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앵산 지역에는 이족(彛族)이 모여 산다. 해발 2,300m 고지대다 보니 구름이 마을 아래에 짙게 깔려 있다.

2,800년 茶王樹 비롯
천년 차나무 군락 이룬
천혜의 차나무 박물관

우리나라도 보이차(普洱茶) 열풍이 분지 이미 오래여서 적지 않은 마니아층이 형성돼 있다. 보이차는 공차(貢茶)의 한 종류인데, 전한(前漢, 기원전 202년 유방이 건국) 이전에 이미 야생차나무를 발견했던 토착 소수민족인 백복족(百濮族)이 찻잎을 가공했고, 이후 하니족(哈尼族)·라후족(拉祜族)·와족(佤族)에게 제다기술이 전해졌다고 한다. 현재 보이차 생산은 기업화되어 있는데, 이번 호는 이런 점을 고려해 독자들이 자주 접하기 힘든 수천 년 수령의 야생 고차수(古茶樹) 군락을 소개한다.

필자는 2005년부터 현재까지 16년간 중국 운남성(雲南省)의 고차수 차산을 누비고 다녔다. 좋은 차나무를 발견하면 현지에서 채엽부터 제조까지 모든 공정을 진행했는데, 그렇다보니 운남성이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해도 될 만큼 친근해졌다. ‘세계차밭기행’ 중 ‘운남 보이차’ 차밭 한 곳을 선정해 원고를 집필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민한 끝에 조금은 덜 알려진 고차수 군락지 백앵산(白鶯山)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 그루에서 일 년에 한 차례 봄차를 채엽하는데, 약 130㎏ 정도의 생잎을 얻을 수 있다.

운남의 주요 보이차 산지

과거 운남의 차산은 서쌍판납(西雙版納)을 가로지르는 난창강(瀾滄江, 메콩강 상류)을 경계로 동편에 해당하는 강 안쪽지역과 서편에 해당하는 강 바깥지역으로 나눠지곤 했다. 강 안쪽지역은 이무정산(易武正山)을 중심으로 한 혁등(革登)·의방(倚邦)·망지(莽枝)·만전(蛮砖)·만사(漫撒)·유락(攸乐, 현 基诺) 등으로 고6대 차산(古六大茶山)이라 불린다. 반면 강 바깥지역은 남나(南糯)·골죽양자(滑竹梁子)·맹송(勐宋)·파사(芭沙)·포랑(布朗)·파달(巴达) 등으로 신6대 차산(新六大茶山)으로 불린다.

강 안쪽지역은 명·청 시대 중앙의 행정력이 미치던 지역이기에 의방과 이무에는 한족이 거주하며 소수민족이 채엽·가공한 차를 모아 병차(餠茶, 틀에 눌러 만든 차)를 만들었다. 한족이 좋아했던 소엽종의 차나무가 대세를 이루는 이유다. 강 바깥지역에는 주로 애니족(爱呢族)이 거주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는 라후족·포랑족·태족(傣族)이 거주한다. 이 지역에는 대부분 대엽종 차나무가 서식하고 있는데, 중국 역사에 편입된 시기가 늦기 때문에 상세히 논하지는 않겠다.

운남 지역의 차산은 북회귀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난창강 안쪽과 바깥 지역은 북회귀선 남쪽에 해당하는데, 차나무 수령이 300~400년을 넘지 않는다. 반면 북회귀선 북쪽 지역은 수령이 1,000년 넘는 고차수 군락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난창강 북동쪽에 위치한 애뢰산(哀牢山)에는 수령 2,700년 야생차나무를 중심으로 천년 차나무 군락이 자리하고 있다. 전봇대처럼 시원하게 솟아오른 차나무 품종이 대부분이다. 난창강 북서쪽 지역을 중심으로 한 소만산(小湾山)에는 3,200년 수령의 차왕수(茶王樹), 대설산에 3,000년 수령의 차왕수, 이번에 소개하는 백앵산에 2,800년 수령의 차왕수 등 1,000여 그루의 천년 차나무들이 분포하고 있다.

