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병폐 해결은
사회구성원들의
근본적 반성에서 출발

‘일가족 자살…….’ 듣기만 해도 참혹하고 가여워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말이다. 그 일이 사고도 아니고 자살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사건이 올 한해에만 17건이나 일어났다는 점 또한 충격적이다. 오죽하면 온 가족이 자살이라는 형태로 목숨을 끊는가? 그렇게 온 가족이 목숨을 끊을 때까지 주변 사람들은 무엇을 했는가? 또 복지 기관을 비롯한 관련 부서에선 또 무엇을 했는가? 이렇게 물음을 던지고 나면 더더욱 참혹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일가족이 목숨을 끊었는데 아무도 모르고 있다가, 냄새 등으로 뒤늦게 발견하는 경우까지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가진 가장 부끄러운 문제점을 보는 것 같아 정말 마음이 무겁다.

왜 이렇게 됐을까? 우리 사회 전체가 빈곤하고 어려운 사회라서, 모두 그런 가운데 그 심한 경우가 드러나서 그런 참혹한 일이 일어난 것이라면 오히려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그 속에서 소외되고 돌보아지지 않아 극단적인 처지에 몰린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경쟁이 극으로 달한 사회구조 속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급급하게 되면 남 생각을 할 수가 없게 되고, 그것이 바로 이웃도 모르는 각박한 세상을 만들어 놓는다. 그러니 일가족 자살이란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요, 한 개인을 넘어서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이며, 결국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문제점이 단적인 형태로 드러난 것이다. 그 문제점을 완화하는 노력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근본적인 반성을 하지 않으면, 완전히 병들어 파탄에 이른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엄중한 경고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근본 가치들 가운데 자유와 평등은 가장 중요한 것이며, 그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나뉜다. 그 중 자본주의는 자유를 기본원리로 하기에 무한한 경쟁을 용인하는 체제다. 그러다보면 그 병폐가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정부는 복지정책 등을 통해 양극화가 초래하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정책적 노력을 기울인다. 또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박애 등의 가치를 강조하여 소외된 이웃에 온정을 베푸는 도덕성을 발휘하게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일가족 자살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는 것은 이러한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것에 대한 경고가 이 참혹한 일가족 자살이라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맹자는 〈시경〉의 “부유한 사람은 괜찮지만, 외롭고 소외된 이들은 애달프다.”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올바른 정치의 출발은 외롭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데서 출발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참혹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은 왜인가?

이제 참으로 숨을 고를 때이다. 개인적으로는 따듯한 온정이 살아있는 사람다운 삶을, 정책적으로는 한 사람의 아픔의 현장을 찾아가는 적극적 복지가 자리잡아야 한다. 따뜻한 마음이 살아있는 살맛나는 세상에 대한 염원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피어나고, 그것이 아픔과 소외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는 적극적 복지정책으로 구현돼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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