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 기울일 때
불교연구에 큰 보탬

필자가 컴퓨터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 3학년 정도였다. 당시 대학에서는 이미 컴퓨터가 사용되고 있었지만, 철학과 학생이었던 나는 어쩐지 기계문명에 친숙하지 않았다. 처음 접한 컴퓨터는 당시 맥켄토시라고 불렸던 미국 Apple사의 것이었다. 이 맥켄토시는 도형을 그리거나 설계를 하는 데는 유용했지만, 워드를 치는 데 불편하고 서비스도 많지 않았다. 석사논문을 이 컴퓨터를 사용해 제출했는데도 컴퓨터에 영 익숙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는 이미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면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오고 있었다. 그래서 ‘기계문명을 한사코 거부하던’ 나도 컴퓨터를 배우려 백방으로 노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컴퓨터가 영 몸에 익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 〈나는 컴퓨터를 하나도 모르는데요〉 라는 완전히 초보자를 위한 책을 구매해 책상에 앉았다. 컴퓨터의 기본원리부터 인터넷까지 대강 공부하는데 1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컴퓨터를 모를 때는 뭘 잘못 누르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지만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후 박사과정을 마치고 일본유학을 갔다. 일본에서도 컴퓨터를 사서 한 사흘간 집에 틀어박혀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컴퓨터를 열심히 공부했지만, 학위논문을 쓸 때마다 컴퓨터 때문에 고생해야 했다. 예컨대 삼(三)이라는 한자를 아라비아숫자 3으로 전부 고치면 ‘참구(參究)하다’할 때의 참(參)자도 전부 3으로 바뀌어 버렸다. 참(參)은 삼(三)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고생을 거쳐서 지금은 웬만한 애플리케이션은 마음대로 깔고 지울 수 있고 운용할 수도 있다. 컴퓨터는 어쨌든 두들겨 보아야 실력이 느는 법이다. 요즘은 인터넷문화도 대단히 발달해 불교연구에 있어 인터넷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얼마전 아는 지인에게 1894년의 일본 ‘요미우리신문’의 기사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분은 〈애국가의 작사자 연구〉라는 책을 쓰고 있었다. 그는 애국가의 ‘동해물과 백두산이’라는 문구가 1890년대에 이미 존재했는데, 그 기사가‘요미우리신문’에 나왔다는 것이었다. 부탁을 받고 조사를 해 보니, 일본에 ‘요미다스-역사관’홈페이지에서 ‘요미우리신문’의 창간호부터 전부 볼 수 있었다. 1894년의 일본 ‘요미우리신문’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와 같이 첨단 인터넷문화를 잘 활용하면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필자도 불교연구나 강의에 있어서 인터넷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일본에서 입수한 〈화엄경〉 필사본을 연구한 적이 있는데, 그 필사본을 쓴 사람은 안숙광성(安宿廣成)이라는 백제인의 후손이었다. 안숙광성은 9세기 일본 나라(奈良)시대에 현재의 오오사카(大阪) 근처에 살았던 사경생(寫經生)으로써, 전쟁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흥미를 느낀 필자는 일본의 인터넷을 뒤지다 동경대학에서 제공하는‘나라시대 고문서 풀텍스트 데이터베이스’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 곳은 9세기 일본의 사경소(寫經所)에서 작성한 방대한 문서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 속에 안숙광성에 관한 정보가 들어 있었다. 불교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과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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