하지만 북회귀선 북쪽 지역의 고차수 군락은 그동안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산림이 험준하고 도로가 없어서 외부와 단절된 환경요인이 가장 크고, 사람의 목을 베어 마을입구에 내거는 와족의 문화와 미얀마 국경의 반군 위협 등 문화·지리적 요인 더해져 2009년 이전까지 외지인이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9년 이후 외지인이 대거 유입된 지역은 대설산 동단의 노빙도(老氷島)다. 이를 계기로 고차수 보이차 가격이 해마다 폭등하고 있다. 필자는 2007~2008년 이곳에 상주하면서 고수차를 제조했는데, 당시만 해도 도로가 비포장 상태여서 위험해 외지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2009년 도로가 건설된 후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게 됐고, 이와 비례해 차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폭등했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아직까지 인적이 드문 임창 지역 북서단에 위치한 백앵산으로 생산지를 옮기게 됐다.

한 차례 채엽을 할 때 차나무 주인에게 지불하는 비용은 한화로 2,000만 원에서 1억 5,000만 원 사이다. 필자가 계약한 백앵산 고차수에서 채엽하는 모습이다.

해발 2,300m에 위치한 이족 마을

백앵산은 아직도 도로가 포장돼 있지 않다. 비가 오면 사륜구동의 지프(Jeep)로도 오르기가 힘들다. 필자 역시 세 차례나 실패한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백앵산은 그 정도로 외지와 철저히 분리된 곳이다. 필자는 오히려 이런 지리적 환경 덕분에 2009년 이후 11년간 백앵산에서 신나게 고차수 보이차를 제조할 수 있었다.

북회귀선 남쪽 강 안쪽과 바깥 지역의 고차수 중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는 남나산에 있는 800년 수령의 차나무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부분은 많아봐야 300~400년 수령의 차나무다. 크기는 우리나라의 사과나무나 작은 대추나무를 떠올리면 된다. 반면 백앵산에서는 감나무와 은행나무 정도 크기의 고차수는 어른 대접조차 받지 못한다. 대부분이 포플러나무나 다 자란 전나무 높이가 되기 때문이다. 큰 고차수 한 그루에서 한 차례 봄차를 채엽하면 130㎏ 정도의 생잎을 얻을 수 있으니, 나무가 얼마나 큰지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백앵산 지역의 주인은 이족(彛族)이다. 이들은 중국의 소수민족 중 고산이족의 후예로, 원래는 사천성 남부에 살다가 500년 전 전란을 피해 이주하기 시작해 난창강을 넘어 백앵산 주변으로 이동했다. 이 지역이 중국으로 편입되는 시기는 모택동(毛澤東, 1893~1976) 집권기다. 이전까지는 산속에서 태어나 세상 돌아가는 것과는 무관하게 살았다고 한다. 세상과 단절된 시기가 오래된 만큼 문명과는 동떨어져, 그들만의 전통이 잘 지켜지고 있다.

이족이 사는 마을은 해발 2,300m 고지대다. 2,000m가 넘는 고산이 없는 우리나라와 견주어보면 높다고 말할 수 있지만, 히말라야 산맥을 서쪽에 둔 운남성에서 해발 2,000m는 그다지 높다고 말할 수 없다. 운남성 북서쪽에서 가장 높은 매리설산(梅里雪山)은 무려 6,740m에 달하고, 주변에는 4,000~5,000m의 산이 줄지어 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기 마련이다. 이족이 사는 마을 주변에도 골이 깊은 계곡이 네 곳이나 있어서 일 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다. 주민들은 건기인 입하(立夏, 양력 5월 5~6일경) 이전에 밀과 보리농사를 짓고, 우기에는 감자·옥수수·콩·약용대마를 경작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밭이 45도 이상의 가파른 경사지여서 식량 사정은 넉넉지 않다. 현재 주민이 1,000여 가구까지 늘었는데, 마을 인근의 산비탈을 밭으로 일구다보니 멀리서 볼 때는 마을 주변이 벌거숭이산처럼 보이기도 한다.

2009년 경 이족 마을로 옮겨와 차를 만들 때의 일이다. 10여 일간 가지고 간 라면으로 삼시세끼를 먹었더니 토사곽란(吐瀉癨亂, 토하고 설사하고 배가 심하게 아픔)이 일어났다. 몸을 보신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 마을주민에게 “돈을 줄 테니, 닭을 잡아 달라.”고 말했다가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이곳에서 닭은 식용동물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닭이 없으면 주된 단백질 공급원인 달걀을 구할 수 없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벌레를 잡아줄 동물이 사라져 집안에 벌레가 들끓게 된다. 이 마을에서 벌레 퇴치는 무척 중요하다. 백앵산 인근 밀림에는 흡혈 자벌레가 서식하고 있다. 이 벌레는 나뭇잎 뒤에 붙어 있다가 사람이나 동물이 나무 아래에 머물 때 비처럼 떨어져서 흡혈을 한다. 이런 끔찍한 자벌레가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닭 때문이다. 닭은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부리로 쪼는 습성이 있는데, 흡혈 자벌레도 예외가 아니다.

