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면·인내·충직 … 불가에선 ‘진면목’으로 표현

2021년 신축년(辛丑年)은 소띠 해다. 힘이 센 반면 순한 소는 열두 동물 중에서 불교와 가장 인연이 깊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힘든 요즘, 십이지신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우직하고 성실한 소 이야기를 덕담 삼아 소개한다. -편집자

십이지신 중 소.

역사적으로 십이지(十二支)가 언제 등장했고, 언제 동물로 상징화했는지는 〈금강〉 2020년 1·2월호에 기고한 바 있다. 하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한 번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십이지는 역사기록상 중국 한족(漢族)에서 발생했다. 연도를 표기하는 기년(紀年)에 응용되어 정리된 시기는 기원 전후다. 십간[十干, 天干]과 십이지[地支]의 글자를 아래위로 맞추어 날짜의 명칭으로 사용한 것은 3,000년 전부터다. 이때까지 십이지는 동물로 상징화되지 않았는데, 2세기경인 후한(後漢) 왕충(王充)의 〈논형(論衡)〉에서 처음 동물로 표현된다. 그 후 오행가(五行家)들이 십간과 십이지에 오행[木火土金水]을 붙여 인간의 운명은 물론 세상의 안위까지 점치는 법을 만들어냈다.

십이지에 대한 관념은 우리나라 이외에도 이집트·그리스·중앙아시아·인도·중국·일본 등 동서양에 걸쳐 광범위하게 성행했다. 동·서양 학자들이 그 기원과 유입경로를 연구했지만 견해는 제각각이다. 등장하는 동물도 동서양은 다르다. 바빌론의 경우 물고기·게·처녀·쌍둥이·어린양이 포함하고, 이집트에서는 고양이·갑충(甲蟲)·매·악어·홍학 등이 등장한다. 나라별로 서식하는 동물로 바뀌는 셈이다.

불교와 인연 깊은 소

불교에서 십이지는 〈약사경(藥師經)〉을 외우는 불교인을 지키는 신장이다. 우리나라의 십이지 신앙은 약사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불화(佛畵)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십이지신은 약사여래 권속으로서 표현된다. 통도사의 십이지 불화가 대표적이다. 불가(佛家)에서 십이지는 시간과 방위를 지키는 불보살과 신중이다.

십이지신 중에서 소는 불교와 가장 인연이 깊은 동물이다. 특히 사람의 진면목을 소에 비유한 〈십우도(十牛圖)〉는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한두 번쯤 본 그림이다. 달리 〈심우도(尋牛圖)〉라고도 부르는데 선(禪)을 닦아 마음을 수련하는 순서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십우는 △심우[尋牛:소, 즉 본성을 찾기 위해 산 속을 헤맨다] △견적[見跡:소 발자국을 발견하여 본성의 자취를 어렴풋이 느낀다] △견우[見牛:멀리서 소를 발견하다] △득우[得牛:소를 잡아 고삐를 끼다] △목우[牧牛:소를 길들이다] △기우귀가[騎牛歸家:동자가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 △망우존인[忘牛存人:소를 잊고 본래의 자기만 존재함] △인우구망[人牛俱忘:자기와 소를 다 잊다] △반본환원[返本還源:본디 자리로 되돌아가다] △입전수수[入廛垂手:가게에 들어가 손을 드리우다. 광명의 자리에 듦] 등이다. 십우도는 소를 찾고 얻는 순서와 이를 얻은 뒤에 주의할 점과 회향할 것을 이르고 있다.

사실 십우도는 부처님 당시에 있었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한 가난한 농부는 부처님이 자기 마을에서 법문을 하신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자신도 법문을 듣고 싶었는데, 마침 집안에 있던 소가 산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소가 유일한 재산이던 농부는 어쩔 수 없이 밥도 굶은 채 소를 찾아 산과 들을 헤맸다. 어렵사리 소를 찾아 겨우 외양간에 묶어놓고 법회장으로 달려갔다.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 그 사정과 허기짐을 알아보시고 요기할 음식을 먼저 내어주셨다.

밀양 표충사 명부전 소 벽화.

선승들 게송에도 자주 등장

초기 경전에는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코끼리가 자주 등장하는 반면 선불교가 일어난 중국불교에 와서는 소가 코끼리를 대신한다. 여기서 소는 앞서 ‘십우도’에서와 같이 마음을 의미한다.

당나라를 대표하는 선승 남양회양(南岳懷讓, 677~744) 선사는 앉아서 가부좌를 하는 게 수행인 줄 아는 후학에게 “여우가거 거약불행 타거즉시 타우즉시(如牛駕車 車若不行 打車卽是 打牛卽是)”라는 게송으로 들려줬다. “소가 수레를 끄는데 만약 수레가 가지 않는다면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소를 때려야 하는가?”하는 뜻이다. 지엽적인 일에 마음을 쓰지 말고 근본을 놓치지 말라는 이 가르침은 어리석은 사람은 몸을 다스리고, 현명한 사람은 마음을 다스린다는 일깨움으로 들리기도 한다.

