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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업으로 인한 붓다의 수난6_6년 고행을 한 이유가섭불 멸시하는 말
내뱉은 과보를 겪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29세에 카필라바스투 왕궁에서 나와 출가를 했다. 이후 남하하는 여로에서 수많은 수행자를 만난다. 그중 두 명의 수행자로부터 선정을 배운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부처님께서는 매우 짧은 기간에 그들의 수행경지에 이르렀고, 그 경지가 생사 해결의 지점이 아님을 알고 그들 곁을 떠난다. 곧 가야 근처에 와서 다섯 수행자와 함께 격심한 고행을 하게 된다. 부처님의 고행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육신의 고통이었고, 아울러 6년의 고행 기간도 매우 길었다. 왜 부처님께서는 6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고행을 자처했을까?

보살의 고행

보살은 가야성(伽耶城) 남쪽에 있다가 오류빈라(烏留頻螺)의 서쪽 나야니(那耶尼) 부락으로 갔다. 니련선하(尼連禪河) 물가에서 한 군데 좋은 곳을 발견하고 고행을 시작한다.

보살은 곧 나무 밑에 단정히 앉아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입을 다물어서 호흡을 조절했다. 보살은 입으로 쉬는 숨과 코의 기운을 다 제거하였다. 입과 코를 닫아버리자 곧 두 귓구멍에서 큰 바람 소리가 나왔다. 숨이 나오지 않자, 기(氣)는 배와 오장(五臟)으로 들어가 배가 팽팽하게 부풀게 되었다. 기운이 가득 차서 배가 아팠으니, 마치 소를 잡는 사람이 날카로운 칼로 소의 배를 찌를 때 소가 느끼는 아픔과 같았다. 입과 코를 닫고 막으니, 기가 가득 차서 온몸에 두루하여 몸이 뜨거워지는 것이 마치 두 사람의 역사(力士)가 약한 사람을 들어 이글거리는 불 속에 넣은 것과 같았다.

보살은 음식을 줄여가며 단식을 시작했다. 여러 천신은 보살이 모든 음식을 끊은 것을 보고, 보살에게 와서 말했다.

“보살이시여! 이제 당신이 인간의 음식을 싫어하므로, 우리가 마땅히 당신의 털구멍으로 감로(甘露)를 넣어 줄 것이니, 받아 주시오.”

보살은 생각했다.

‘내가 이미 인간의 음식을 끊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데, 이제 와서 감로를 받는다면 이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나는 결코 이 감로를 받지 않으리라. 하지만 나는 인간의 음식을 소량은 먹을 필요가 있다.’

보살은 천신의 청을 거절하고서 쌀·팥·콩·녹두·보리·밀 등 이렇게 매일 각각 따로 한 알씩 먹었다. 그러다가 보살은 다시 생각했다.

‘내 이제 손바닥에 즙을 조금 담아 마시고 목숨을 이으리라. 팥국이나 붉은 팥·완두콩·녹두 국 등을 마시리라.’

그 후 팥과 콩 등 그 즙을 조금씩 먹었다. 그리하여 보살의 몸은 차츰차츰 살이 빠져 수척해져서 마치 80세 먹은 노파의 몸과 같이 야위게 되었다. 보살의 머리는 바짝 말라서 마치 마른바가지와 같았다. 눈자위가 푹 꺼져, 우물 속에 보이는 별과 같이 눈동자만 반짝였다. 양쪽 갈비뼈 밑이 움푹 들어가 마치 300년 된 초가집 지붕과 같았다. 일어서려고 하면 엎어지고, 앉으려 하면 뒤로 넘어졌다. 허리를 단정하게 세우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손으로 몸을 문지르니 털이 모두 빠졌다. 피와 살은 다해 말라 버리고 몸뚱이는 아주 파리하게 되었다.

보살은 더러운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풀을 먹어보지 않은 갓 태어난 송아지의 똥과 오줌을 먹었다. 똥과 오줌을 먹고 난 보살은 즉시 시림(屍林) 아래에서 시체와 해골을 베고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붙이고 두 발을 포개고 누워서 속으로 빛 모양[光相]을 생각했다.

보살이 앉아 있으면, 마을 안팎의 남녀들이 조용히 앉아 선정에 든 보살을 보고서 풀잎과 줄기를 뜯어 보살의 귓구멍과 콧구멍을 이쪽저쪽 쑤시면서 비웃고 장난쳤다. 보살의 귀에 대고 ‘이 흙먼지 귀신[坌土之鬼] 봐라.’라고 말하며 소리치고, 흙덩이와 돌을 보살의 몸에 던지면서 희롱했다. 그렇지만 보살은 화내지 않고 수모를 견뎌냈다.

보살이 6년 동안 고행할 때에 위의(威儀)에 있어서 일찍이 실수하거나 무너뜨린 일이 없었다. 한여름의 무더위에도 시원한 데에 나아가지 않았고,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에도 두껍고 따뜻한 것을 구하지 않았으며, 모기와 등에[곤충]가 몸을 물어도 떨어버리지 않았다.

훗날 정각을 이루신 후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6년간 고행한 인연에 대해 말씀하셨다.

