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따라 뱃길 보살피는 관음도량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 나한 봉안한 석실 유명
1928년 새긴 마애관음좌상 위용에 불자 발길 줄이어


◇강화도 서쪽 석모도에 위치한 보문사의 극락전 전경. 경내에는 수령 600년이 넘는 향나무도 있다.

관세음보살을 가리켜 ‘보문시현(普門示現)'이라고 칭한다. 보문시현은 관세음보살이 세상을 교화함에 중생의 근기에 맞춰 여러 가지 형체로 나타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수많은 중생들의 갖가지 고통과 소원들을 모두 들어주는 보문시현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곳이 바로 보타낙가산이다. 이번에는 보문시현 관세음보살이 머무시는 보타낙가산을 찾아 서해로 향했다.

3대 관음도량으로 꼽혀

원래 보타낙가산이 어디 있느냐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곳이 한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관세음보살은 인도, 중국, 그리고 이곳 해동성지 등 여러 곳에도 상주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유명한 관음도량을 세 개 꼽으라면 동해 낙산사, 남해 보리암, 그리고 이곳 강화의 보문사이다. 요즘은 교통이 편리해 강화도까지 편안히 올 수 있다. 게다가 강화도에서 보문사가 위치한 석모도까지 가는 배편은 30분마다 있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혼자라도 기도여행이 가능하다.

보문사로 떠난 날은 오랜 비가 그치고 가을볕이 처음으로 비추던 날이었다. 석모도로 가는 배에 오르자 수십 마리의 갈매기떼가 사람들이 주는 새우깡을 먹겠다고 배 쪽으로 모여 들었다. 손에 새우깡을 들고 있든 들고 있지 않든 간에 뱃고동 소리가 들리면 새우깡 먹는 시간이라고 각인된 갈매기떼를 보고 있자니 문득 《법화경》 보문품에 나오는 ‘념념물생의(念念勿生疑)'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염하고 또 염해 의심을 없애는 것은 하루 이틀에 되는 일이 아니다. 간절한 소원은 들어준다는 관세음보살님의 영험의 가피를 얻는 일도 결국에는 염하고 또 염해 그것이 습관이 돼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배는 이미 석모도에 도착했고 보문사 가는 길이 눈 앞에 보였다.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곳에 갈 수 있었다. 일주문을 통과하고 숨이 목까지 차오를 때서야 비로소 극락보전이 눈 앞에 펼쳐졌다. 여기부터가 바로 극락이라는 말이다.

경내를 둘러보니 진정 극락이 따로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의 광경과 보문사 석실 앞에 위용을 드러낸 600년도 더 된 향나무, 나직이 들려오는 목탁소리와 스님의 염불 소리, 그리고 바람결에 살짝살짝 울리는 처마 끝 풍경소리까지 어느 것 하나도 빼놓을 수 없는 완벽한 조화였다.

잠깐 숨을 돌리고 보문사의 성보문화재인 마애관음좌상을 보러 계단을 올랐다. 400개가 넘는 계단이라는 표시와 오고 가는 데만 20분이 걸린다는 안내판은 친절하기 그지없었다.
쌀 한 봉지를 들고 오르는 여자 불자도, 하이힐을 신고 예쁘게 차려입은 여자 친구를 끌어주는 인상 좋은 커플도 보였다.

눈썹바위에 나툰 관음보살


◇강화도 보문사 뒤편 절벽에 있는 마애관음좌상. 너비 330㎝, 높이 920㎝의 거대 마애불이다.


마애관음좌상 앞에는 이미 쌀, 생수, 향 등의 공양물이 보이고 초를 켜서 둘 수 있는 유리함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높은 곳까지 가서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가 다들 있으리라. 그리고 그것은 단아하게 웃고 계시는 관음보살이 다 들어주리라.

마애관음좌상은 낙가산 중턱의 눈썹바위 아래에 새겨져 있었다. 이 마애관음좌상은 1928년 배선주 주지 스님이 보문사가 관음 성지임을 나타내기 위해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의 이화응(李華應) 스님과 함께 이곳에 새긴 것이다.

크기는 높이 920㎝, 너비 330㎝에 달하는 거상(巨像)이다. 크기를 척수로 환산하면 높이 32척에 너비가 11척이다. 이것은 곧 관음보살의 32응신(應身)과 11면(面)을 상징한다고 한다.

흔히 문화재라고 하면 수천 년 전의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이 높은 산 중턱 바위에 100년이 안 된 문화재가 수천 년 전의 문화재 만큼의 위용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노라니 그 정성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약간은 네모진 얼굴에 커다란 귀, 투박한 형태의 눈, 코, 입 등을 보고 있자니 어떠한 소원이라도 다 들어줄 듯 보였다.

그러나 씁쓸하게도 지금은 비둘기떼가 그곳에 자리를 잡아 관세음보살의 몸과 얼굴 등에는 비둘기의 배설물이 묻어 있었다. 가파른 바위에 조각한 것이라 사람이 일일이 치울 수도 없는 상태라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저 저 비둘기들도 염불소리를 듣고 다음에는 더 좋은 몸을 받아 태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눈썹바위를 오르내리면서 흘린 땀은 석실에 들어가면 다 풀 수 있었다.

관음성지이자 나한성지

보문사는 관음성지임과 동시에 나한성지라고도 한다. 이는 석실 안에 봉안된 나한상들 덕분이다.

보문사 창건설화에는 어부들이 고기를 잡다가 그물에 걸린 나한상들을 건져서 이곳 석실에 안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설화가 신라 선덕왕 때의 일이니, 석실의 역사 또한 이때부터라고 할 수 있겠다. 석실에 봉안된 불상과 나한상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어느 하나도 같은 얼굴, 같은 형태가 없어서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신심이 느껴졌다.

석실 바깥으로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니 천인대라는 바위가 나왔다. 이 천인대에 관해서는 절의 창건 무렵 인도의 한 스님이 이 바위에 불상을 모시고 날아온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그 뒤 이 바위는 법회 때 설법하는 장소로 사용됐는데, 바위 위에 천 명이 능히 앉을 수 있다고 해 ‘천인대'라고 불린다. 천 명이 앉을 수 있다는 말은 그만큼 이 절의 사세가 크고 영험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재의 보문사에서는 여러 가지 불사가 진행 중이다. 한쪽에서는 33관음보탑 조성불사가 진행 중이고 또 와불 조성불사도 행하고 있다. 부디 보문사의 새로운 불사들이 눈썹바위에 마애관음좌상을 새길 때와 같은 지극한 정성으로 이뤄져서 관음도량으로서의 모습을 더 찬란히 빛내주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보문사 내려오는 길에 햇살이 길게 드리웠다. 오늘은 낙조가 아름다운 날이 되리라.

자은림/불교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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