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장마 중이고 찜더위가 기승인데, 무슨 가을 타령인가? 7월은 맹추(孟秋)요, 초추(初秋)다. 가을이 온다는 소식이다. 무더위를 넘기고 서늘한 바람을 기다리는 달인 것이다. 음력과 양력은 이렇게 다르다. 더구나 올해는 윤달(閏月)이 들어 예년과 한달 가까이 음양력의 체감이 다르다. 윤달과 다음 달에 드는 윤칠월에 대해서는 다음에 살펴볼 것이다. 음력 칠월의 절기로는 입추(立秋)와 처서(處暑)가 있다.

칠월에는 꼴베기를 하고, 익어가는 곡식을 지키느라 허수아비를 세우고, 밭에 거름을 주고, 가을 김장 대비로 무배추갈이를 하고, 목화밭을 관리하는 등 분주하기 짝이 없다. 이 달의 가장 큰 일은 마지막 논농사의 김내기다. 요즘같은 농약이 없던 시절 무성하게 웃오르는 잡초들은 한해 농사의 가장 큰 적이다. 마지막 전투가 농사꾼과 자연 사이에 벌어진다. 허나 동시에 두레 농사를 마감하고 풍요로운 가을의 수확을 기다리는 시절이다. 풍성한 수확을 앞두고 뜰뜬 마음을 가눌 길 없어 어정거리는 달인 것이다. 해서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라 했다. 각종 채소와 과일의 수확철인지라 먹거리의 걱정이 없는 터일 것이다. “이른 메벼 벨 때 이삭은 여물고 멀건 국 싫어할까봐 푸른 콩 넣어 밥짓는다” 는 타령은 그래 나온 시구이기도 하다.

칠월의 대표적인 풍속은 칠석과 백중이다.
칠석은 견우-직녀의 전설에서 기원한 중국의 풍속이다. 천상의 견우-직녀성은 가을 초저녁에는 서쪽 하늘에 보이고, 겨울에는 태양과 함께 낮에 떠있고, 봄 초저녁에는 동쪽 하늘에 나타나며 칠석 때면 천장 부근에서 보게 되므로 마치 1년에 한 번씩 만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에 대해 최남선 선생은 견우성과 직녀성이 1년에 한번씩 마주치게 보이는 것은 일찍이 중국 주대(周代) 사람들이 해마다 경험하는 천상(天象)의 사실이었는데, 여기에 차츰 탐기적(耽奇的)인 요소가 붙어 한대(漢代)에 와서 칠석의 전설이 성립된 것이라고 하였다.

칠석의 대표적인 풍속으로는 걸교(乞巧)와 폭서(曝書), 광의상(曠衣裳), 명다리와 칠석불공 등이 있다. 걸교는 아녀자들이 천상에서 베를 짜는 직녀에게 길쌈질(女功) 솜씨가 늘기를 비는 것이다. 폭서나 광의상은 바쁜 농사일이 끝나고 장마가 지난 다음인 칠석 무렵 눅눅해진 서책과 옷가지를 말리는 풍속이다. 명다리는 무속에서 자손의 무병장수를 비는 의례이고, 불가의 칠석불공도 이와 같다. 오늘날 불가에서는 금기시하지만 종종 절집안 칠성각에 무당들의 무명 실타래가 걸려 있는 것은 무속과 불교의 민간신앙적 교섭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서울 인왕산의 칠성암에 신당이 있는데, 기도일(칠석)이 되어 선비들이 와서 재를 올리고 기도를 드리면 반드시 과거에 급제한다고 하여 유생들이 종종 온다”고 하였는 바 칠석이 불교나 무속뿐 아니라 유생들에게도 중요한 신앙 절기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백중은 민간에서 고된 농사를 끝내고 벌이는 칠월의 세시명절이자 불교의 조상천도일이기도 하다. 백중은 세벌김매기인 만두레를 끝낸 다음 벌이는 농민과 머슴들의 대동굿으로서 봉건제 하 농촌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최대의 축제일이었다. 백중은 한자로는 세서연(洗鋤宴) 등으로 적었는데, 이는 호미씻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에 불과하다. 호미씻이는 김매기를 마친 다음 김매는 도구인 호미를 깨끗이 씻어 보관해두는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또는 농민들이 힘든 농사를 마무리짓고 발 뒤꿈치를 께끗이 씻는다 하여 백종(白踵)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 백중은 지역에 따라 호미씻이, 질꼬내기, 술멕이, 써레씻이, 대동굿, 머슴날, 풋굿, 두레먹기, 파접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리며, 그 내용도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모두 다 칠월 보름 전후하여 농사일 마치고 벌이는 축제라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이 날이 되면 농민이나 머슴 중 가장 일을 잘한 사람을 뽑아 삿갓을 씌우고 소에 태워 마을을 행진하며 그 동안의 중노동에서 쌓인 피로와 한을 마음껏 풀었다. 또 밀양의 참백이꼼놀이에서와 같이 양반이나 지주에 대한 분노와 야유를 형상화한 양반춤이나 병신춤 등을 추며 공개적으로 양반 지주를 희롱하기도 했다.

한편 불교에서도 이 백중을 큰 명절로 여기는데, 우란분절의 조상천도와 연관시키면서 백가지 음식(百種)을 마련하여 고통 속에 빠져 있는 조상의 넋을 구제한다고 하여 백종(魄縱)이라고 불렀으며, 또는 스님들이 하안거를 마치고 그 결과를 대중 앞에 고백하는 날이라 하여 백중(百衆)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또 “시장에 채소 과일이 지천이니 모든 이가 도처에서 망혼(亡魂)을 천도한다” 하여 망혼일(亡魂日)이라 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 용어가 혼용된 것은 한여름의 풍성한 과일이나 햇곡식을 들고 절간을 찾아 스님들께 공양하거나 조상 천도를 위한 기도를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찰에서 칠월칠석에 입제하여 백중에 회향하기도 하는 등 칠월의 민간명절에 따라 행사일정을 잡는 것은 민간의 풍습을 존중하면서 그를 불교의 의식체계 내에 수용했던 오랜 전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란분경에 따른 우란분재와 백중의 시기상의 일치가 어떤 이유로, 그리고 언제부터 이루어진 것인지는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진철승(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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