<삽화=필몽>

화만 시절에 지은 구업

옛날 바라나성 변두리의 다수읍(多獸邑)이라는 마을에 왕사를 돕는 바라문이 있었다. 그에게는 화만(火鬘)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단정하고 브라흐만교의 전적과 도서참기(圖書讖記), 외도의 여러 산술에 모두 능숙했다. 화만에게는 호희(護喜)라는 기와장이 친구가 있었다. 호희는 앞을 보지 못하는 부모를 극진하게 모셨다. 기와장이 호희는 손수 흙을 파지 아니하고 역시 사람을 시켜서 파지도 아니했으며, 오직 쓰러진 담장이거나 무너진 언덕이거나 쥐가 파헤친 흙들을 가져다 이겨서 그릇을 아주 잘 만들었다. 손님과 가격을 다투지 않았고, 오직 곡식만을 받아서 음식을 마련할 뿐이었다.

이때 다수읍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가섭(迦葉) 여래가 제자들과 함께 계셨다.

호희가 화만에게 말했다.

“같이 가서 가섭 여래를 뵙자.”

호희의 말에 화만이 대답했다.

“너나 필요하면 저 까까머리 도인을 보려무나. 저 까까머리 도인에게 무슨 도가 있겠느냐? 부처님의 도는 얻기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 호희가 가섭 여래를 함께 친견하자고 세 번이나 요청했지만 화만은 역시 세 번이나 가섭 여래를 멸시하는 말을 내뱉으며 거절했다.

훗날 호희는 화만과 함께 물놀이를 갔는데, 호희가 오른손을 들고 한 방향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가섭 여래가 머무는 정사가 여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같이 잠깐 가서 뵙자.”

그러자 화만은 같은 말로 거절했다.

“너나 필요하면 까까머리 도인을 보려무나. 까까머리 도인에게 무슨 부처님의 도가 있겠느냐? 부처님의 도는 얻기 어려운 것이다.”

호희는 화만의 옷을 붙잡고 끌면서 말했다.

“함께 가섭 부처님에게까지 갔다 오자. 부처님은 아주 가까운데 계신다.”

화만은 호희를 뿌리치고 도망을 가려고 했다. 그런데 호희가 뒤쫓아 와서 허리띠를 붙잡고 끌어당기며 말했다.

“잠깐 같이 부처님을 뵙고 바로 돌아오자.”

그러자 화만은 다시 허리띠를 풀어버리고 도망을 가면서 말하였다.

“나는 저 까까머리 사문을 보고 싶지 않다.”

호희는 곧 화만을 따라잡은 후 그의 머리를 붙잡고 끌면서 말했다. “한 번만 같이 가서 부처님을 뵙고 오자.”

그 당시 바라나국의 풍속에 사람의 머리를 붙잡으면 머리를 잡은 사람의 목을 베는 형벌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화만은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말했다.

“자네가 죽을 것을 알면서 나의 머리를 붙잡은 것인가?”

호희가 화만에게 대답했다.

“그렇다. 내가 죽더라도 끝끝내 자네를 놓지 않겠다. 반드시 그대가 부처님을 뵙게 하겠다.”

화만은 생각했다.

‘이 친구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나를 붙잡고 있으니 찾아뵈어야겠다.’

호희와 화만은 가섭 부처님에게 나아갔다. 호희는 합장하고 가섭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기 화만은 다수읍 대사의 아들입니다. 저와 어릴 적부터의 친한 벗이옵니다. 그러나 이 친구는 아직 삼보(三寶)를 믿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원하오니 세존께서는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십시오.”

화만 동자는 부처님에게 서른두 가지 모습에서 하나도 결함이 없음을 보고서 기뻐했다. 가섭 여래는 화만 동자를 위해 ‘선업을 짓고 악업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베풀었다. ‘보살이 나쁜 구업을 짓고 나서 뒤에 출가해 수행할 때에는 매우 힘든 고생을 하고서야 비로소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화만 동자는 부처님께 참회했다. 화만 동자는 가섭 부처님에게 나아가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사리불에게 이와 같은 전생의 업을 들려주신 후 말씀하셨다.

“그때의 화만 동자가 바로 지금의 나이다. 나는 먼저 나쁜 말로써 가섭 부처님에 대해 ‘까까머리 사문이 무슨 부처님의 도가 있겠느냐. 부처님의 도는 얻기 어려운 것이다.’라고 비방했다. 이 나쁜 말 때문에 정각을 이루려할 때 6년 동안 고행을 겪었다. 사리불아! 내가 6년 동안 고행한 것은 전생 인연에 대한 과보를 갚기 위함이었느니라.”

경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정각을 성취할 때 극단적인 6년 고행을 하게 된 이유가 전생에 가섭불에 대해 멸시하는 말을 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무량한 공덕을 지은 보살도 비방의 말로 저렇게 격심한 고난을 6년간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박복한 우리 범부중생은 나쁜 구업(口業)을 짓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삽화=필몽>

안양규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학사,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일본 동경대(東京大) 외국인연구원,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특별연구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장·불교문화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불교상담학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역·저서로 〈행복을 가져오는 붓다의 말씀〉·〈붓다의 입멸에 관한 연구〉·〈The Buddha’s Last Days〉 등이 있다.

글 안양규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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