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이 지난 해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UN에서 내놓은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5.87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소속된 34개 회원국 가운데 32위에 해당됩니다. 세계 경제 대국에 들어가 있지만 국민들의 행복도는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UN이 조사한 이 보고서의 결과는 단순히 일회성은 아닌 듯합니다. 2012년에서 2015년도 조사에서도 한국은 조사대상 157개국 가운데 96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의문이 생깁니다. 왜 우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행복을 느끼고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의 근원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우리보다 경제적으로나 문명적으로나 취약한 국가가 수두룩한데 그들 나라보다 행복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자못 궁금할 따름입니다.

그것은 우리들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잊고 살아서 그러는 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려 발버둥 치지만 실상 성취한다고 해서 그것이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분들도 다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즉 행복은 소유의 가치로 규정(規定)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물질적 가치보다 내면(內面)의 가치를 중시합니다. 이것은 불교에서 추구하는 행복과 상통합니다. 세상은 수많은 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연과 나, 인간과 나, 국가와 나, 사회와 나, 가정과 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관계의 그물망을 형성하며 현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나’만 특별한 존재로 따로이 살 수 없습니다. 불교의 세계관이라 할 수 있는 삼법인(三法印)의 제법무아(諸法無我)가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사람은 물론 동식물(動植物)을 포함한 모든 자연과 연기적(緣起的)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기적 관계 속에서 진정한 행복은 서로를 위하고 배려하는 상생(相生)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상생의 삶은 곧 자비이며 사랑이고 용서입니다. 미움과 증오로는 상생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미움과 증오 대신 자비와 용서를 선택할 때 함께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렇지만 행복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연꽃을 피우기 위해 진흙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 고통이 있듯이 행복은 나를 비우고 헌신해야 하는 고통을 수반합니다. 이런 내면의 중요한 가치를 잊고 살다보면 행복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삶을 살게 되는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 할 가치를 잊고 사는 일이 부처님 재세 당시에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다음의 일화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바라나시 고행림(苦行林)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었을 때의 일입니다. 한 여인이 커다란 보퉁이를 안고 누군가에게 쫓기듯 허둥지둥 달려 부처님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어 수많은 젊은 사내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와 함께 부처님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중 한 사내가 명상에 들어있는 부처님에게 물었습니다.

“수행자여, 한 여인이 도망가는 것을 보지 못하였소?”

부처님이 젊은 사내들을 향해 물었습니다.

“그대들은 무슨 일로 그 여인을 찾고 있소?”

“우리들은 모두 가까운 친구들로 어제 이 숲속으로 유희를 나왔습니다. 모두 아내가 있었으나 한 친구만 아내가 없어 한 여인을 데려 왔는데 보통 음탕한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그 여인의 음탕한 유혹에 모두 넘어가 술을 과하게 마셨고 모두 쓰러져 잠든 사이 그 여인이 우리의 돈과 패물을 모두 훔쳐 달아났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을 쫓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야기를 듣고 그들 무리를 향해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소? 잃어버린 물건과 당신들의 몸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오?”

“물론 내 자신의 몸이 중요하지요.”

무리의 대표가 나서 부처님의 물음에 답하였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다시 말씀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여인을 찾아 헤매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찾는 것이 좋지 않겠소?”

부처님은 계속해서 인생의 괴로움에 관하여 말씀하시고 그것을 멸하는 방법에 대해 설하셨습니다. 젊은이들은 비로소 부처님을 알아보고 크게 절하며 귀의(歸依)를 표하였습니다.

무엇이 더 소중한지 잊고 살다보면 하잘 것 없는 일에 화를 내거나 사소한 일로 다툼을 벌이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무엇이 소중한 것인가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일은 상생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비와 용서의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건강한 관계는 이같은 내면의 가치가 충만할 때 이루어지게 됩니다. 지금 나를 위해 무엇이 가장 소중한 일일까 늘 자기점검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분명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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