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밝히는 독송은
진언 너머 신성한
영적 힘을 깨우는 수행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라다크 레 샹카르곰파의 1인 라마승 독송의식, 독송의식 기본도구 향·도르지·드릴부·응가 등

히말라야 설산 아래 메마른 회색조의 산과 언덕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나 또 다른 꿈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듯 고요히 앉아있다. 꿈의 실제인지 삶의 허상인지 구분조차 무의미해지는 곳, ‘오래된 미래’라고 불리는 라다크(Ladakh)는 그렇게 서 있다. 황량한 자연 풍광은 대지의 어둠과 밝음에 온전히 순응하는 동시에 대지의 근원은 온전히 스스로의 것임을 다짐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현재 라다크 지역 인구의 다수를 구성하는 티베트 불교도인 난민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종교와 일상이 하나 된 티베트 난민공동체

높고 낮은 산들로 거칠게 그려진 하늘선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곰파(Gompa, 티베트 불교 사원과 수도원의 복합공간)와 곳곳의 신성한 공간은 물론 마을 어귀와 나무에는 진언(眞言)과 상서로운 문양이 담긴 오색 깃발(타르초·Tharchog)이 펄럭인다. 티베트 불교 신자들이 절실하게 간구하는 기도가 ‘바람의 말(룽따·Rlung rta)’이 되어 하늘에 닿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일상의 삶에 있어서도 신자들은 사원 앞이나 마을 교차로 혹은 길가에 놓인 마니차(摩尼車, Mani khor)를 돌리거나 절실함으로 거머쥔 백팔 개의 구슬을 하나씩 움직이며 진언을 암송한다. 인도 라다크에서 난민으로 살아가는 티베트 불교 신자들은 여느 종교 신자들보다 강한 현실적 절실함이 종교적 신앙심과 연계되어 있다.

1959년 제14대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망명하여 인도 북부 찬디그라브(Chandigraph) 주의 다람살라(Dharamsala)에 망명정부를 수립한 후, 상당수의 티베트 불교 승려들과 신자들은 티베트를 떠나 라다크를 포함한 남아시아 지역으로 흩어져 난민공동체를 구성했다. 그 중 라다크는 중세 초기부터 티베트의 영향을 받아왔을 뿐만 아니라 지리적 환경 또한 비슷하다. 히말라야 산맥의 해발 3,000m 이상 고지대에 위치한 라다크는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야 하는 기후조건으로 인해 티베트 난민들이 거주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티베트 난민들에게 티베트 불교는 삶 자체이며, 불안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하다.

기원전부터 시작된 라다크의 역사를 돌아보면 강대국의 패권과 정복으로 점철되어 있다. 현재는 지리적 경계선이 맞닿아있는 중국과의 정치·군사적 상황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태이다. 라다크의 정치상황이 불안정함에도 거주민들이 상대적으로 평온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삶과 종교를 일치시키는 티베트 불교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 불교는 신자들의 삶과 죽음을 주관할 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과 관계된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 라마승들이 거주하는 곰파는 물론 삶을 영위해가는 일반 신자들의 하루는 진언의 암송으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모든 종교에는 독송(讀誦, 소리 내어서 읽거나 암송하는 것)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 중에서 유독 라다크 지역의 불경(佛經) 독송이 2012년 ‘인도의 히말라야 산맥을 경유하는 라다크 지역, 잠무와 카슈미르의 신성한 불경 독송’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데에는 문화재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티베트 난민공동체의 불완전한 사회적 위치와 이에 따른 보존의 필요성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2012년 라다크 초갈람사에서 열린 달라이라마의 순회법회.

진언을 듣고 깨닫는 독송

티베트 불교에서 소리는 신성함 그 자체이자 깨달음의 본질이다. 신성한 불교 문헌의 독송은 독송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를 위한 깨달음의 수행이다. 불경의 독송과 함께 만뜨라(Mantra/Mantram·眞言·신성한 소리가 집약된 것)의 반복적인 독송은 신성한 소리의 힘을 믿고 의지하는 신앙의 실천이다. 티베트 불교에서 독송은 불경을 읽고 듣는 데에 국한되지 않으며, 말하고 듣고 보고 움직이는 모든 소리와 움직임을 포함한다. 이렇게 만뜨라, 만달라(Maṇḍala·曼茶羅·만다라) 그리고 무드라(Mudrā, 상징적인 손동작)는 티베트 불교수행의 주요한 요소이다.

우주 섭리를 상징적인 도형과 그림으로 그려낸 만달라는 만뜨라와 마찬가지로 불교 교리와 부처의 철학을 담고 있다. 만뜨라가 시각화된 것이 만달라이며, 만달라가 청각화한 것이 만뜨라이기 때문에 각기 수행은 감각 너머의 공감각(共感覺)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독송의식에서 만달라를 마음에 그리면서 무드라를 취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또한 가면 무용극인 참(Cham)을 함께 연행하는데, 이것은 모든 감각을 쏟아 부어 진언을 듣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영적 수행을 보여준다.

