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우공양 수행의 연장선
여법한 발우공양 속
출가자 지혜·유머 돋보여

발우공양은 대중생활을 하는 승가에서 ‘공양이 곧 수행’임을 새기기 위해 의식으로 정립해놓은 식사법이다. 근래 서울지역의 여러 전통사찰을 방문해 노스님들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여법한 발우공양 속에서도 출가자들의 지혜와 유머가 반짝반짝 빛났다.

발우공양을 하는 대방에 나무로 만든 직사각형의 묵언패(默言牌)를 여러 개 걸어둔 사찰들이 있다. 이 묵언패는 발우를 받들어 오관게(五觀偈)를 외운 다음, 공양을 시작하기 직전에 쓰인다. 2인의 종두(鐘頭) 스님이 묵언패를 양손에 들고 일어나서, “묵~언~알~요.”라고 외친 다음 패를 ‘짝짝짝’ 3차례 치게 된다. 공양할 때는 일체 묵언해야 하니 ‘묵언을 아뢴다.’는 말을 네 자로 줄여 길게 소리 짓는 것이다.

이후 묵언을 지키지 않는 스님이 있으면 그 스님을 향해 묵언패를 쳐서 환기하고, 대상이 노스님이면 그 앞에 묵언패를 갖다 놓은 채 절을 올렸다. 점잖은 방법이지만 노스님으로선 쑥스러운 일이다. 이를 ‘묵언 맞았다.’고 표현하면서, 예전에는 ‘묵언 맞은 노스님’이 자청해서 쌀을 내어 떡을 하는 문화도 있었다.

1960∼70년대에 8개 암자로 운영되었던 옥수동 미타사는 당시 안거 철에만 발우공양을 했다. 공양 때가 되어 대북을 쳐서 내리면 가사를 갖춘 스님들이 각자 발우를 들고 대방에 모였다. 반찬을 암자마다 돌아가면서 장만하여, 공양주 스님들은 은사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 솜씨를 발휘하곤 했으니 발우공양은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여러 암자로 운영되는 미타사처럼, 삼동결제(三冬結制) 발우공양을 이어온 신촌 봉원사에서도 스님들이 돌아가며 발우공양 국을 준비하는 전통이 있다. 당번 스님이 배추ㆍ무ㆍ감자ㆍ버섯 등 국에 쓸 재료를 손질해서 공양간에 갖다 놓으면, 공양주는 그 재료로 국을 끓여내었다. 근래에도 ‘방납’이라는 이름으로 국에 드는 비용을 내고 주방에서 준비하고 있어, 사찰의 운영에 따라 음식 장만의 방식도 다채롭다.

반찬을 담은 찬상에 바퀴를 달아서 쓰는 사찰이 있는가 하면, 절차를 알리는 입승 스님이 죽비 대신 경쇠를 사용하는 전통도 나란히 전승되고 있다. 어시발우보다 크거나 찬발우보다 작은 크기를 하나 더 지녀, 오합(五盒)의 발우를 펴기도 한다. 가장 큰 발우에는 대중공양으로 들어온 과일ㆍ떡ㆍ빵이 돌면 담아두었고, 가장 작은 발우는 양념을 담거나 밥알을 떼어 시식용 등으로 썼다. 오행을 뜻하는 숫자 ‘5’의 상징성과 함께 오합발우는 옛 기록에도 많이 등장하니, ‘발우는 사합’이라는 사실 또한 고정관념이었던 셈이다.

만두공양을 하는 날이면 장난기 많은 스님들이 고춧가루를 속으로 넣어 특별히 예쁘게 빚은 만두를 하판에 돌리고, 찰밥공양이 나오면 김에 찰밥을 싸서 어른 스님들 눈을 피해 서로 던지기도 했다. 정초나 특별한 날에 나오는 별식의 즐거움을 누리는 방식이니, 명절을 맞아 들떴던 우리네 어린 시절이 연상된다. 수행과 다르지 않은 출가자의 공양의식에도 윤활유와 같은 다채로움과 미소가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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