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피해 사찰로 간 소
진면목 찾는 ‘심우도’ 떠올려
자연보호·복원 노력해야

구례군 토지면의 축사를 탈출한 소 10여 마리는 홍수를 피해 산 위의 절을 찾아갔다. 10㎞가 넘는 길을 걸어 문척면 사성암에 이른 소들은 대웅전 앞에서 조용히 풀을 뜯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지난 8월 폭우 때 암자로 찾아간 소의 모습이다. 종종 사찰 벽화에 ‘사람의 진면목을 찾는다’는 〈십우도(十牛圖)〉가 그려져 있다. 이번에 암자로 찾아간 소는 벽화 그림도, 상상의 이야기도 아닌 현세 실제의 십우도를 연출했다. 코로나19, 여름의 장마와 폭우, 연거푸 온 가을태풍으로 자연과 사람의 마음은 갈갈이 찢어지고 흩어졌다. 지난 여름 폭우 속에서 암자로 찾아간 소들은 사람들에게 ‘자연의 본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연을 회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불교에서는 사람의 진면목을 소에 비유한다. 〈십우도(十牛圖)〉, 〈심우도(尋牛圖)〉는 선을 닦아 마음을 수련하는 순서를 표현한 것이다. 이는 소를 찾고 얻는 순서와 이를 얻은 뒤에 주의할 점과 회향할 것을 이르고 있다. 고려 때의 보조국사 지눌은 호(號)가 목우자(牧牛子)이다. 소를 기르는 이, 즉 참다운 마음을 장양(長養)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만해 한용운도 만년에 그의 자택을 심우장(尋牛莊)라고 하여 스스로의 진면목 찾기에 전념했다.

주인의 생명을 구하고자 호랑이와 격투 끝에 죽은 소의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중 의우도(義牛圖)·의우총(義牛塚) 이야기나 눈먼 고아에게 꼬리를 잡혀 이끌고 다니면서 구걸을 시켜 살린 우답동 이야기는 소의 우직하고 충직한 성품을 잘 나타내고 있다. 우리 민족은 소를 한 가족처럼 여겼기에 그 배려 또한 각별했다. 소를 생구(生口)라고 할 만큼 소중히 여겼다. 황희 정승이 젊은 시절에 길을 가다가 어떤 농부가 두 마리 소로 밭을 가는 것을 보고 “어느 소가 더 잘 가느냐?”고 물었더니 농부가 귀엣말로 대답하면서 “비록 짐승일지라도 사람의 마음과 다를 바가 없어 질투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유명한 이야기도 있다. 황희·김시습·맹사성 등은 소와 관련된 많은 일화를 남긴 현인들이다. 특히 조선 초기의 맹사성이 소를 타고 고향인 온양을 오르내린 이야기는 유명하다.

우직하고 순박하여 성급하지 않는 소의 천성은 은근과 끈기, 여유로움을 지닌 우리 민족의 기질과 잘 융화되어 선조들은 특히 소의 성품을 아끼고 사랑해 왔다. 소는 유교에서 의(義), 불교에서 본심(本心), 도교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의 상징이다. 어진 눈·엄숙한 뿔·슬기롭고 부지런한 힘·유순·성실·근면·인내 등 소의 덕성은 우리 민족과 너무나 닮았다. 소는 성실성이 돋보이는 근면한 동물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소가 말이 없어도 열두 가지 덕이 있다.”라고 했다. 평화스럽게 누워 있는 소의 모습, 어미 소가 어린 송아지에게 젖을 빨리는 광경은 한국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이다. 소가 창출해 내는 분위기는 유유자적의 여유ㆍ한가함ㆍ평화로움의 정서이다.

이번 가을과 추석에는 자연이 휩쓸고 간 풍수해로 여느 추석명절의 풍성함과 여유로움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암자로 간 소의 가르침은 ‘인간 본성을 회복하고 자연보호와 복원을 통해, 자연 재해와 환경 재난 등 기후변화의 위기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보천리(牛步千里) 길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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