라마승의 경전 독송은 곰파에 마련된 회당(Dukhang)에서 이루어지는데, 한 명부터 몇 십 명까지 다양한 인원이 독송을 행할 수 있다. 향을 피워서 회당을 정화하고 독송을 위해 경전을 준비한다. 독송을 할 때는 도르지(Dorji, 금강저)·드릴부(Drilbu, 작은 종)·응가(Rnga, 작은 북) 등 기본 불구(佛具)들을 사용하며, 여러 명이 함께 독송하는 경우에는 여러 악기들이 의식에 활용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악기로는 응가·다마루(Rnga-chung/ḍamaru, 드럼 모양의 아주 작은 북)·자바라 종류인 롤모(Rol-mo)와 함께 고둥껍데기 모양의 악기인 둥까르(Dung-dkar)·락숑마(Rag gshong-ma), 길다란 나팔 모양의 악기인 장둥(Zangs dung)·락둥(Rag-dung) 등이 있다. 여기에 뼈나 쇠로 만든 짧은 뿔피리 종류의 깡갈링(Rkang-aling)과 글링(Rgya-gling) 등 관악기가 첨가되기도 한다. 대개 작은 곰파에서는 한 명 내지 두 명의 라마승이 아침과 저녁 독송의식을 진행한다. 규모가 있는 곰파는 여러 명의 라마승이 참여하는 독송의식이 열린다. 이 경우에는 한 명 내지 두 명이 도르지와 드릴부를 사용하고, 나머지 인원은 무드라와 함께 독송하거나 좀 더 많은 불구들을 활용하게 된다.

독송의식을 위한 라마승 교육은 티베트 불교사원이자 수도원인 곰파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이 교육은 독송을 위한 영창(詠昌, 음조를 두어 읊는 것), 독송을 시각화하는 무드라(손동작), 독송에 필요한 도구 활용 및 악기 연주는 신성한 경전과 연계되어있는 만큼 엄격한 규칙 속에 오랜 수련이 필요하다. 라다크에서는 곰파의 원로 라마승이 레(Leh, 라다크의 수도)에 위치한 불교연구중앙협회(Central Institute of Buddhist Studies)의 감독 하에서 독송을 위한 교육의 내용과 방향을 주관한다.

오랜 기간 동안 엄격한 교육을 마친 라마승은 곰파 외에도 마을과 가정에 방문해 각종 의례나 특정한 사건 등에 적합한 독송의식을 행한다. 독송은 일반 신자들에게도 삶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데, 라마승의 독송을 듣는 것에 머물지 않고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뿐만 아니라 일상 중에도 읊조리는 형태의 독송을 지속함으로써 세속적 삶에 가려진 신성한 공간을 갈구한다.

인도 히마찰프라데쉬 괴뙤 까르마파곰파의 라마승들이 독송의식을 하고 있다.

일곱 종류의 라다크 독송의식

라다크에는 수천 종류 이상의 독송이 행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 헤미스(Hemis)·틱세(Thikse)·스피툭(Spituk)·마토(Matho) 등 주요 곰파를 중심으로 대표적인 일곱 종류의 독송의식이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들 독송의식은 티베트 불교의 4대 종파인 닝마(Nyngma)·카규(Kagyud)·샤캬(Shakya)·겔룩(Geluk)파에서 행해지는 공통의식, 특정 종파의 의식, 대승불교 의식 등이다.

우선 티베트 불교의 4대 종파 모두에서 연행하는 독송의식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티베트 불교의 주요 경전인 〈구야사마즈 딴뜨라(Guhyasamāja Tantra)〉독송이다. 이 독송은 라마승들의 낮고 깊은 저음으로 영창하는데, 진동의 울림이 신비로운 느낌을 더해준다. 다른 하나인 ‘내슈탄 피야그조드(Nashthan Phyagzod)’는 부처님의 열여섯 제자들인 아라한(Arahan)을 위한 기도이다. 두 종류의 독송 모두 곰파 뿐만 아니라 마을 및 가정에서도 행해진다. 한 가지 예로 가정에서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라마승을 집으로 초대해 내슈탄 피야그조드 독송의식을 행해 성난 신성들의 화를 잠재우고 복을 빈다. 이 독송의식은 티베트의 뵌(Bön) 토착 신앙과 혼합된 티베트 불교의 특징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라고 할 수 있다.

현 달라이라마가 속한 겔룩파의 독송의식으로는 ‘샤르강그리마(Shargangrima)’가 있는데, 겔룩파 창시자인 쫑카파(Je Tzongkhapa)의 송덕문을 읊는 것이다. 이 독송은 라마승뿐만 아니라 일반 신자들도 함께 따라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타 독송에 비해 쉽고 단순한 음조(音調, 소리의 높낮이와 강약)로 영창하게 된다.