필자가 채엽한 찻잎을 직접 손으로 덖고 있다.

차왕수 아래서 올린 한국식 다례

지금은 마을까지 도로가 뚫렸고, 주민들이 사는 집도 나무집과 흙집에서 콘크리트 주택으로 바뀌면서 흡혈 벌레와 진드기·벼룩 등은 거의 사라졌다. 그럼에도 만약을 대비해 한국 등 외지에서 방문단이 찾아올 때면 안전을 위해 낮에만 차산을 둘러보고, 밤에는 인근 도시로 이동해서 숙박을 하곤 한다.

한국에서 백앵산에 오려면 먼저 운남성의 성도인 곤명(昆明)까지 4시간 정도 비행기로 이동한 후, 비행기를 갈아타고 임창까지 50분 정도 이동해야 한다. 임창에 도착해서 자동차로 4시간 정도 꼬박 달리면 난창강변에 도착할 수 있는데, 이곳에서도 백앵산 고차수 군락까지는 1시간을 더 올라가야 한다. 긴 여정을 마치면 수령 2,800년이 되는 차왕수와 마주할 수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천태차문화연구보존회 이사장 경혜 스님(천태종 교무부장)과 회원 20여 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백앵산 고차수 군락지를 둘러본 방문단은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2,800년 수령의 야생 차왕수 앞에서 ‘한국식 다례’를 올리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차를 마시는 사람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 수령이 2,800년이나 된 차나무와 직접 마주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특히 그 차왕수 앞에서 정성을 다해 우려낸 차로 다례를 올린 사람은 과연 있기나 할까? 천태차문화연구보존회 회원들은 다례 현장에서 두 번 다시 느껴보지 못할 큰 감동을 맛보았으리라. 한국식 다례가 봉행되는 동안 이족 주민들은 신기한 듯 의례를 지켜보고 있었다.

백앵산 차나무는 품종이 무척 다양하다. 수령 2,800년의 고차수는 이알자(二嘎子)종인데, 수령 2,000년이 넘는 차나무는 대부분 이알자종과 흑조자(黑條子)종이다. 이외에 백앵산을 대표하는 본산(本山)종과 백아자(白牙子)종, 수령 500년이 넘는 맹고(猛库)종 등이 고루 분포한다. 이알자종과 흑조자종이 2,000년 이상의 수령으로 가장 높고, 본산종이 1,000~1,500년, 백아자종과 맹고종은 수령이 500년 정도 된다.

이족이 건너오기 전까지 백앵산 지역은 야생차나무 군락이었다. 이족이 거주하면서 불필요한 나무를 베어내다 보니 차나무만 남게 됐다. 1,000여 그루의 고차수 중에서 맹고종과 백아자종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차수는 야생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해발 2,000m가 넘는 고산 지역 차나무의 특징은 새싹에 흰털이 없고, 꽃봉오리처럼 함께 모여 있다가 활짝 핀다는 점이다. 품종에 따라 새싹이 아홉 장까지 한꺼번에 피기도 한다.

여러 겹의 새싹을 ‘아포(芽苞)’라고 부르는데, 새잎이 나기 전에 먼저 나오는 싹으로 안쪽의 연한 잎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새싹을 모아 만든 차를 ‘아포차’라고 부른다. 잎이 피면 붉은 새싹은 떨어지기 때문에 다른 차와 구분이 가능하다. 본산종의 경우에는 붉은 빛깔로 피어난 후 자라면서 녹색을 띤다. 그런데 덖으면 검은 빛을 띠다가 우려내면 다시 녹색으로 돌아가는 특징이 있다. 또 이알자와 흑조자는 처음에 녹색으로 피어나는데 덖으면 검은빛을 띤다. 이 차를 우려내면 다시 녹색으로 돌아간다. 이런 색의 변화만 알아도 고차수의 품종을 짐작할 수 있다.

천태차문화연구보존회 이사장 경혜 스님과 회원 20여 명은 지난해 5월 이곳을 방문해 차왕수 앞에서 다례를 올렸다.

고차수 서식에 알맞은 운남의 토양

2,200년 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운남 지역의 차는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와 함께 차나무 재배기술도 장강 유역으로 퍼져 여러 군락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1,000년 이상 되는 고차수는 운남 지역에만 서식할 뿐 그 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운남성의 토양에서 찾는다.

