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 동경해 發心 유발하고자

관세음보살님은 그 어떤 불보살님 보다도 화려하다. 〈관무량수경〉을 살펴보면 관세음보살님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갖 보석으로 치장을 하고 있다. 사진은 공산사 소장 수월관음도.

참 화려합니다. 어찌나 화려한지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누가요?

관세음보살, 바로 그 분 말입니다.

물론 모든 관세음보살상과 그림이 다 화려하지는 않습니다. 단아하고 소박한 모습도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경전에서 그리고 있는 그 분의 모습이나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를 보면, 세상의 감탄사를 전부 쏟아내도 모자랍니다. 

먼저, 관세음보살의 몸을 그리고 있는 〈관무량수경〉을 보기로 하지요. 

무엇보다도 관세음보살은 무척 키가 큽니다. 자그마치 80만억 나유타 유순이나 된다고 합니다. ‘나유타’, ‘유순’에 대한 설명은 접어두더라도 그 키가 80만억이라고 하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의 피부는 자금색입니다. 샛노란 금색이라기보다는 붉은 빛을 띠고 있는 금색입니다. 인도에서 금색은 ‘좋은 빛깔’이란 뜻입니다. 그러니 아주 보기 좋은 피부 빛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머리 위로는 나팔 모양의 빛을 내뿜어서 아주 먼 곳까지 비추고 있고, 몸 전체를 휘감는 은은한 빛도 있습니다. 머리에는 마니보배구슬로 꾸민 하늘의 관을 썼고, 얼굴은 자금색이고, 미간의 백호는 칠보의 빛깔을 지니고 있으며, 거기에서 헤아릴 수 없는 빛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몸은 헤아릴 수 없는 보석으로 꾸미고 있으며, 그 보석알 하나하나마다 온갖 아름다운 일들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손바닥은 연꽃 빛깔이고, 열손가락 끝마다 팔만사천가지 무늬가 있고, 여기에 팔만사천 개의 빛이 부드럽게 모든 것을 비추는데, 이 보배 손으로 중생을 맞아들이고 교화합니다. 중생의 손을 잡아주려고 내미는 관세음보살의 손은 이렇습니다. 화려함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관세음보살이 발을 들어서 조용히 대지를 딛을 때에는 금강석의 보석꽃이 흩어져 사방을 가득 채웁니다. 

그렇게 화려한몸을 감싸고 있는 옷은 또 어떨까요? 

미국 하버드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수월관음도’를 세밀하게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는 강소연 박사에 따르면, 몸 전체를 덮어 흐르는 비단 숄 사라(紗羅)는 관세음보살의 옷이 얼마나 화려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합니다. 그의 저서 〈명화에서 길을 찾다〉의 한 대목입니다.

“극세사로 만들어진 투명 베일은, 천의 바탕이 눈송이 또는 물의 입자처럼 육각형의 다이아몬드 문양을 이루며 짜여 있습니다. 화려한 바탕 문양 위로 넝쿨이 뻗어나가는 듯한 둥근 단위의 영기문(靈氣紋)이 금니(金泥)로 섬세하게 시문되었습니다. …… 세밀한 철선묘로 그려진 다채롭고도 정교한 문양들이 가득 수놓인 얇은 옷이 몇 겹씩 겹쳐져 지극히 복잡한 구성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라는 지극히 섬려하면서도 눈부신 효과를 냅니다.”

‘섬려하다’라는 말에서, ‘섬려(纖麗)’는 섬세하고도 화려하다는 뜻이지요. 강소연 박사의 설명에 따라 ‘수월관음도’를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과연, 그 섬세하고 화려함에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그저 “우와”하고 감탄만 저절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도 일어납니다.

‘대체 관세음보살은 왜 이리 화려할까? 지혜와 자비를 상징하고 있는 분이 이렇게 화려해도 괜찮은 걸까? 외모에 집착하지 말라고 불교는 말하고 있는데, 이토록 값비싸고 화려한 장신구로 온몸을 휘감고 있는 이유는 뭘까?’ 

관세음보살님이 화려한 이유는 중생들에게 욕망과 질투와 허영의 아름다움이 아닌,선업과 수행과 반야의 지혜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보여주고 위함이 아닐까 싶다. 천은사 극락보전 아미타불탱 관세음보살도..

그 이유를 알고 계신가요? 정답은 없습니다. 그저 추리해보고 추측해볼 뿐이지요. 

사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 계시던 당시, 수행자는 모름지기 검소함을 미덕으로 삼았습니다. ‘미덕’이라고까지 할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이번 삶의 목적을 깨달음에 두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감탄할 만한 근사한 몸과 화려한 차림새는 수행자에게는 가당치 않았습니다.

