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子가 함께 만들어가는 행복한 노포(老鋪)

“인구가 팔만 정도인데도 인구 밀도가 매우 조밀한 이 작고 이상한 곳. 바닷가를 따라 마을이 긴 모양으로 늘어서 있어 언제 어디서고 조금만 방향을 틀면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 어느 맑은 날, 시내를 따라 걷다보면 저 멀리 울산바위가 어떤 거룩한 속삭임처럼 드러나는 곳. 바다와 이어지는 곳에 바다였던 옛 시간의 흔적이 무려 두 곳이나 호수로 남아 있는 곳. 걸어서 어디든 다다를 수 있고, 그곳으로부터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곳. 근래에 스타벅스와 맥도날드가 생긴 곳. 사람들의 말투는 다소 거칠지만 대체로 친절한 곳.”

이곳은 어디일까요?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라면 이내 아실 테지요. 그렇습니다. 속초. 근년 들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릴 때마다 청정 피난처로서 각광을 받고 있는 강원도의 작은 도시, 속초. 이곳 속초에 3대째 이어가고 있는 서점이 있습니다. 그것도 전국의 웬만한 거리면 으레 한두 개쯤 있게 마련이던 이른바 ‘동네서점’들이 속절없이 사라져가던 그 즈음에 이 서점은 획기적인 확장을 감행합니다. 이 책은, 이를 바라보던 모든 이들의 걱정을 딛고 리뉴얼 2년여 만에 여행자들의 순례코스로까지 발돋움했고 마침내 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속초 동아서점 이야기’입니다.

처음 아버지로부터 서점 일을 맡아보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이렇다 할 고민이나 절박한 다짐도 없이 속초에 왔다. 구 년 만이다. 그러니까 나는 구 년 동안, 살가웠던 부모님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서울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난생처음 홀로 지냈다. 서투르기만 했던 도시생활에 더는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을 무렵, 나는 뼛속까지 개인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기억하던, 머리칼에서 땀 냄새를 풍기며 매순간 싱글벙글 뛰어다니던 남자아이는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매사에 지쳐 있다는 듯 한 표정과 신경질적인 말투의 사내 한 명이 그들 곁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아들은 이렇게 ‘아버지의 서점’에 발을 들입니다. “속초에서 서점을 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내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면서도, 아들이 “미래가 유망한 스타트업도 아니고 기발한 아이템 개발도 아닌” 서점의 3대째 운영자가 되기로 한 데에는 “서점이라는 업종이 이젠 흔한 것도 아닌데, 꽤 오랜 시간 끈질기게 버텨온 아버지의 서점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한몫했다.”고 합니다. “책을 좋아해서 책과 관련된 일에 무턱대고 친밀감이 들기도 했던” 성정 또한 한몫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아들은 2014년 8월, 아버지의 제안에 따라 서점 일을 맡아 2015년 1월 30일 대대적인 리뉴얼 개점을 하고 2년여에 걸쳐 겪은 경험과 소회를 35개의 꼭지로 나누어 하나하나 기록해 나갑니다. 그 기록을 묶어 어엿한 책으로 펴냅니다.

그런데 이 책이 특별한 것은 65년 동안 3대를 이어왔다는, 그래서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내력을 담고 있다는 사실에 있지 않습니다.

아들아, 너와 함께한 이 년여의 시간이 내 삶에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해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단다.
재작년 2월경 서점 리뉴얼은 했지만, 책 분류나 정리가 한창이던 어느 날,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늦은 밤 한두 시경에 잠시 커피를 마시며 앉아 있었다. 주위는 전부 어둠에 묻혀 있고 오직 우리 서점 안만 환하게 밝았는데, 그 순간 절해의 고도에 떨어져 책의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단다. 이상하게도 고단한 심신에도 불구하고 편안함과 안도감이 들더구나. 그러곤 가끔 그와 비슷한 일들이 계속되었단다.