2억 6,000만 년 전 지구 표면은 유라시아판과 인도판이 부딪힌다. 이때 히말라야산맥이 형성되고, 티베트고원 쪽의 흙이 운남 지역으로 쏟아지면서 오늘날의 토양이 형성된다. 이 토양은 바다 속 퇴적층으로 미네랄이 풍부하고 부드러워 땅속 깊이 뿌리내리는 차나무의 특성에 알맞다. 이런 생육환경이 바로 운남 지역에서 천년 이상의 고차수가 서식할 수 있게 해주었다.

현재 운남 지역의 해발 1,100~1,300m 미만의 땅은 대부분 재배차밭이다. 대표적으로 보이시와 맹해현(勐海县)의 해발이 1,100m 안팎이다. 그런 이유로 이곳에는 수많은 차 농장[茶場]이 자리하고 있다. 또 해발 1,600~1,800m에는 재배형 고차수 군락이 촌락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명나라 군대가 침입했을 때 소수민족들이 밀림 속으로 이주해 인위적으로 차밭을 만들어 놓은데 기인한다. 야생 고차수는 해발 2,300m 이상 지역에 서식한다.

운남 지역에서는 연간 22만 톤 정도의 보이차가 생산되고 있다. 가격은 천차만별인데, 재배차는 1kg에 한화로 1,000원 정도에도 구입할 수 있다. 무농약으로 재배한 생태차는 6만 원 정도다. 고차수 중 가장 저렴한 차는 20만 원이 조금 넘고, 가장 비싼 차는 760만 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차왕수에서 채엽을 하기 위해서는 고차수 주인과 계약을 맺어야 한다. 중국은 토지소유권이 국가에 귀속돼 있지만, 토지사용권은 지방정부가 지역 주민에게 배분해 주고 있다. 백앵산 지역 역시 지방정부로부터 권한을 위탁받은 마을위원회에서 가구별로 토지를 배정하는데, 해당 차나무가 속한 토지사용권을 받은 사람이 차나무의 주인이 된다.

수령 천 년이 넘는 고차수 한 그루에서 단 한 차례 채엽을 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은 현재 2,000만 원에서 1억 5,000만 원 정도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1년 계약을 한 후 봄·여름·가을 등 연중에 여러 차례 채엽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계약비용이 높다보니 조금이라도 더 많이 채엽을 하려고 욕심을 부리게 됐고, 결국 차나무의 생육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노반장(老班章)을 비롯한 몇몇 지역의 차왕수가 봄에 잎을 피우지 못하고 고사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필자는 10년 전 이런 상황을 목도한 후 차나무 주인과 상의해 봄차 이외에는 찻잎을 따지 않고 있다. 차나무가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차를 즐기는 차인들도 오랫동안 차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해발 2,000m 미만에 서식하는 고차수는 야생차와 재배차를 구분하기가 무척 어렵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품종도, 잎의 특징도 구분해내기 힘들다. 1,000년 이상 수령의 야생 고차수가 수령 300~400년의 재배형 고차수보다 수백 배 비싸다보니 포장을 바꿔서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도 자주 발생하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백앵산의 수령 2,000년 이상 되는 고차수(본산종과 흑조자종)는 새싹에 흰털이 없는 특징이 있다 보니, 한 번이라도 실물을 직접 본 사람은 재배 고차수와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백앵산 고차수 보이차의 이런 특징과 장점은 운남 지역의 야생 고차수 중심지를 기존의 서쌍판납 노반장과 맹고 노빙도에서 조만간 백앵산 고차수 군락으로 옮겨놓게 될 것이다. 2,800년 차왕수를 중심으로 형성된 천혜의 차나무 박물관, 백앵산의 고차수 보이차가 이름을 떨칠 날을 기대한다.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채엽한 차의 무게를 재는 모습 △필자와 함께 일하는 현지인이 차를 덖는 모습 △차를 말리는 과정 △말린 차에서 이물질 제거 순이다.

정경원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한 후 학사장교로 복무했다. 대한불교조계종과 남북체육교류협회에 근무하다 중국 운남으로 건너가 ‘좋은 보이차’를 설립했다. 이후 노빙도·맹송산·경매산·백앵산 등을 누비며 고차수 보이차를 제조하고 있다. 2018년 서울 인사동에서 고차수 보이차 개인전을 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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