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來生엔 세계무대서 포교하고 싶어”


사진설명 : 50년 가수인생 담은 회고록 낸 불자가수 송춘희 씨. 

“제 생애 다할 때까지 찬불가를 부르며 포교활동을 펼치겠습니다.”

‘수덕사의 여승', ‘영산강 처녀' 등 민요풍 노래로 1960년대를 풍미했던 불자 가수 송춘희 씨. 노래 인생 50년을 맞아 낸 회고록 《다시 태어나도 나는 가수가 되리라》를 통해 지극한 불심을 드러냈다.

송 씨는 다시 태어나도 가수가 되고 싶은 이유에 대해 “유명가수가 되어 찬불가를 부르며 세계를 무대로 포교활동을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불자라는 사실을 떳떳이 내세우고 있지만 그는 한때 개신교인이었다. 교회 수석장로인 고모할아버지를 비롯해 8남매 중 5명이 목사인 개신교 집안에서 자란 송 씨가 불교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히트곡 ‘수덕사의 여승' 때문이었다. 이 노래로 1966년 10대 가수상을 탔고, 유명가수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굳혔지만 ‘수덕사에 가보지도 않고 노래를 부른다'는 관객들의 지적에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런 연유로 난생처음 사찰을 찾은 송 씨는 “어느 사찰인지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곳에서 만난 부처님이 나를 보며 방긋이 웃고 있었다”면서 “부처님을 대하니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해지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인연 때문이었을까. 송 씨는 캐나다 공연 길에서 현 봉덕사 주지인 광옥 스님을 만났다. 캐나다에서 만난 광옥 스님이 들려 준 불교 교리는 송 씨가 불교에 대해 심취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숭산 스님이 직접 찾아와 “연꽃은 백련, 청련, 홍련이 있는데 그중 가장 귀한 것은 백련”이라면서 ‘백련화'라는 법명을 지어줬고, “불교계의 귀한 인물이 돼라”고 당부했다.

‘백련화'로서 거듭난 송 씨는 숭산 스님의 뜻을 받들어 국내에서 포교활동을 펼치고자 찬불가 음반을 내고, 이를 보급하기 위해 법당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당시 법당에서 노래를 한다는 것 자체를 금기하던 풍토에서 찬불가가 허용될 리 만무했다. '마구니' 취급을 받고 쫓겨난 적까지 있었다. 하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찬불가 보급에 앞장섰던 그의 노력 때문에 현재 각 사찰 법회마다 불심이 배어나는 합창단의 찬불가가 사찰 가득 울려 퍼지고 있다. 

송 씨는 1991년 ‘백련장학회'를 설립해 불우한 환경 속에서 공부하는 청소년들을 꾸준히 지원해 오고 있으며, 전국 군법당과 교도소 등지를 다니며 음성 포교에 힘쓰는 등 지인들 사이에서 가수보다 ‘송법사'로 더 잘 통한다.

지금은 가요보다 찬불가가 더 익숙해졌다는 송 법사는 “부처님 말씀만 듣고 살면 생활에 근심 걱정이 없는데도 많은 이들이 따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포교활동을 펼쳐 나갈 것이다”고 다짐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