위를 한 번 지날 때마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과 이상·현실세계라는 공간을 뛰어넘어, 부처님께서 설하신 실상(實相)을 작품 안에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작품은 베틀에 앉아서 천을 짜듯, 한 장의 캔버스 위에 차원을 겹치고 시공간을 공존시키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경이로운 불법의 세계를 담고자 한 노력의 흔적이다.

영감을 얻는 방법은?

불교에서 말하는 우주법계를 상상하며, 그저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길에서 우연히 만난 나그네, 시장의 상인, 카페에서 친구와 담소를 나누는 등 평범한 일상의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찾는다. 또 수많은 무명(無名) 선지식이 남긴 불화를 내가 가는 길의 등불로 삼고 의지하고 있다. 서양화가들도 내게 큰 원동력이 된다. 나는 빈센트 반 고흐, 조르주 루오, 프리다 칼로 등 어떤 역경에도 치열하게 살아간 이들의 인생이 곧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활동계획은?

‘앞으로’라는 질문은 참 막연하다. 다만 지금처럼 정성과 신심을 담아 공부와 수행을 꾸준히 병행하고, 순간순간 붓을 꼭 잡고 놓지 않을 계획이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반야(般若)’를 체득하도록 비유하고, 게송을 읊는 등 쉽게 전달하려 노력했다. 불화가는 대중에게 진리를 호소·설득하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그림으로 부처님 말씀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불법의 진리가 작품 안에 녹아 대중과 소통하고, 작품을 접한 이들이 불화 속 부처님을 바라보며 평화와 행복을 느끼며 힘든 삶 속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

미륵의 은하로켓, 130×162cm, 삼베 위에 석채·아크릴릭, 2019년.
미륵의 우주법계, 174.5×210cm, 삼베 위에 천연석채·천연염료, 2016년.

[현대불화작가 인터뷰 - 박경귀 작가]

박경귀 작가 / 문화재수리기술자 단청443호. 스페이스선+ 신진작가공모전 심사위원 등 역임. 현재 한국불교미술협회장·천태예술제 운영위원·선아트스페이스 원장. 

“타인의 삶 어루만지는 치유·정화의 그림 추구”

13세 때 이미 불화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박경귀(58) 작가. 그는 은사인 오윤 작가(1946~1986)의 권유로 동국대에서 불교미술을 전공, 본격적인 불화가의 길을 걸었다. 1989년 ‘선불화공방’을 개업했고, 불화를 통해 스스로에게 건넨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선지도 30여 년이 흘렀다.

작품세계를 설명해 달라.

활동 중 크게 세 번 정도의 전환기를 겪었다. 기존의 화풍을 탈피하고, 깊고 부드러운 색감으로 시대의 감성에 호응하려 했다. 작품에 시대정신을 반영하고자 노력했고, 이타적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조형화하려는 시도로 변화했다. 작업은 ‘관불삼매’, ‘자리이타’, ‘연기론’, ‘불이사상’ 등을 근간으로 진행한다. 전통불화는 글을 모르는 사람도 핵심교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민중에게 위로를 줬다. 나는 전통불화에 내포된 이타적 속성을 작업에 받아들이면서도 계몽적 성격은 극복해서 화폭에 담고자 하지만,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영감은 어디서 찾나요?

여러 불경과 불화 등에서 소재를 얻지만 그중에서도 ‘만월(滿月)’을 보며 영감을 많이 얻는다. 초승달에서 보름달이 되는 모습이 지혜를 얻기 위한 수행과정으로 느껴졌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나는 불화를 왜 그리는가.’ 등의 질문도 큰 원동력이 된다. 작업을 하면서 이런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나만의 조형형식을 모색하고 있다. 고려시대 아미타극락 계열의 정토불화, 박생광·오윤 작가의 작품 등 여러 작가의 작품도 나에게 영감과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킨다.

앞으로 활동계획은?

