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정산 총무원장

지방선거 열기로 전국이 선거 열풍에 휘말리는가 싶더니, 차마 있어서는 안 될 불상사가 발생하였습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지원 유세에 나섰다가 한 괴한에 의해 테러를 당하는 일이 발생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범인이 예리한 칼날을 박 대표 얼굴에 휘두르는 장면을 보면서, 특정 정당의 지지 여하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개탄과 경악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이른 바 개발 주도 진영과 민주화 주도 진영 사이의 골 깊은 갈등을 안고 있습니다. 기적적 경제 개발이라는 양지와 독재 정치라는 음지를 동시에 선명하게 안고 있는 개발 주도 진영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크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그 개발독재 시대를 이끌었던 고(故) 박정희 대통령은 결국 독재 정치의 덫에 걸려 비운의 종말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시 그 따님마저 테러의 대상이 되어 신음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인들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경제 번영과 민주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오늘에도, 한국 사회는 과거사를 둘러싼 견해 차이에서 빚어지는 정치적 갈등과 증오의 불길이 사르러들 줄 모르고 있습니다. 지역 갈등과 계층 갈등조차도 결국은 개발독재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의 갈등 문제와 깊이 얽혀 있습니다. 이 두 진영은 때로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대립하기도 합니다. 이번 테러 사건은 지금까지 누적되어온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적 갈등의 한 극단적 표출이기도 합니다.

 중생은 ‘차이와 공존'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결핍되어 있습니다. 자신과 다른 신념, 다른 욕구, 다른 습관들과 평화롭게 어울리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추구하는 평화는 ‘차이와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욕구와 다른 것들, 자기에게는 낯선 것들을 배타적으로 없애거나 밀어내지 않고, 최대한 존중하며 평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세상이 바로 평화로운 불국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불교는 자타가 공인하는 평화의 가르침입니다. 2600년 넘게 불교가 보여준 평화의 전법 행진은 불가사의할 정도입니다. 인도 제국을 통일한 정복 군주였던 아소카 왕은 부처님 가르침에 귀의하면서 자신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살생업을 참회하고 가장 모범적인 불교도로서 제국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부처님 가르침에 입각하여 모든 종교에 대한 관용의 정책을 실천하였습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아소카 왕의 돌기둥 비문에는 ‘자기 종교만이 최고 진리라고 여겨 오직 자기 종교의 번영만 추구하는 사람은 오히려 자기 종교를 해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가르침도 존중하고 경청하라'는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다른 신념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불교도의 관용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는 사례입니다.

 불교가 차이와 낯선 것들을 관용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것은 그 교리의 특성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우선 부처님은 무아(無我)의 지혜를 설하고 계십니다. 영원 불멸의 개체아(個體我)가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오해이며, 따라서 ‘나' ‘나의 것'이라는 소유적 이기심은 환각에서 비롯된 잘못된 마음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십니다. 이러한 무아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실천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나의 생각' ‘나의 신념' ‘나의 판단'이라고 하는 아집과 아만이 풀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나와 다른 신념' ‘나와 다른 종교'들에 대한 배타심과 적대감도 저절로 해소됩니다. 불교가 보여주는 관용의 이면에는 이러한 무아의 지혜가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아의 지혜는 곧 자비의 가르침으로 이어집니다. ‘나의 것'이라고 하는 배타적 소유 관념을 극복하게 되면 세상 모든 것들을 마치 한 몸처럼 대하게 되는 마음 상태가 펼쳐집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신념과 생각들을 존중하게 되는 열린 마음이 수립됩니다. ‘나와 다른 생각'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배타적 분별심의 장벽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불성(佛性)의 가르침 또한 관용의 원천이 됩니다. 모든 생명, 모든 인간은 모두 본래 부처님이고 부처님이 될 능력을 지닌 잠재적 부처님이라고 보는 불성 사상은, 불교도로 하여금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존중하게 만듭니다. 비록 자기와는 다른 종교를 지니고 있고 다른 정치 신념을 지니고 있어도, 그 내면에는 자신과 동일한 불성이 빛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불교도들은 종교나 정치 신념, 가치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배타적이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이번 테러 사건을 교훈으로 삼아 차이를 존중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관용의 덕을 적극 배양해야 합니다. 정치 신념의 차이, 지역 정서의 차이, 계층의 차이, 종교의 차이를 넉넉하게 안을 수 있는 관용의 마음을 키워야 합니다. 한국 문화의 생명력인 불교가 이에 필요한 최고의 지혜를 제공해 준다는 것은 이런 점에서 커다란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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