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 천태불교의 뿌리를 멀리서 찾자면,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왕조의 도읍지가 송악이었으니, 천태불교 개창의 연원지는 지금의 북녘 땅 개성 언저리에 자리 잡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1027년에 창건한 개성 영통사(靈通寺)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처럼 고려 국법에 따라 문종의 넷째 아들 후(煦)가 11살에 출가한 절이 영통사였다. 그가 바로 1097년 이 땅에 천태종을 개창한 대각국사 의천(義天·1015~1101)이다. 일찍 불교에 귀의한 다음 송나라에서 천태와 화엄의 깊은 뜻을 배우고, 돌아와 해동의 천태종을 개창하기까지 그의 행적을 적은 대각국사비가 영통사에 남아 있다.

이 유서 깊은 절은 풍광도 뛰어났던 모양이다.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영통사 서루(西樓)의 경치는 송악에서 제일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조선후기의 선비화가 강세황(姜世晃 )이 그린 전경산수화 ‘영통동구도(靈通洞口圖)'에는 거암들이 즐비한 계곡이 절경으로 묘사되었다. “바위가 어찌나 큰지 집채만씩 하고, 바위에 낀 무른 이끼가 눈을 깜짝 놀라게 한다”는 기행문까지 곁들여 찬탄했다.

그러나 개성 지역은 마음먹은 대로 찾아가지 못하는 금단의 땅이었다. 이에 한국 천태불교는 지난 2005년 개성 영통사 복원에 불심을 실었다. 그리하여 어렵사리 영통사 참배의 길을 열었으나, 최근 통일부가 제동을 걸었다고 한다. 영통사 성지순례 길을 아주 좁게 제한한 통일부 조치에 반대하는 불교계의 목소리가 높은 것을 보면, 이는 재고되어야 한다. 이 같은 조치는 국내 대기업의 개성 관광사업을 염두에 두고, 내놓은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어떻든 종교적 신행을 바탕에 깐 유연한 남북교류가 우선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황규호·‘한국의 고고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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