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전통 지켜온 한국불교
세계불교의 희망
스타 발굴·육성 힘쓰자

요즘 불교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출가자 감소·종교의 상업화 경향·일반인의 무관심 등은 현대의 모든 종교가 겪는 고충이다.

세계불교는 지금 티벳불교가 주도하고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사상성·역사성 등 여러 면에서 티벳불교가 한국이나 중국보다 우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벳불교가 세계불교를 이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달라이라마라는 슈퍼스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티벳의 정치지도자이기도 한 그의 눈물겨운 삶의 여정, 독립운동을 추진하면서도 끝까지 비폭력을 고수하는 점, 그리고 독특한 카리스마로 대중에게 어필하는 점 등이 티벳불교의 장점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세기에는 뛰어난 불교 스타들이 있었다. 성철 스님, 법정 스님, 그리고 숭산 스님 등은 한국불교를 지탱해 온 큰 기둥들이었다. 각자의 포교 자세나 행적 등은 달랐지만 그 세 분의 노력이 한국불교의 자존심을 지켰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현대와 같은 몰개성(沒個性)의 시대일수록 대중은 스타를 갈망한다.

이제 우리 불교는 21세기의 불교 스타를 등장시켜야 한다. 스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 대중을 열광시킬 수 있는 흡입력이 있어야 하고 포교의 전달 방편 또한 보편타당성을 지녀야 한다.

불교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1,700년의 역사 속에서 불교는 민족과 명운을 함께 해왔다. 한국인들의 유전자 속에는 불교적 DNA가 뿌리내리고 있다. 문제는 그 잠재력을 드러내게 하는 노력이다. 종교 인구를 조사할 때 서양 종교의 경우를 불교에 그대로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세례(수계)를 받았는가’, ‘정기적으로 종교집회에 참여하는가’, ‘일주일에 얼마씩 정기적인 헌금(보시)을 하는가’ 등의 잣대는 불교의 경우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는 대대로 초하루, 보름 등 재일에 절에 가서 불공을 하고 초파일에 절에 가서 등을 달면 불자이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불교를 사모하고 그 진리성을 믿는 잠재적 불교인이 많다. 그들은 자신의 종교가 불교라고 말하기를 망설인다. 그렇다면 이들이 불자가 아닌가? 나는 그들을 ‘잠재적 불자’라고 부른다. 성철 스님이나 법정 스님에게 대중이 환호했던 이유는 바로 우리 내부에 있는 불교적 심성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서양 선각자들은 백 년 전부터 불교사상의 위대함과 보편성에 주목하였다. 오늘날의 인류 생존위협으로 꼽히는 지구온난화·공해·오존층의 파괴 등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불교뿐이라고 천명하였다. 불교에서 말하는 불살생, 자비실현은 인류의 공동선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미래의 한국불교가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이곳에 있다. 동남아의 불교는 습관적 범주에 머물러 있고, 일본불교는 장의(葬儀) 불교로 전락하고 있다. 유독 한국불교만이 수행불교의 전통, 재가불자들의 지성화 물결로 넘실거린다고 진단하고 있다. 한국불교는 세계불교의 희망이 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한국불교의 스타를 발굴하고 키워내야만 한다. 이것이 이 시대의 불사(佛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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