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팔을 걷어 붙이고
살기 좋은 세상 만들 때
미륵부처님 이 땅에 오셔

홍콩 정부의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에 반대하며 최대 200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몰려나와 시위를 벌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이 일단 보류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했지만, 보류가 아닌 철폐를 외치는 시민들이 여전히 더 큰 시위를 예고하고 있어 앞으로 중국 본토의 대응이 어떻게 나올지가 관심사다. 인구 700만 명의 홍콩에서 200만 명의 시민이 모였다는 것은 홍콩인들의 불만과 바람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자들의 모습을 보자면 미륵부처님이 떠오른다. 중국이나 우리 역사에서도 혁명을 꿈꾸던 자들이 미륵부처님을 내세웠기 때문일까.

‘자애’라는 뜻의 마이뜨레야(팔리어로는 멧떼야)라는 이름을 음사한 미륵님은 웅장하고 아늑한 전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논밭 한 가운데, 저 깊은 산골짝 모퉁이에 비바람을 맞고 서 계시지만 민중들의 바람을 허투루 듣지 않고, 마음 속 소망 딱 한 가지씩은 들어주시며, 심지어 좋은 날이 올 때 벌떡 일어서시려고 지금껏 허리 아프게 벌판에 누워계시는 분이 미륵부처님이다.

그래서 미륵은 깨달음을 위한 수행을 중시하는 불교 내에서는 사실 그 위치가 좀 모호하다. 신심의 차원에서 미륵에 다가가려니 너무 세속적이고, 역사적 차원에서 미륵을 살펴보자니 혁명 실패 뒤에 오는 피비린내가 너무 비릿하다.

그래도 세상이 어지러우면 사람들은 물었다.

“대체 미륵님은 언제나 오시려는가!”

역사 속에서 미륵은 몇 번 오신 듯 하지만 사실 아직 멀었다. 경전 속에서는 56억 7천만년이나 기다려야 한다지 않던가. 이 숫자는 현재 미륵보살이 살고 있는 저 천상, 도솔천의 평균수명이다.

미륵불에 관해서는 미륵삼부경이라 하여, 〈미륵상생경〉·〈미륵하생경〉·〈미륵성불경〉을 들고 있는데, 이들 경전의 내용은 초기경전인 〈디가 니까야〉에 26번째 경인 〈전륜왕사자후경〉에 근거하고 있다.

그런데 이 경에서 그동안 우리가 당연히 알고 있던 미륵불과는 좀 다른 성격의 미륵을 만나게 된다. 미륵보살은 이 땅의 불의를 정화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내려와서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혁명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미륵은 언제 오실까. 아니, 오시기는 할까?

오시기는 분명 오시지만, 이 땅에 사는 중생들이 미륵보살님이 오시도록 먼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성실하게 노력해도 제 몫을 얻지 못하고, 그릇된 것을 바로 잡으려 들면 불이익을 당하고, 어둔 밤길을 걸을 때나 제 집에 들어가서도 불안하여 두려움에 떠는 세상에는 미륵보살이 오지 않는다. 악업과 범죄가 가득한 불길한 세상을 보다 못해 사람들이 반성과 자각을 하고, 조금씩 윤리를 회복하며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면, 그래서 이 땅 민중들의 평균수명이 8만 세가 될 때, 그때 미륵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시고 훗날 출가수도해서 붓다가 될 것이며, 그분의 도를 흠모한 사람들이 그분을 따라 출가하게 된다는 것이 초기경전에서 밝히고 있는 미륵보살 도래의 전모다.

그 누구에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빌지 않고, 스스로가 팔을 걷어붙여야만 그 살기 좋다는 미륵부처님의 정토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과 부처님이 오실만큼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중생이 나서야 한다는 이 사실에서, 중생은 힘이 세다는 걸 새삼 확인한다. 부처님을 부르는 자가 바로 중생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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