내게 작업이란 삶에 대한 진실한 기록이며,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어느 순간 나태해져 세상의 변화에 둔감해지고, 변화의 의미를 통찰하지 못해 동 시대와 유리된 생명력 없는 작업을 하게 되지는 않을지 스스로 늘 경계한다. 현대인들은 세상의 변화를 빠르게 감지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동시대인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끊임없이 자문(自問)하고, 이를 작품에 녹여낼 때 현대불화의 설자리가 생겨나고 나아갈 길이 정해질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항상 정진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고, 불교회화의 조형성을 이론적으로 적립하면서 ‘이타 회화’를 계속 추구할 계획이다. 나의 작품을 마주한 모든 이가 자신의 삶을 위로받고 어루만지는 듯한 일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작품 활동을 해 나가겠다.

중중무진법계연기, 문양천 위에 분채, 300×500cm, 2016년.
지혜의놀이터, 문양천 위에 분채, 230×430cm, 2020년.
아미타극락변상도, 천위에 안료, 240×390cm, 1995년.

[현대불화작가 인터뷰 - 고승희 작가]

고승희 작가 /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불교미술전공 졸업 및 동 대학 대학원 불교미술전공 석·박사 졸업. 현재 동국대 미술학과 객원교수·중앙승가대 외래교수·서울시 문화재위원회 문화재전문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 〈한국의 불화 문양〉 등이 있다.  

“불교문양 체계적으로 정리, 그 아름다움 알리고 싶어”

고승희(49) 작가는 불교회화를 종교화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예술로도 알리고자, 체계적인 불교미술 연구를 위해 대학원 석·박사과정에 진학했다. 고 작가는 실기·이론을 모두 갖춘 불화가로 현재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작품세계를 설명해 달라.

작품을 그릴 때나 전시를 할 때는 항상 ‘서방정토 극락세계’란 큰 주제 아래 아름다운 정토를 화폭에 담고자 노력한다. 특히 〈아미타경〉과 〈무량수경〉에서 묘사하는 극락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작품에는 늘 갖가지 꽃과 신성한 길조(吉鳥)가 등장하는데, 청정한 불국토 세계를 형상화하는 주요 소재다. 또 부처님의 말씀을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 불보살상과 여러 군상의 도상 특징을 정확히 파악,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영감을 얻는 방법은?

1993년 당시 삼성호암갤러리에서 열린 ‘고려불화 특별전’에서 금니 기법으로 그려진 불보살상의 법의문양을 본 순간 느낀 감동과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후 ‘문양’에 매료됐고, 화풍의 틀도 정립할 수 있었다. 장엄의 의미를 지닌 문양은 언어·문자와 같이 그 민족이 살아온 환경에 따라 고유한 형태와 독특한 성격을 띠고 있다. 대부분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이뤄진 우리나라 전통문양에는 종교적 의미를 비롯해 문화가 지닌 배경, 도상이 가진 여러 특징이 잘 나타난다. 이런 여러 가치를 담은 문양·상징은 작품 활동과 관련 연구에 끊임없는 아이디어를 주는 원천이다.

앞으로 활동계획은?

꽃을 소재로 불국토를 형상화하는 작품을 하고 싶다. 이를 통해 부처님은 꽃이고, 꽃은 부처님이라는 관계의 의미를 보여주고, 시공간을 초월한 부처님의 진리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또 문양사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전반적인 문양 양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아름다운 우리 불화문양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싶다. 불교미술의 현대화는 마땅히 이뤄져야 하지만 종교성과 전통적인 의궤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학문 연구와 함께 새롭고 다양한 시도의 작품 표현기법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가능한 일이므로 정밀한 도상연구는 필수적이다. 앞으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거시적 안목과 통찰력이 뒷받침되는 작가이자 교수로 성장을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관음보살도(觀音菩薩圖), 견본채색, 38×35cm, 2015년.
극락향(極樂香), 견본채색, 45×45cm, 2017년.
아미타삼존내영도(阿彌陀三尊來迎圖), 견본채색, 82×45cm,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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