사찰을 참배하다보면 법당 주련에 “단자무심어만물(但自無心於萬物) 하방만물상위요(何妨萬物常圍繞) 철우불파사자후(鐵牛不獅子吼) 흡사목인견화조(恰似木人見花鳥)”란 게송을 자주 볼 수 있다. 방거사(龐蘊, ? ~ 808)의 이 게송은 “온갖 만물에 무심하다면 만물에 둘러싼들 무엇이 방해 되랴. 쇠로 만든 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무로 된 사람이 꽃과 새를 봄과 같네.”라는 뜻이다. 수행자는 쇠로 만든 소처럼 세상의 어떠한 변화에도 결코 동요해선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소는 사찰 설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공주 갑사의 ‘공우탑(功牛塔)’이 대표적이다. 탑에 얽힌 이야기는 400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왜구의 노략질에 사찰이 잿더미가 되자 한 스님이 중창불사를 위해 탁발에 나섰다. 그런데 어디선가 절박한 소 울음소리를 들었다. 가보니 고삐가 나무에 휘감긴 소가 곧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서둘러 고삐를 잘라 소를 구해주고 길을 재촉했다. 7년 후 대웅전 건립불사를 시작했는데, 안타깝게도 시주금이 조금 모자랐다. 그런데 스님의 꿈에 7년 전 구해준 소가 나타나 은혜를 보답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문 앞에 나타난 소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서까래와 기와 등 불사자재를 싣고 와 중창불사를 도왔다. 심지어 백두산에서 목재를 싣고 왔고, 울릉도에서 헤엄쳐 목재를 가져왔다. 그리고 지쳐 쓰러져 불사가 완공되던 날 숨을 거뒀다. 공우탑은 그 공덕을 기린 탑이다.

근면·우직·충직해

소의 성격은 순박하고 근면하고 우직하고 충직하다. ‘소같이 일한다’, ‘소같이 벌어서’, ‘드문드문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말은 꾸준히 일하는 소의 근면성을 칭찬한 말로서 근면함을 들어 인간에게 성실함을 일깨워 주는 속담이다. 소는 비록 느리지만 인내력과 성실성이 돋보이는 근면한 동물이다. ‘소에게 한 말은 안 나도 아내에게 한 말은 난다.’는 소의 신중함을 들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말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우리 민족은 소를 한 가족처럼 여겼기에 그 배려 또한 각별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짚으로 짠 덕석을 입혀 주고, 봄이 오면 외양간을 먼저 깨끗이 치웠으며, 겨울이 올 때까지 보름마다 청소를 해 주었다. 이슬 묻은 풀은 먹이지 않고 늘 솔로 빗겨 신진대사를 도왔으며, 먼 길을 갈 때에는 짚으로 짠 소신을 신겨 발굽이 닳는 것을 방지했다.

우리 조상들은 소를 ‘생구(生口)’라고 할 만큼 소중히 여기면서 소를 인격체로 보았다. 황희 정승이 젊은 시절의 일이다. 길을 가다가 어떤 농부가 두 마리 소로 밭을 가는 것을 보고 “어느 소가 더 잘 가느냐?”고 물었더니 농부가 귀엣말로 대답했다. 그 이유는 “비록 짐승일지라도 사람의 마음과 다를 바가 없어 질투하지 않겠느냐?”는 유명한 이야기다. 

소가 창출해 내는 분위기는 유유자적의 여유ㆍ한가함ㆍ평화로움의 정서이다. 우직하고 순박하여 성급하지 않는 소의 천성은 은근과 끈기, 여유로움을 지닌 우리 민족의 기질과 잘 융화되어 선조들은 특히 소를 아끼고 사랑해 왔다.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부도(보물 제441호).

유교 義, 도교 유유자적 상징

소는 유교에서 의로움[義]을 상징한다. 주인의 생명을 구하고자 호랑이와 격투 끝에 죽은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의 ‘의우도(義牛圖)’, ‘의우총(義牛塚)’ 이야기나 눈먼 고아에게 꼬리를 잡혀 이끌고 다니면서 구걸을 시켜 살린 우답동 이야기에서 소의 우직하고 충직하고 의로운 성품이 잘 나타난다.

소를 타면 성질이 급하지 않아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아 좋다. 또 진창이라도 가리지 않고 잘 가고 무엇보다도 걸음이 느리기 때문에 길가의 풍경을 천천히 구경할 수 있다. 때로는 졸아도 떨어질 염려가 없어 좋다. 선조들은 소를 탄다는 것을 세사(世事)나 권력에 민감하게 굴거나 졸속하지 않는다는 정신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옛 그림 속에서 선비·목동·은자가 소를 타고 언덕을 돌아 나오는 모습은 주변을 흐르는 잔잔한 물결과 함께 어울려, 도가적인 은일의 세계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소의 성품이 창출해 내는 도가적 분위기를 통하여 이상적인 삶에 대한 정신세계의 한 단면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소를 타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모습은 바로 이러한 도교적 영향이다.

힌두 문화권에서는 소고기 식용을 금기시 한다. 소는 인도 고금(古今)의 주식(主食)이랄 수 있는 우유의 공급원이며, 건조시킨 분(糞)은 사막에서 유일한 땔감이기에 생존수단으로 불가결이다. 우리나라에서 재산의 단위를 ‘백석’·‘만석’ 하듯, 인도에서는 ‘일백우’·‘일만우’로 나타내는 것만 봐도 소의 귀중함을 가늠할 수 있다. 소는 힌두교에서 신성시하는 시바신이 타는 신성동물이기도 하다.

어진 눈, 엄숙한 뿔, 슬기롭고 부지런한 힘, 유순·성실·근면·인내 등 소의 덕성으로 신축년 소띠 해를 힘차게 출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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