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총무원장 정산 스님.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들판에는 여름의 강렬한 햇볕을 듬뿍 받아 단단한 열매를 맺은 곡식과 과일이 풍성합니다.

지금 돌아보면, 우리들이 “너무 힘들다”고 했던 지난 여름의 그 무더위야말로 이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가져오게 한 가장 큰 공로자이니, 새삼 지난 여름의 무더위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이야 상황이 달라졌지만,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가을 수확을 하고 겨울을 넘기기 바쁘게 이미 식량이 바닥나기 시작하고, 보리 수확을 하기 직전에는 그야말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간신히 가족들의 생명을 유지해나가는 집이 많았습니다. 오랜 세월 대를 물려온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았지만, 본래 부유하게 살다가 낭비하며 무절제한 생활을 한 결과 그렇게 된 집도 있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큰 부자였다가 몰락하여 거지가 되었던 사람 이야기가 전해져 우리들에게 교훈이 됩니다.

바라나시에 마하다나(Mahadana)라는 큰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의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즐기지 않고 게으르기 짝이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자, 부유한 집 배경 덕분에 또 다른 부잣집 딸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양쪽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나게 되어, 이 부부는 양가에서 아주 많은 재산을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부는 이 재산을 잘 유지하거나 늘려나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좋은 일에 쓰는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다만 물려받은 재산을 낭비하며 쾌락에 빠져들기만 하였고, 양가 부
모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물려받은 그 많은 재산이 바닥이 났습니다.

평소 좋은 일을 조금이라도 해왔다면 이들을 불쌍하게 여겨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엄청난 재산을 가졌던 시절에 가난한 사람들을 도운 적이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쾌락만 추구했던 그들을 동정할 사람이 있을 리 없었던 것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이 부부가 어릴 적부터 공부를 멀리 하고 기술을 배운 적도 없으며 단 한 차례도 생산적인 일에 종사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돈을 벌 수 있는지 전혀 몰랐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거지가 되어 구걸을 하는 것 말고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이 거지 부부가 절의 양지바른 담에 기대 앉아 있는데, 한 사미가 자신이 먹다남은 음식을 갖다 주자 그들은 이것을 받아 허겁지겁 먹어대었습니다. 마침 이 장면을 보신 부처님께서 아난다(阿難)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 사람을 보시오. 그는 일생 동안 아무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는 생활을 해왔소. 만약 그가 어렸을 때 재산을 잘 키우고 관리하는 방법을 배웠더라면 지금은 이 도시에서 최고 부자가 되었을 것이오. 어려서 비구가 되었다면 이미 아라한이 되었을 것이오.

만약 청년 시절에 재산을 잘 키우고 관리하는 방법을 배웠다면 이 도시에서 두 번째 가는 부자가 되었을 것이오. … 그가 중년이 되었을 때라도 재산을 잘 지키고 관리하는 방법을 배웠더라면 이 도시에서 세 번째 가는 부자가 되었을 것이오.

그러나 그는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나 나이가 들었을 때나 아무것도 배우려고 하지 않았고 노력도 하지 않았소.

그리고 그는 결국 세상을 제대로 사는 방법을 모르고 재산을 지킬 줄도 몰라 마침내 그 많던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말았소.

그가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면 깨달음을 얻어 위대한 스승으로 존경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을 터인데, 이제 그 기회를 모두 다 놓쳐 버리고 거지가 되어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것이오.”

불자 여러분!

부처님께서 《팔만대장경》에 고귀한 가르침을 가득 담아 우리에게 물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가르침을 따라 열심히 수행 정진하고, 이웃을 돕는 선업을 쌓으며, 유정·무정의 일체 중생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하지 않는다면, 위 이야기에서 보듯이 양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큰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구걸하며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처럼 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없습니다.

상월원각대조사님께서 ‘생활불교'를 종단의 3대 지표 중 하나로 정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고, ‘주경야선(晝耕夜禪)'을 강조하신 것도 우리가 물려받은 큰 재산인 부처님 가르침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불자 여러분!

여러분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와 부처님 제자가 되는 순간 모두 큰 보물을 물려받았습니다. 이 보물을 잘 지키고 더 증식시키거나 아니면 잃어버리게 될지, 그 답은 각자의 수행과 기도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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