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구미 금룡사 도량청소를 하고 있다.

오늘은 4월 26일, 석가모니 부처님 탄신일을 맞이하기 위하여 거리에 연등을 설치하고 금룡사 도량 곳곳에 대청소를 하는 날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작업은 ‘거리 연등 달기’에 동참하는 거였다. 매년 부처님오신날 한 달 전쯤에 거리와 사찰 주변에서 무심코 보아 왔던 연등이 어떻게 설치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작년 시월 중순에 실시한 ‘행복한 불교 문화 강좌’에 참여하면서 금룡사에 첫 발을 내디뎠다. 어찌 보면 새내기이다.

평상시 잘 바르지도 않는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고 스포티한 옷차림으로 단장했다. 그리고 챙이 넓은 모자와 선글라스까지 완벽하게 준비하고 출발했지만 늦었다. 어디에서나 인기 있는 일은 느린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금룡사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늦은 이유야 다 있겠지만 일과 관련해서는 냉정하다. 생각 외로 많이 참석하셨다. 나를 제외한 불자님들은 익숙한 듯 각자 알아서 일감을 찾았다. 역시 구관이 명관이었다.

팔 토시를 하고 호미 하나와 풀을 담을 대야 하나씩을 들고 법당 앞마당으로 향했다. 풀은 뽑고 풀꽃은 뽑혔다. ‘꽃 입장에서는 잡초를 친구 삼아 동고동락하면서 지내고 싶지 않을까!’ 하고 잠시 생각에 잠겨 보았다. 마스크를 끼고 호미 소리의 장단에 맞추어 풀 반 수다 반을 대야에 한가득 담았다.

새침한 바람이 보살님들의 호미 소리에 놀랐는지 점점 사그라들 즈음 점심 공양 시간을 알려왔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의 언어 유희를 기억하신다면 연령대가 대충 감이 온다. 셀프로 배식을 하고 앉았다. 불자님 모두 상추에 밥과 쌈장을 넣고 질세라 앞다투어 맛나게 드셨다. 상추! 역시 국민 채소였다. 융숭한 공양을 대접 받고 바깥 신발장을 정리하며 묵은 먼지를 닦아냈다. 나 역시 마음의 먼지나 찌꺼기를 털고 비우기 위해서 여기에 이르렀다. 부처님 전이 아니면 가능한 일이겠는가. 사물을 필터해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이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라며 한 템포 쉬어가는 여유가 생겼다. 부처님을 알기 전, 분별심이 열이었다면 지금은 아홉으로 줄면서 나 자신의 긍정적인 변화가 가족의 행복으로 연결됨을 느낀다. 이 에너지가 곧 사회로 선순환 되면서 보살도의 실천으로 이어지는 자리이타적인 삶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지만, 힘든 상황을 마주했을 때에는 분별심이 냉큼 일어나 마음의 빗장을 걸었다가 열었다가 한다.

신발장 정리가 나름 힘들었을까! 간식 소리가 반가웠다. 아이스크림 콘을 먹어본 지가 가물가물하다. 수박과 참외 그리고 차담으로 노고를 달랬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라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웅성웅성거렸다. 든든하게 먹고 다시 하던 일을 계속하러 갔다.

신발장을 닦기 전, 밭일을 할 때 신었던 신발을 먼저 큰 대야에 담가 놓았다. 묵은 흙이 쉽게 씻겨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대야와 신발을 씻어 엎어 놓은 것을 보시고 보살님들로부터 야무지게 일한다고 칭찬을 들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책으로는 접해보지 못했지만 제목만이 떠올랐다. 갑자기 ‘왜 많은 동물 중에서 하필 고래인지’가 궁금해졌다. 조만간 읽어 볼 참이다. 그리고 할아버지 생전에 이름보다 “야무지기 똑똑이~”라는 말을 더 많이 들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오늘도 고문님은 열일 하신다. 강풍에 쓰러진 박스를 다시 쌓고 계셨다. 마치 〈노인과 바다〉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코로나19로 오랜만에 보는 보살님과 처사님, 오늘 대청소는 진정 ‘체험 화합의 현장’이었다. 마지막으로 오늘 작업에 사용되었던 빨간 면장갑을 버릴 건 버리고 선별해서 나머지는 세탁기로 직행했다. 깔끔하게 세탁이 된 맑아진 장갑을 보며 내 마음도 덩달아 맑혀진 기분이 들었다.

바람대로 연등 달기는 놓쳤지만 이 일도 보람이 있었다. 이 장갑은 또 흙이 묻겠지만 또 세척을 거듭하면서 뻣뻣했던 장갑이 어느덧 부드러워지고 내 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그 날이 올 것이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이런 유사한 경험을 토대로 사고의 유연성을 기르게 된다. 삶도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이러쿵저러쿵 대청소는 해피엔딩이었다.

다시 조용해진 경내. 참선 요가 시간은 오후 여덟 시, 시간이 허락되어 쑥을 캐기로 했다. 도랑 치고 가재는 못 잡았지만 청소하고 쑥을 득템한 셈이다. 어느 종파를 막론하고 부처님은 같으니 가까운 곳에 다녔으면 한다고 말했던 남편은 쑥국을 좋아한다. 천상병 시인의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시구가 떠오르게 했던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으니 일곱 시쯤 됐을라나. 어둑어둑해질 무렵 물(쑥)아일체(物我一體)가 되어 쑥을 캐는지 어둠을 캐는지….

참선 요가 시간이다.

우리 사찰에는 매주 토·일·월요일 정경 스님의 참선 요가 프로그램이 있다. 한 시간 남짓 되는 시간이다. 때론 장혜봉 주지 스님께서 사찰에 머무르실 때에는 동참하시며 지도도 해 주신다. 굳어 있던 근육을 이완하면서 몸의 균형을 잡아주고, 하고 나면 몸이 가볍다는 느낌이 든다. 몸무게를 2kg 정도 감량했고 집에서 절까지 걸어가면 15분 정도 소요된다.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숨이 덜 가빠짐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열 번 정도 한 것 같다. 뒤틀기 동작을 할 때는 손이 발에 닿지 않아 양말을 반쯤 벗다시피 해서 쉽게 잡을 수 있게 요령을 피웠다. 아직 힘든 동작이 많지만 ‘강약중강약’ 리듬이 있어서 계속하게 된다. 민망한 동작도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각자 근기에 맞추어 열심히 한다. 동작을 따라 하다 보면 정경 스님의 목소리만 들리는 게 아니다. 다양한 무의식의 소리로 신음 소리와 자체 음향 효과가 있다. 물론 나도 그 효과 음에 일조를 했다는... 한바탕 웃으며 재미나다. 상상해 보세요!

끝으로 금룡사 주지 스님의 육바라밀 행공으로 몸과 마음을 정돈한다.

요가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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