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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인간실격, 그 쓸쓸함에 대해모든 인간은
태어난 것만으로
살 자격이 충분하다
  • 이미령 불교칼럼니스트
  • 승인 2021.11.2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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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문득 돌아보면 손에 쥐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최선을 다해 지인들에게 마음을 썼는데 ‘네가 해준 게 뭐가 있어?’라는 말을 듣고 말았다.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조심해서 살아왔는데 ‘너 때문에’라는 말이 간간이 들려온다. 남들은 무엇이라도 가졌고 무엇이라도 되었건만 나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고 있고 아무 것도 되지 못한 채 지금 숨을 쉬고 있으니, 이것이 그 누구도 아닌 내 인생에 민폐를 끼치는 일인 것만 같다.

얼마 전에 열심히 시청했던 드라마 ‘인간실격’은 주인공의 이 같은 독백과 회한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실격(失格)이란 말이 참 서글프다. 인간으로서 살아갈 자격을 잃어버렸다는 말 아닌가. 이 말은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가 1948년에 발표한 자전적 소설의 제목이다. 예민하고 병약한 몸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주인공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방황하다가 끝끝내 허무하게 삶의 종착지를 향한다는 이야기다. 소설을 읽다보면 뭘 그렇게까지 심하게 자신을 극단으로 내모는가 싶고, 그래도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좀 더 힘을 내어 살지 못하는 주인공이 미워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올가을에 방영된 드라마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보다는 공감의 깊이가 한결 더하다. 직장에서도 내쫓기고 뱃속 태아를 잃고 남편에겐 여자친구가 있다. 그래도 주인공은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홀로 된 아버지를 찾아가 보살펴드리지만 그런 인간적인 행위 끝에는 진한 허무가 도사리고 있다. 마음 속 깊이 세상을 향한 분노가 똬리를 틀고 있어 그녀는 드문드문 거친 언행을 터뜨린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또 한 사람의 남자 주인공이 곁에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누군가에게 무엇이라도 되어주는 심부름대행업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왔지만 결국 하고 싶은 일도 못하고 아무 것도 되지 못해 세상을 향해 분노를 품은 주인공과,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를 알지 못해서 무작정 도움이 되는 일을 해주는 것으로 돈을 버는 또 한 사람. 지금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는 이 둘 중에 하나가 아닐까.

그런데 정말 주인공은 아무 것도 아닌 삶이었을까. 아닌 것 같다. 일찍이 삶에 지쳐 모든 걸 포기하려던 아버지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 한 마디를 건네어 그를 살게 해주었다. 그 기꺼움을 평생의 양식으로 삼고 살아온 아버지는 뒤늦게 삶의 빈 손에 허무하고 슬퍼하는 딸을 향해 이렇게 위로해준다.

“나도 이만하면 됐고, 너도 그만하면 됐어.”

애초에 ‘인간의 자격’이란 잣대는 정해져 있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내가 존재함으로써 누군가가 살아갈 힘을 얻는다면, 설령 그 누군가가 그걸 눈치 채지 못하고 있더라도 살 자격을 잃었다고 쉽사리 쓸쓸해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드넓은 바다 위를 떠다니는 널판지 구멍에 눈 먼 거북이 머리를 맞추는 확률 보다 더 희귀한 인연으로 우리는 지상에 태어났고 서로와 인연을 맺고 있다. 태어난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살아갈 자격을 움켜쥐었다. 이만하면 됐다.

이미령 불교칼럼니스트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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