겔룩파와 사캬파가 연행하는 독송의식으로는 ‘쿤리그(Kunrig)’가 있다. 쿤리그는 전지전능의 신성을 뜻하는데, 쿤리그 독송을 할 때 라마승은 그 자신을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신성한 존재로 시각화하면서 수행한다. 즉 붓다와 보살들, 그리고 여러 천상의 존재에 둘러싸인 만달라의 중앙에 라마승 자신을 놓고 자신의 독송을 신성한 소리의 울림으로 전하는 것이다. 이 의식은 11세기 라다크 지역의 린첸 짱포(Rinchen Tzangpo, 958~1055)에 의해 시작돼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린첸 짱포는 마하구루(Maha Guru, 큰 스승)로도 알려져 있는데, 산스크리트어 불교경전을 티베트어로 번역한 대표적 인물이다.

카규파의 독송 의식으로는 ‘리그마추툭(Rigmachutuk)’이 있다. 리그마추툭은 구루 파드마삼바바(Guru Padmasambhava/Guru Rimpoche)를 호위하는 열여섯 명의 여신(Dakini, 영적 존재)을 뜻한다. 이들 신비로운 영적 존재의 움직임은 가면 무용극인 참(Cham)으로 표현되어 불교경전의 독송과 함께 또 다른 시공간의 영적 세계로 인도한다. 구리 가면과 비단 옷을 입은 라마승들이 내딛는 걸음과 절제된 움직임은 경전 독송의 성스러운 울림 사이로 파고든다. 특정한 경전 구절이 끝날 때마다 앞서 소개한 여러 대의 타악기와 관악기가 깨달음을 위한 소리로 공간을 울리며 또 다시 독송과 움직임으로 인도한다.

한편 대승불교 전통의 독송의식으로 ‘구루 만뜨라(Guru Mantra)’가 있는데, 라다크 민요와 기도 깃발에 자주 등장할 정도로 라다크의 대중적인 만뜨라라고 할 수 있다. 불교 신자들에게는 일종의 보호주문으로, 이 주문을 반복적으로 외우면 세상의 번뇌와 세속적 죄로부터 정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최드(Chöd)’는 닝마빠와 카규파에서 행하는 독송의식으로 주로 시신 매장지에서 열린다. 죽은 이의 육신에서 의식을 분리시키는 의식으로 여러 명의 승려들이 오른손의 다마루와 왼손의 드릴부를 울리며 영창한다. 최드 독송은 그 길이가 무척 길고 매우 엄격한 원칙에 의해 영창된다. 따라서 선택된 소수의 라마승만이 행할 수 있는데, 계(戒)를 받은 승려들 중에서 수년간의 훈련과정을 통과한 일부만이 마하싯다(Mahasiddha, 수행을 통해 영적 능력을 얻는 자)가 되어 독송하게 된다.

독송의식 중 하나인 가면무용극을 하기 위해 악기를 연주하며 사찰 마당으로 나오는 라마승들. 〈사진=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침묵을 밝히는 빛, 어둠을 깨우는 소리

소리가 신성한 힘을 지니려면 그 힘을 믿는 사람이 존재해야 한다. 티베트 불교수행에 있어서 신성한 대상에 마음과 영혼을 집중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신성하게 여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호흡의 진동으로 잠재돼 있는 소리의 근원을 일깨우는 데에는 경전 속 언어와 독송 너머의 신성하고도 신비한 소리가 함의하는 영적 힘을 깨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라다크의 독송의식과 진언 암송은 역설적으로 ‘망언득지(忘言得旨, 말보다는 그 속의 뜻을 알아야 함)’를 통해 ‘인우구망(人牛俱忘, 소와 자신을 모두 잊음)’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함이다.

독송의식에서 사용되는 영창 음조나 악기 연주는 음악보다는 신성한 소리로 인식해야 한다. 영창의 음조는 경전의 언어를 신성한 소리로 치환시켜주고, 악기 연주는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의식 깊은 곳에 자리한 여러 지점들을 흔들어 깨우는 울림이기 때문이다. 즉 음(音)으로 악(樂)을 담는 음악이 아니라, 소리의 힘을 믿는 불교 신자들이 스스로 영적 통로를 열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신성한 소리인 것이다.

난민을 포함한 라다크의 티베트 불교 신자들에게 신성한 소리는 영적 깨달음을 위한 빛이자 암울한 현실을 견뎌낼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다. 라다크의 티베트 불교 신자들은 마을의 곰파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로 어둠을 걷어내고 아침을 맞이한다. 고요한 어둠을 가르는 소리는 신심 가득한 몸과 라다크 대지에 잠들어 있는 침묵에 빛을 밝힌다.

독송의식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라마승들. 〈사진=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라마승들이 독송의식의 하나인 가면무용극을 선보이고 있다
가면무용극 시연을 위해 사찰 마당에 모여 있는 라마승들.
독송의식에 사용되는 악기를 들고 연주하는 라마승들. 〈사진=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라마승들이 독송의식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만달라 피양곰파.

윤혜진
전남대학교 국악학과 교수. 작곡가이자 아시아음악학자다. 서울대학교 국악과 및 동 대학원에서 작곡을 전공했으며. 인도 Visva-Bharati 대학교에서 음악학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침묵과 소리 이면을 주요 이디엄으로 삼아 작곡 작업을 해왔다. 저서로 <인도음악>·<아시아의 제의와 음악>, 음반 ‘Soundscape’·‘정념(情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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