아버지는 담담하면서도 진솔하게 아들의 책에 ‘프롤로그’를 씁니다. ‘우리 앞으로도’란 제목을 달고 있는 아버지의 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지나간 세월에 어찌 회한이 없으랴마는,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이 나이에 이르러서야 너와 함께한 시간이 내게 이토록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네게 그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구나. ……
초등학교 입학 전에 네 놀이 공간은 주로 서점 안이었는데 다른 일을 하거나 손님을 맞다 보면 너 혼자 책을 보다가 어느새 서가 여기저기에서 책 정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곤 했단다. 나중에 그 자리에 가보면 책들이 나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정돈 되어 있어 적잖이 놀란 적도 있었단다. 요즈음 네가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고 진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부터 지속되어온 너의 관심과 능력이 이제 발휘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한단다.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고 배려하는 모습에서 손님들이 신선함을 느끼고 공감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들아, 그동안 여러 가지 부족했거나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들을 조금 늦은 이제부터라도 잘해보고 싶고, 무엇보다도 네게 도움이 되고 싶구나. 나는 사랑하는 내 아내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손주들, 또 곧 태어날 네 아이와 함께 살아갈 날을 기다리며 지방의 작은 서점에서 백 년 서점을 꿈꾸며 살아갈 것이다. 내 기력이 다할 때까지 네 옆에서 자리를 지킬 수 있게 해준다면 바랄 것이 없겠구나.
아들아, 네가 곁에 있다는 것이 나를 이렇게 즐겁고 기운차게 한단다. 우리 앞으로도 잘 견디자꾸나.

“아들아.”로 시작해 “아버지 김일수”로 끝나는 이 편지 형식의 글에 아들은 책의 말미에 ‘앞으로도 부디’란 제목의 ‘에필로그’를 붙입니다.

아버지. 서점을 새로 가꾼 후에 당신과 함께 일하며, 때로는 깨끗하고 반짝이는 서점 안에 서 있는 당신을 보며 어색해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럴 때마다 저는 당신과 우리 서점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간극이 있는 것만 같다고 느꼈습니다.
어느 날 당신이 주섬주섬 돋보기를 꺼내 쓰면서, 손님에게 회원가입 하시겠냐고 묻고 나서는, 오직 검지만을 사용해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을 때, 제가 느낀 저 간극은 더 벌어져만 갔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서점과 그 안에 짙게 고인 세월을 등에 짊어지고 제가 바라본 것이라곤 고작, 다가오는 세월 앞에 선 당신의 묵묵한 헌신에 대한 계면쩍음에 불과했습니다.

저자인 아들 역시 아버지를 닮았는지 매우 담담하면서도 진솔한 답장을 쓰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장에 아들이 참여하고 또 차차 대를 물려나가는 과정 속에서 어찌 속앓이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아들은 돌아온 직후부터 아버지를 달달 볶아댔다.”, “아버지가 손님을 앞에 둔 채 엉겁결에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으면 단호하게 호통 쳤다. 손 빼세요.”, “나의 잔소리는 끝이 보이질 않았고, 차가운 말들은 처마의 고드름처럼 뾰족하게 얼어붙었다가 여차하면 아버지 가슴속으로 사정없이 돌진했다.”던 아들입니다.

