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민·현각스님이
보여준 불교의 민낯
자성의 계기 삼자

먹방이 식상해졌는지 이젠 집공개다. 요즘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 말이다. 독신 연예인들이 자기 집을 공개하기 시작하더니 유명 방송인들도 합세했다. 입이 떡 벌어지는 초호화 저택도 보여주고, 자연 속에 아름답게 지은 힐링 하우스도 보여준다.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집을 공개하여 정리와 청소를 맡기면서 치유를 얻는 연예인도 등장한다.

‘누가 어떻게 해놓고 산다더라.’는 호기심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다. 극도의 미니멀리스트인 미국의 소로(1817~1862)는 지독할 정도로 검소한 자신의 오두막에 몰래 들어와 찬장과 침대를 살피면서 침대 시트의 청결함을 비평하는 방문객에 대해 불쾌감을 토로하고 있지 않는가. 소로는 불쾌한 듯 말했지만 오늘날 유명인들은 자기 집을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주는 것이 즐거운가보다. 거침없이 보여주고 집안에서의 자기 모습을 관찰카메라로 담아 스튜디오에서 그걸 또 감상하며 유쾌하게 웃고 즐긴다.

그런 분위기에 휩싸였을까? 혜민 스님도 자기 집을 공개했다. 스님의 집이라면 당연히 절일 텐데, 일반 가정집이라고 하니 대중의 호기심이 커지는 건 당연할 테다. 게다가 빵빵한 스펙에 베스트셀러 저자이며 명상앱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성공한 사업가이면서 현대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스님 아닌가.

그런데 시청자들의 반응은 뜻밖에 신랄한 비난과 혹평 일색이다. 스님도 세월 따라 살아야 하니 이해한다는 소수의 옹호의견도 있지만,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남산뷰’라느니, ‘무소유가 아닌 풀소유’라는 반응으로 짐작하자면, 대중이 보고 싶었던 스님의 집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대중은 스님의 집에서 무엇을 보고 싶었고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비난의 화살을 마구 쏘아댄 것일까? 남산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가난한 서민 동네 옥탑방에서도 남산뷰는 펼쳐지기 때문이다. 최신 전자기기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현대인들과 제대로 소통하려면 온전히 다 갖추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관련은 법대로 따져야 할 것이고…. 다만 현대인들이 소유하려고 애면글면하는 그 모든 것을 다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모든 재물에 초연한 듯한 스님의 말과 행동에 대중은 아연실색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정작 궁금한 것은, 대체 집주인인 혜민 스님은 자신의 집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는가 하는 점이다. 급기야 바다 멀리 외국에서 수행하시는, 말 그대로 ‘파란 눈의 납자’ 현각 스님이 원색적인 비난의 글을 SNS에 올렸다가 70분의 전화통화가 끝난 뒤 아우님 혜민 스님을 칭찬하는 글을 또 올렸다고 하는데, 이 일련의 과정을 생중계하는 언론은 그야말로 놓치기 아까운 싸움판을 구경하는 자들의 분위기였다.

싸우려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을 테니 자신의 비판글을 즉시 거두었을 것이나, 참 빨리도 비난하고 참 빨리도 거두고 참 빨리도 찬탄하는 모습에 대중은 또 어리둥절해졌다. 현대인들의 소유욕을 충실히 보여준 스님, SNS를 통해 쉽게 쏟아내고 쉽게 거둔 스님. 이런 일련의 모습들에서 잠시 멈춰선 우리에게는 무엇이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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