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능력 발전했어도
행복하지 않은 건
지족(知足)을 못하기 때문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신작 장편소설 〈클라라와 태양〉을 발표했다. 굵직한 문학상을 받은 후 처음 낸 작품이라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는데, 소설의 주인공 클라라가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작품 속에서는 ‘AF’ 즉 ‘Artificial Friend’라고 불리는데 부모들이 인형을 사 아이들에게 선물한 시대를 지나 이제 인공로봇이 인형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작가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이미 우리 일상에는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인간에게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필요한 것을 알아서 척척 내어주는 로봇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이니 이 소설 내용이 상상 속의 일은 아니다.

AF인 클라라는 유달리 관찰력과 학습욕구가 뛰어난 로봇으로, 병약한 소녀 조시의 선택을 받아 친구가 되어 섬세하게 보살피고 말동무가 되어준다. 사람이 미처 살피지 못한 면까지 세밀하게 관찰하여 도와주고 조시를 돕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인간들 중에는 이렇게 친절한 클라라를 ‘넌 그저 로봇일 뿐’이요, ‘말을 듣지 않으면 분해해서 내버린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 자도 있지만 클라라는 마음에 상처를 입지도 않는다. 로봇이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을 선택한 자신의 주인에게 다가가고 곁에서 지켜보고 부름을 기다릴 뿐이다.

로봇 이야기를 다룬 SF소설인데 묘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내처 읽어갔다. 그런데 대체 뭘까. 소설이 끝난 바로 그 지점에서 씁쓰레한 뒷맛이 느껴졌다. 어째 소설에 등장하는 인간의 삶은 조금도 더 행복해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외롭고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다른 이를 비웃고 여전히 질투하고 여전히 화를 내고 여전히 편을 가르고 그리고 여전히 병에 걸리고 여전히 죽어간다. 사랑하는 이가 죽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 사후의 적적함을 대체할 무엇인가를 그가 죽기 전부터 찾고 있다. 그뿐이랴. 아이들의 친구로 삼기 위해 구입한 인공친구 로봇은 아이가 자라서 흥미가 떨어지면 관심 밖으로 밀린다. 개발업체들은 매 시즌 업그레이드된 로봇을 선보일 테고, 오래된 버전의 로봇은 어느 결엔가 쓰레기가 되고 만다.

인간의 능력은 우주를 여행하고 핸들을 붙잡지 않고도 자동차를 몰고 나이를 먹고도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며 로봇을 일상생활 깊숙하게 끌어들이기에 이르렀다. 이미 생로병사의 한계마저도 넘어서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만큼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 그리고 더 나아지려는 욕구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설에서처럼 왜 인간의 근심·슬픔·우울 괴로움은 줄어들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것일까. 그저 외연만 확장될 뿐이다. 좁은 집에서 불편하게 살다가 고생 끝에 넓은 집으로 이사 가면 처음에는 행복할지 몰라도 자꾸 살림살이가 커지고 불어나고 청소를 제대로 하지 못해 어느 결엔가 행복은 사라지고 짜증만 늘어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옆집이 로봇을 샀는데 우리집만 없다는 그 상대적 박탈감과, 쓰다가 싫증나서 내다 버리는 바람에 재활용하기조차 애매해져 산처럼 쌓여버리는 로봇쓰레기를 처리할 근심만 늘 뿐이다. 그만하면 됐다는 지족(知足)을 일깨워줄 로봇이라도 개발해야 할까.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