얼마 전 온라인에서 여행자들의 서점 방문기를 읽다가, 우연히 어떤 분이 쓴 후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머리가 새하얀 할아버지가 카운터를 보고 계셨다.
그는 어떤 의미로 저 문장을 썼을까요? 그저 낯설었다는 뜻인지, 그럼에도 정감 있었다는 뜻인지, 저 문장만으로는 도통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아버지가 새하얀 머리칼의 할아버지라는 사실을요. 머리가 새하얀 할아버지가 되도록, 당신은 저와 서점을 지켜주었고, 이젠 제가 당신과 서점을 지켜줄 차례라는 사실을요.
오직 서점에 관해서만 쓰고자 했는데,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당신에 대해 쓰고 있는 저 자신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기에 당신께 이 두서없는 편지를 남깁니다. ‘서점’이라는 세월 앞에 강을 건너고, 간극을 넘어서야 하는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라는 배를 타야만, 당신의 존재를 제 몸에 지녀야만 그 간극을 넘어 비로소 서점에 다다를 수 있음을, 이렇게 뒤늦게라도 깨닫게 되어 다행입니다.
곧 태어날 제 자식도 저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할까요?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 한편이 여간 뒤숭숭해지는 게 아닙니다.
아버지.
앞으로도 부디 오랫동안 서점에 계셔 주세요.
오래오래 제 곁에 있어 주세요.

언뜻 서먹한 듯하면서도 내심으론 든든하기 이를 데 없는 부자유친(父子有親)의 강물이 굽이굽이 사무칩니다. 아들이 썼으되 갈피마다 아버지가 함께하는 이 책, 그래서 이 책은 특별합니다.

책을 펼치면, ‘아버지의 서점’을 어떤 서점으로 가꿔나가고 싶은지, 한마디로 저자의 아름다운 서점관(書店觀)이 곳곳에 드러나 있습니다.

물론 당시 한국에도 예쁜 서점은 많이 존재했다. 하지만 나의 방향성과 맞닿는 서점, 그러니까 ‘종합서점’이라는 정체성으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고 있는 서점은 눈을 씻고 찾아보기 어려웠다. …… 기능과 아름다움은 왜 공존할 수 없을까? 정말 그럴 수밖에 없는 걸까? 나는 이 질문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서점원 저마다의 고유한 맥락 속에서 책을 자유롭게 편집하여 배열하는 게 서점의 묘미이자 경쟁력이라고 생각했다.
베스트셀러만 소개하고 잘 팔릴 것 같은 책들만 진열했다면 아마 묻혀버리고 말지도 모르는 책. 그렇게 묻혀버리고 말기엔 아까운 책. 그런 책들을 손님들에게 어떻게 소개해야 그들로부터 응답을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당신이 이 목소리를 듣고 책을 펼칠 수 있을까? 별것 아닌 진열 하나에도 새삼 절실함이 깃들고 때로 가슴 아파지는 까닭도 실은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한 데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다.
서점을 방문한 손님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한 가지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저 진열에도 매 순간 조촐한 망설임들이 책 아래에 꾹꾹 눌려 있다는 것이다.

이 서점은 1956년, 저자 김영건의 할아버지 김종록에 의해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책에 실린 흑백사진을 보면, 책과 잡지는 물론 각종 문구류와 운동용품 그리고 우표, 수입인지 등도 함께 취급한, 주민들에게 무척 요긴했을 서점이었지 싶습니다. 그리고 저자의 아버지가 청년시절부터 40년 동안 대를 이어오는 가운데 3대째에 이르러 편집 진열을 중요하게 여기는 ‘서점 편집자’로서 ‘서점발 베스트셀러’를 꿈꾸는 탁월한 운영자를 만나고 있습니다.

속초에 가면 이 행복한 서점에 꼭 들르고 싶습니다. ‘기능과 아름다움’이 조화로이 구현된 이 노포(老鋪)에서 그냥 “묻혀버리고 말기엔 아까운”, “조촐한 망설임들이” 깃들어 있는 책들을 가만히 감싸 안습니다.

윤효
시인. 본명은 창식(昶植). 1956년 논산에서 태어나 1984년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얼음새꽃〉·〈참말〉·〈배꼽〉 등 다수의 시집과 시선집 〈언어경제학서설〉이 있다. 제16회 편운문학상 우수상, 제7회 영랑시문학상 우수상, 제1회 풀꽃문학상, 제31회 동국문학상, 제13회 충남시협상을 받았다. 현재 〈작은詩앗·채송화〉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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