共業으로 善因 쌓으면
산업재해 1위 현실도
언젠가 바뀌리라 기대

새해다. 2020년을 맞으며 독자와 함께 나눌 덕담으로 붓다의 가르침을 찾았다.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 더러는 선인선과 악인악과를 뜬구름 잡는 말로 여긴다. 오히려 ‘착한 사람만 손해 본다’는 경험칙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기도 한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업의 결과가 곧바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씨앗 심고 나서 다음날 싹이 트길 바란다면 욕심 이전에 망상 아닌가.

털어놓거니와 나도 악인악과의 가르침을 의심했다. 현실이 너무 가팔랐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나는 삼성의 ‘무노조경영’이 지닌 문제점을 칼럼과 책, 토론과 강연에서 제기해왔다. 그런데 삼성의 문제점을 비판할 때마다 곧장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더러는 삼성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들어 ‘현실을 모르는 소리’로 치부했다. 하지만 삼성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일은 보수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을 인정하느냐 여부의 문제다. 더구나 삼성을 진정한 ‘한국의 브랜드’로 만들려면 기업 조직을 ‘국제 표준(ISO26000)’에 맞춰야 한다. 삼성 자신을 위해서도 비판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

사법부가 마침내 2019년 12월에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법의 냉엄한 심판을 내렸다. 노조와해 공작에 가담한 삼성 전·현직 고위 임원들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일어난 조직적인 노조 와해 행위에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지 6년 만이다.

법적 심판이 나오기까지 두 사람의 죽음이 있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노조를 설립한 에어컨 수리기사들의 일감을 빼돌리면서 2013년 서른두 살 최종범은 “배고파서 못살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이듬해엔 분회장을 맡고 있던 서른네 살 염호석이 목숨을 끊었다. 고인은 유서에서 “저의 희생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이 더 좋아진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면 이 선택이 맞다 생각한다.”고 밝혔다. 노조원 자살에 자극받아 노조를 중심으로 단결할까봐 삼성은 유족에게 거액의 돈을 주며 서둘러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르라고 종용했다. 당시 경찰은 고 염호석의 빈소가 차려진 장례식장에 몰려가 시신을 빼돌리기도 했다.

결국 6년이 더 지나 법의 심판을 받았다. 노동조합은 물론 시민운동단체들이 곰비임비 힘을 모아간 결과다. 바로 공업(共業)이다. 공동으로 선악의 업을 짓고, 공동으로 고락의 인과응보를 받는 것이 공업이다. 헌법에 명시된 노동 3권을 살천스레 유린해온 삼성이 법적 심판을 계기로 더 좋은 기업을 만들자는 뜻을 모은다면 그것은 선인선과의 길이 될 터이다.

불문에선 업을 짓고 결과가 나타나는 과정을 삼시업(三時業), 곧 세 가지로 설명했다. 업을 지어 현생에 그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法受業), 다음 생에 과보를 받는 순생업(順次生受業), 다음 그 다음 생에 과보를 받는 순후업(順後次受業)이 그것이다.

삼시업의 가르침을 새삼 떠올리며 부끄러웠다. 고작 20여 년 무노조경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는 그것이 바뀌지 않는다고 한탄했던 자신이 다음 그 다음 생을 내다보며 ‘순후업의 선인선과’ 길을 걸어간 선구적 불교인들 앞에 더없이 작아졌다. 날마다 5~6명이 일터에서 죽는 산업재해 1위의 대한민국 현실도 언젠가는 바뀌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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