수행자에게 옷은 바깥 환경으로부터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몸의 숨기고 싶은 곳을 가리기 위해 입는 필수품일 뿐입니다. 여러 벌의 옷도 가질 수 없었으니 딱 세 벌만 허락됐습니다. 그 이유는 〈사분율〉에 이렇게 나옵니다.

“내가 초저녁 한데에 앉을 때는 옷 하나를 입었고, 밤중이 되어 추위를 느껴 두 번째 옷을 입었고, 새벽이 되어 더욱 추위를 느껴 세 번째 옷을 입었다. 그러므로 오는 세상에 사람들이 추위를 견디지 못할 때 세 벌의 옷만을 가지면 족할 것이다. 나는 이제 비구들에게 세 가지 옷만을 가지도록 규칙을 정하겠다.”

부처님의 출가제자들은 이런 계기로 세 벌의 옷을 지닐 수 있게 됐지만, 그 옷조차도 허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분소의’라고 하지요. 똥 분(糞), 소제할 소(掃), 옷 의(衣)입니다. 똥처럼 가장 더러운 것을 치울 때 입는 옷이란 뜻입니다. 심지어 시신을 둘둘 감싼 천을 주워 승복을 해 입기도 했습니다. 아주 고급스런 옷감을 신자들에게 받아도 일부러 오려서 기워 입었고, 검지도 희지도 않은 빛깔로 염색을 해서 입었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의 옷은 세상에서 가장 낡고 값싸서 아무도 탐내지 않습니다. 

절에 가서 나한전을 들여다보면 더합니다. 아라한들은 성자 중에 성자인데 그분들의 차림새는 지나칠 정도로 소박합니다. 낡아빠진 옷인데 그마저도 곱게 여며 입지 않았습니다. 옷을 잘 입어야 대접받는 세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라한들의 차림새는 그야말로 자유롭고 거칠 것이 없습니다.

옷에 대해 검소함을 강조하니 외모에 대해서는 두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좋은 생각을 자꾸 해서 남들에게 편안하고 신뢰를 주는 인상을 가지면 됩니다. 이렇게 보면 화려한 옷이나 장신구는 불교와는 영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관세음보살은 어쩌자고 이리도 화려한 것인가요? 화려해도 여간 화려하지 않으니 이것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관세음보살만 이렇게 화려하지 않습니다.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부지런히 인도해 머물게 한다는 극락정토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리는 눈부신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고, 연못 바닥도 보석이요, 연못가에는 금모래 은모래가 깔렸고, 가로수도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극락정토의 묘사가 지나치게 화려하다보니 오히려 사람들은 “세상에, 그런 데가 어디 있어?”라며 외면합니다. 아예 이 불국토를 묘사한 부분을 읽지 않고 건너뛰기도 합니다. 하지만 경전이 허투루 이런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분명 어떤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생각해보면,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닙니다. 돈을 벌어서 더 좋은 집을 사고, 더 맛난 음식을 사먹고, 더 좋은 곳에 놀러 다니고, 더 좋은 옷을 사 입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우리 중생들이 그토록 바라는 것들을 다 지녔고 누린 분입니다. 세속의 욕망이 완벽하게 충족된 상태입니다. 그걸 값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값비싼 보석 장신구와 화려한 차림새, 그리고 풍만한 몸매로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세음보살을 믿고 따르면, 관세음보살이 실천한 덕목을 따라서 실천하면, 관세음보살이 이룬 지혜를 열심히 수행해서 자신도 지혜를 성취하면, 우리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세속의 모든 것들도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가난해지는 게 싫고 남루하고 누추해 보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 중생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밤잠을 자지 않고 뛰어다녀도 부자 되기 힘든데 수행하라니요. 수행하면 가난해질 게 빤한데요?”

그런데 관세음보살은 걱정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선업을 짓고 수행하면 가난해지지 않고 오히려 자신처럼 이렇게 눈부시게 화려하고 우아해질 수 있으니 안심하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당신도 그리 되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키라는 것이지요.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 이것이 바로 발심(發心) 아니겠습니까?

중생의 마음을 잘 헤아리면서도 진리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관세음보살의 마음이 이렇게 화려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지요. 욕망과 질투와 허영의 아름다움이 아닌, 선업과 수행과 반야의 지혜로 우리는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아름답고 화려함에 맘껏 도취되고 동경해도 좋습니다. 동경할수록 좋습니다. 발심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관세음보살은 그토록 화려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미령

동국대학교에서 불교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경전번역가이자 불교대학 전임강사, 북 칼럼니스트이다. 현재 BBS불교방송 ‘멋진 오후 이미령입니다’를 진행 중이다. 저서로 <붓다 한 말씀>·<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이미령의 명작산책> 등이 있다. 또 <직지>·<대당서역기> 등 많은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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